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
릴리어스 호턴 언더우드 지음, 김철 옮김 / 이숲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Fifteen Years Among The Top-Knots>이라는 제목으로 이 책이 미국에서 출간된 것이 1904년이라고 하니까, 우리나라의 외교권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박탈된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1년전에 출간된 것이고, 지금부터 1세기전에 한 미국인 여선교사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와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당시 우리나라가 서양문물에 눈뜨기 시작한 시기였고, 천주교의 전래와 기독교의 전파 등이 실제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을 깨이게 하는데 어느정도 기여를 한 것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저자가 정치가나 학자가 아닌 기독교의 전파를 위해 조선 땅에 발을 디딘 선교사였다는 점에서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이력에 대해서 조금의 이해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목적으로는 책의 본문을 먼저 보는 것보다는 책뒤에 있는 <편집자의 글>이나 <역자의 말>을 먼저 읽은 후에 본문을 읽는 것도 종교적인 편견이나 오해를 피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 릴리어스 호튼 언더우드 여사는 1851년 뉴욕의 알바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기독교적인 생활에 충실하였고, 어머니가 딸의 대학진학 등을 꺼려해서 31세가 되던 해까지 교회와 관계된 일들을 하며 소일하다가, 선교 의사가 되어 인도로 가기로 작정하고 시카고 여자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의학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 후 '에리 톰슨'병원에 근무중 장로교 선교본부에서 선교 현장으로 조선을 택해줄 것을 요청받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그 요청을 수락하여 1888년 2월 23일 (편집자 글에는 3월로 되어있음)에 조선에 도착하여, 제중원의 부인과 제2대 과장 및 왕비의 시의를 겸하며 궁중을 출입하였습니다. 1889년 3월에는 자신보다 빠른 1885년 4월 조선에 도착하여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언더우스와 결혼을 하고 조선의 북부지방으로 신혼여행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후일 그녀가 쓴 이 회고록은 그녀가 조선에 도착하여 받았던 인상에서 시작하여, 왕비와의 교류, 신혼여행에서의 이야기들, 그리고 조선이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을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번째 부분은 저자가 선교를 목적으로 조선땅을 밟은 만큼 개신교 선교사로서의 여러 활동과 성과에 대한 기록이고, 두번째 부분은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신혼여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세번째 부분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속절없이 무너져가는 조선의 쇠락에 대한 안타까움과 신앙안에서의 소망이 진하게 묻어나는 기록입니다. 그러한 큰 틀을 벗어나더라도 저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아일랜드 사람들과 비교한 조선 사람들에 대한 솔직한 느낌의 표현이나 조선의 상투에 대한 해학적인 이해, 조선 사람들의 식습관에 대한 재치있는 표현, 명성황후와 고종 등에 대한 사적인 관찰과 느낌의 기록, 왕비의 죽음에  대한 당시 일반에 퍼졌을 생생한 전언의 기록, 명성황후의 장례식 장면에 대한 기록 등은 다른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내용이고 또한 매력적인 부분이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선교사로서 조선의 미래에 대한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신앙안에서 미래를 그리는 모습을 통해서는 그녀가 신앙인으로서 조선을 위해 무엇을 바라고 소망하였는지 그리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엿볼수 있기도 합니다. 또한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그녀와 같은 초기 선교사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서까지 소망을 버리지 않고 선교의 사명을 다하여 섬겼던 조선이라는 쇠락하던 나라가 이리 다시 건강하게 살아나서 어엿한 열매를 맺었으며, 이제는 그들이 감당하였던 것처럼 우리 교회가 그러한 선교의 열심을 감당하기 시작했다는 대목에 생각이 이르면 많은 감회를 가지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이 책은 한 선교사의 조선 선교에 대한 회고록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리고 그러한 점이 크리스쳔들에게는 아니더라도 기독교와 무관하거나 비판적인 일반인들에게는 편견이나 주저함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부분에 대한 마땅치 않음을 조금 뒤로 미뤄두고 읽는다면, 벽안의 미국 여인의 조선생활 회고록 정도로 익힐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단순한 회고록이 아닌, 얼굴이 하얀 외국인을 신기해하며 구경거리를 삼던 우리 조상들의 순전함-저자에게는 무척이나 무례한 일이었겠지만-과 쇠락해가는 백성으로서의 처량함, 새로운 소망을 찾아 신앙에 기대어 오던 꺼질듯 버티며 소망을 키우던 민중의 힘, 그리고 곳곳에 배어있는 당시의 생활상 등이 담긴 소담스런 이야기들을 대할 수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슴터지게 만드는 위정자들의 무력함과 배반의 기록도 함께 있지만, 이 안에는 이 민족을 사랑하던 한 이국 여성의 애정이 함께 담겨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이 책이 단순히 종교적인, 아니면 한 서양여인의 콧대높은 시선이 담긴 글 -역자나 편집자가 염려했던--이 아닌 저자의 고백처럼 '동양의 모든 나라 가운데서 가장 독특하고 흥미로운 한 나라에서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함께 보낸' 한 여인의 삶의 이야기로 순수하게 읽힐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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