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4
J.M.G. 르 클레지오 지음, 김윤진 옮김 / 민음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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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읽어 내리기는 했지만.....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도 내용에 대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들에 대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듯 합니다. 이러한 형식의 글은 지금까지 내가 대했던 글들과는 확연히 다른 난해함 또는 복잡함,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고 방식들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앞설 뿐입니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은 것도 아니기에 더더욱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결국 주인공 아담 폴로를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 말미에 있는 작품해설을 읽고 여기저기를 조금 찾아보는 수고를 덧붙이게 됩니다.

 '조서 調 ', 사전적으로는 '조사한 사실을 적은 문서'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더 친근하게 들리는 분야는 아무래도 법률과 관계되는 분야일 것 같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이 어떤 사건에 대해서 조사하고 정리한 문서를 작성할 때 쓰는 '무슨 사건에 대한 조서를 작성한다.'는 식의 문장처럼 이러한 예에서 '조서'라는 단어는 귀에 익은 말이 되니까요. '정신병원 또는 군대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한 남자의 이야기'에 조서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니, 단순하게 생각하여 이 소설은 결국 이 남자, 즉 주인공인 아담 폴로에 대한 조서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듯 합니다. 한데 그 조서가 정상적인(?) 그리고 현대적인(?) 삶을 사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퍽 난해하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결국 작가의 의식과 독자의 의식이 만나 충돌하는 지점도 거기이고, 그 지점은 작가가 독자들에게 자신이 이 이야기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기록하는 관점이 어디인지에 대한 암시를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어디서는 그러한 특징을 '형이상학적 소설'이라는 용어로 표현해 놓았는데, 그러한 용어가 난해함을 덜어주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반인이 주인공 아담 폴로에 대한 조서를 작성한다면, 결국은 소설의 뒷부분에 나오는 정신병원 의사의 의견과 거의 비슷할 것입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담 폴로를 면담하며 갈피를 못잡는 학생들에게 정신과 의사는 자신이 아담에게서 찾은 병명(증)들을 열거합니다. 계통적인 편집증적 망상, 심기증 경향, 과대망상 (때로는 정반대의 극소 집착증), 피해망상, 정당화를 통한 회피 증세, 성도착증, 정신착란, 그리고 끊임없는 우울증 상태에 놓여 있으며, 착란성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자각이나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현실적인 자각이나 감각을 지니지 못하고, 외떨어진 타인의 별장에서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겨우 한다는 일은 우연히 지나치는 개를 따라다니거나 여자친구 미셸을 찾아 도시 여기저기를 헤매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러한 과정에서의 여러 일들마저도 사실인지 허상인지 구분을 못하는 주인공의 상태는 당연히 독자로 하여금 비정상적인 인물이라는 딱지를 붙이게 합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러한 아담 폴로의 행동과 의식의 흐름을 무슨 의미있는 기록인 것처럼 끝까지 놓치지 않고 따라가며 기록합니다. 읽는 사람은 이해가 안되고, 이리저리 흐트러진 의식과 혼란스런 행동의 연속이지만, 그러한 흐트러짐과 혼란 자체가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한편으로는 하나의 이야기로서의 정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듯이 태연하게 소설을 이끌어가고 있는 작가의 손길을 따라 가다보면, 결국 의미를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지점이 있는데..... 바로 그 지점이 작가가 노린, 당신들의 삶이 잘못된 것일수도 있다는, 아담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느냐는 자극의  시작점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그리고서 뒷부분에 정신병원에서 학생들과 면담하는 아담 폴로의 입을 통해서 여전히 불명확하긴 하지만, 작가 자신의 생각을 조금 비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 .... 그건 문학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아주 솔직히 말해서 그렇죠. 나는 압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문학을 해요. 그러나 지금은 그게 되지 않아요. 나는 정말 지쳤습니다. 치명적이죠. 너무 읽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것을 완벽한 형태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추상적인 것을 언제나 최근의 예에 비추어, 약간은 유행을 따라, 가능하면 상스럽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보다도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예에 비추어 설명해야 한다고 믿는 겁니다. 빌어먹을, 그건 다 거짓이오! 가짜 시, 추억, 유년 시절, 정신분석, 청춘 시절, 그리고 기독교 역사, 모두 다 악취가 나요. 사람들은 자위 행위, 남색, 보두아, 멜라네시아의 성적 성향 따위를 가지고 서푼 짜리 소설이나 쓰지요..... ..... ..... 이 모든 것이, 예? 이게 옳은 건가요? 이게 무슨 의미라도 있어요? 이게 올바른 것인가 말이오?'

 작가는 아담 폴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형식의 완벽한 이야기를 하기 원한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관점에서 탐구한 방식과 관점에서 주인공을 살피고 그의 행동과 의식을 기록한 것이고, 완벽한 형태나 논리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기에 어차피 논리와 형식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독자의 입장에서는 아담 폴로에 대한 르 클레지오의 조서는 완벽하게 이해될 수 없는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작가의 의도도, 완벽한 이해보다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정신병적인 주인공의 모습과 현실인식을 통해서, 우리 주변의 현실과 문명을 다시 뒤집어보고,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의 존재 및 주변 현실과 문명에 대한 새로운 자각의 시작을 촉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글의 내용이 실제 소설에 대한 이해보다 더 많이 나가 버린 듯 합니다.....^^ 시간이 되어 다시 작가의 책들과 이와 관련된 소설들을 읽게 된다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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