발칙한 조선인물실록 - 역사적 인물들, 인간적으로 거들떠보기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지금까지 배웠던 역사와 역사속 인물들에 대한 이미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기존의 역사적인 시각이나 평가에 길들여진, 어느정도 정형화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속의 위대한 인물들이나 성인들은 매번 우리의 기억속에서 출력될 때면 훌륭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일 뿐이고, 주변에 해를 끼쳤던 인물은 매번 사악한 인물로 반복하여 기억될 뿐이고..... 역사에 기록되고, 때로는 각색되고 꾸며지기도 하고, 그러한 기록을 의심없이 다시 그대로 배우면서, 한 시대를 현실로 살았던 이들은 기록된대로 박제화되고, 생기를 잃고, 책에 기록된 이미지대로 기억되고, 세대를 이어 그러한 이미지가 이어지게 됩니다. 텔리비젼의 사극이나 영화 등을 통해서 시각화된 이미지로 역사속의 인물들의 삶이 다시 그려진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이야기되는 것은 실제 한 인간의 현실적이고 생기발랄한 삶이라기보다는 역사속에서 이어져온 형상을 강화시키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로 꾸며져 있을 뿐,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것이 역사이고, 역사속에 기록된 사람들에 대한 우리 이해의 한계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문득 이 책을 잡고 읽다보면, 전통적인 역사해석의 틀을 뛰어넘어, 그러한 한계를 잠시 열어젖히고, 너무 진지하지도, 너무 열성적이지도 않은, 사람 냄새가 풀풀나는 역사속의 인물들을 만나는 듯 한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내 옆집 아저씨나, 윗층 가족의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한 이야기들..... 저자는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을 역사책 속에서 데리고 나와 그런 식으로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비록 역사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역사가 미처 말하지 못했던 여러 인물들의 생동감 있는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 역사의 넘버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군 세종대왕이 며느리 문제와 아들들의 여성편력도 성군처럼 다루었을까? 역사책에서는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마도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을 부모없다는 부모로서의 정과 안타까움이 그러한 문제를 대할 때면 그의 내면에 가득하지 않았을는지..... 그러한 부모의 마음과 빗나간 자녀들의 행동을 요즈음 우리의 현실감 있는 언어로 읽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3대 악성이라고 기억되는 박연, 하지만 저자는 악성이라는 그의 이면에 가려져 있는 고위 공직자 박연의 모습을 드러내 이야기하면서 한 인간의 공직자로서의 성공과 실패, 타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바로 역사속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았던 삶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지만, 여기에서의 느낌은 그러한 당연함을 넘어선 신선함과 자극이 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바라고 있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인이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아닌, 현실에 비춰서 역사속 인물들의 삶을 느껴본다는 것, 바로 그런 것이 아닐는지..... 그러한 저자의 의도는 열하일기의 박지원을 북경 친구 사귀기에 집착한 모습으로 그려내고,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의 신화를 깨뜨리고 진실을 드러 내는 면밀한 역사에 대한 고증에서도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역사가 그대로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서 미화되거나 왜곡되어 기록되고, 그것이 곧 진실이란 듯이 알려지게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고, 그들의 삶 이면에 가려진 사실들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실상을 재구성해 내는 저자의 솜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포함하여 이 책에 담긴 19가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저자가 풀어내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는 역사라기보다는 세상을 살면서 겪었던 경험담이나 어딘가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들려주는 생생한 기행담처럼 느껴집니다..... 

 뭔가 진지하고 역사다운 것들을 바란다면 아마도 이 책을 읽는 것이 실망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역사의 다른 이면을 기대하거나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이해하는 것들에 대한 열린 마음이 있다면 저자가 보여준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역사적인 사실이나 인물들에 대한 이해를 위한 훌륭한 첫걸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듭니다. 이미 기존의 엽기 시리즈로 알려진 저자의 이력이 읽는 이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겠지만, 이러한 저자의 노력이나 열매로 나온 책들이 단지 역사에 대한 가벼운 농담거리 같은 책읽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진지하고 통찰력있는 역사이해에 대한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재미있고, 신선한... 그리고 뒤따라오는 역사에 대한 진지함까지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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