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마타사부로 / 은하철도의 밤 지만지 고전선집 231
미야자와 겐지 지음, 심종숙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미야자와 겐지..... 낯선 이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의 저자에 대한 기억과 어렸을 적에 손꼽아 기다리며 보곤 했던 TV 프로그램 <은하철도 999>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인터넷 서점 어디선가 읽었던, 부유하였던 자신의 태생과는 동떨어져 자신의 철학과 신념에 충실하려 했던 작가의 치열했던 삶과 그의 대표작 <은하철도의 밤>이 어린 시절 재미있게 보았던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내용을 접하며, 그의 동화들을 읽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대하면서의 감정은 반가움 그 자체였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담아두고 기다렸던 뭔가를 드디어 마주 대하게 되었다는 그런 반가움..... 그리고 이 책이 동화이기는 하지만, 요즈음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니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니 하는 기획들이 많은지라 어른이 동화를 읽는다는 것이 그리 흠이 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이들 책을 자신이 먼저 골라 읽어보거나 아이들과 함께 읽고 나누는 부모들도 많은 시대이기에 어른이 동화책을 들고 다닌다는 것은 좋은 부모의 증거가 될 수도 있다는 허영심(?)까지 끼어들었습니다. 결국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계기는 미야자와 겐지라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였지만, 그 이면에는 아이들에게 새로이 권할만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부모로서의 기대-어렸을 적에 <은하철도 999>를 보며 느꼈던 그런 감정들을 아이들에게도 선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숨겨져 있기도 했습니다.

 <바람의 마타사부로>와 <은하철도의 밤>. 이 책에 실린 두편의 동화입니다. <바람의 마타사부로>는 9월 첫째날 바람과 함께 골짜기 계곡 물가의 작은 학교에 아버지를 따라 전학왔다가 아버지가 돌아가게 되면서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아이와의 12일간의 생활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학교 아이들은 다카다 사부로가 처음 나타난 날이 니햐쿠토카(입춘에서 210일째로 이 날 전후로 태풍이 부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였고, 또한 이름도 비슷하여 다카다를 마타사부로라고 부릅니다. 만난 첫날부터 아이가 떠난 12일까지 함께 어울려 놀았던 일과 그러던 중에 바람과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 중심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배경이 되는 마을과 지역에서 마타사부로라는 이름의 의미와 지역적인 특색, 9월이면 태풍이 자주 불어와서 큰 피해를 남기고는 한다는 등의 향토색 짙은 예비지식이 없다면, 작가가 이 동화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온전한 의미를 알기는 어려울 것같다는 한계를 지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문화와 지역적 특성과 시간적 차이 (20세기초와 21세기에 접어들었다는...) 만큼의 괴리감이 이 동화를 이해하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은하철도의 밤>은 바다에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를 기다리며 어머니와 생활하고 있는 조반니가 은하수를 쳐다보는 중에 상상하는 -또는 꿈을 꾸는- 형식의 동화입니다. 은하수를 관통하는 은하열차를 타고 자신의 절친한 친구 캄파넬라와 여행하며 겪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작가의 여러가지 철학이나 신념이 담겨있는 부분인지라 이 또한 작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름대로 이 동화를 읽으며 잡은 하나의 실타래는 끝부분에 이르러서야 겨우 하나 꿰어맞춘 다음과 같은 깨달음입니다. 여행의 끝에서 캄파넬라가 사라져버려 슬픔에 담긴 조반니는 '저 꼭 잘 살아갈게요. 반드시 진정한 행복을 찾겠습니다.'라는 다짐을 하며 현실로 돌아오는데, 실제 현실속에서는 친구 캄파넬라가 은하수가 비추이는 강물에 빠져 정말로 사라져 버리고, 그러한 친구를 뒤로하고 조반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은하 여행중에 만난 등대지기의 '무엇이 행복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어떤 괴로운 일이라도 그것이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도중에 생긴 일이라면 고갯길의 오르막도 내리막도 모두 행복으로 다가가는 한 발자국이니까요.'라는 말처럼, 친구가 강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그러한 사건을 뒤로하고 아버지가 돌아오실거라는 소식을 가지고 집으로 달려가는 조반니의 달음질 속에 작가는 우리의 삶에 대해 그런 의미를 담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당혹(?)스러움..... 나름대로 이리저리 이해해보려고 하지만, 정말로 작가가 이 동화들을 통해서 하려고 했던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혼돈스러움이 남습니다. 아마도 앞에서 말했듯이, 문화와 지역색, 그리고 시대의 차이로 인한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은하철도의 밤에서 작가의 상상속에서 태어난 은하에 대한 이야기 또한 작가보다 좀더 많은 은하와 우주에 대한 우리의 앎으로 인한 작가의 상상력이나 감성과의 차이와 작가의 철학이나 신념에 대한 이해의 부족 등이 이 동화를 편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즈음의 여러 동화들은 아이들이 눈높이에서 세상의 여러가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비해, 이 책속의 두 동화는 작가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생각과 신념, 철학 등을 동화를 읽는 독자들에게 말하고 전달하고자 한 경향이 짙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눈높이의 차이가 느껴지기도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다 보니 좋은 동화를 읽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한풀이마냥 괜한 딴지 걸기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뜨끔한 생각이 든다는.....^^  여하튼 여러 이유로 인해 시간을 내서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고 싶은 동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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