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직관에 묻다 - 논리의 허를 찌르는 직관의 심리학
게르트 기거렌처 지음, 안의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생각을 버리고 직관을 따르라!',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사람들에게 이리 말한다면, 대개는 합리적이거나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대답을 듣게 될 것입니다. 사전적으로 직관이라는 말의 의미는 '감각, 경험, 연상, 판단,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 또는 '감관의 작용으로 직접 외계의 사물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을 얻음'이라고 설명되어 있고, 언뜻 느끼기에도 '직관적'이라는  말은 '합리적, 논리적, 이성적'이라는 말의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자는 직관의 의미를 1. 의식에서 재빨리 떠오르는 것, 2. 우리가 충분이 인식하지 못하는 근본 원인들, 3. 행동을 유발하기에 충분한 동기를 수반하는 것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직관력이 뛰어나다'느니, '누구는 직관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어떤 면에서 남다른 능력이 있다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직관에 의지해서 많은 것을 처리하려고 한다면 분명 그 사람은 어떤 단체 안에서 비현실적이거나 합리적이지 못한 부정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으로 또는 더 나아간다면 뭔가 큰 사고를 칠지도 모를 위험한 사람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직관적인 행위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과정을 거친 행위를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단정짓는 편견이 들어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직관과 사고는 서로 대립되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아직까지 본적이 없었습니다. 이 책을 보기전까지는 말입니다. 

 '직관은 그 자체로 이성을 토대로 한 합리성을 내포하고 있다. 직관-감성, 사고-이성의 연관이 아니라 직관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안전한 생존을 위해 인간에게  형성된 하나의 체계로 사고 과정과는 다른 체계일 뿐 대립되는 관계는 아니다.' 이 책이 말하는 직관에 대한 핵심적인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구절입니다. 이 말을 곰곰히 뜯어보면,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저자가 자신의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어하는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부분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직관과 사고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이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기 위해 발전시킨 서로 다른 양식의 반응 체계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직관도 나름의 합리성과 이성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능력이라는 말이 언뜻 모순되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그리 주장하는 타당한 이유들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디트로이트와 밀워키 중 어디의 인구가 더 많은가?'라는 질문에 미국 학생의 60% 정도만이 답을 맞추었지만, 독일 학생의 대부분이 답을 맞추었다는 사실 -독일 학생들이 지리 공부를 열심히 해서 더 많이 안다는 것이 아니라, 디트로이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고 밀워키는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직관, 즉 재인 어림법(recognition heuristic)이라는 어림셈법(rule of thums)을 사용한 예-, 야구 선수가 날아오는 공을 복잡한 수학적, 물리학적인 공식에 의한 궤적의 계산 없이 정확히 잡아내곤 하는 것 -경험에 의해 공에 시선을 고정하고 달리기 시작해 시선의 각도가  일정하게 되도록 달리는 속도를 조절하는 시선 발견법(gaze heuristic)이라는 어림셈법을 사용한 예- 등을 통해서 저자는 직관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은 중요한 정보만 주목하고 다른 정보들은 무시해 버리는 사용하기 편리한 어림셈법-독일 학생들의 재인 어림법이나 야구 선수의 시선 발견법-을 기초로 하여 두뇌의 진화 능력-매순간 인식 기억과 물체를 추적하는 능력-을 사용하여 실행하는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진화와 적응의 과정에서 인간이 사용하기 시작한 어림셈법이 세대를 이어져 내려오며 발전하고 정착된 '무의식적인 지능'에 뿌리는 둔 직관이라는 형태의 반응형식을 이루었다는 주장인데, 이 말은 곧 직관의 뒤에 감춰진 효율적인 어림셈법을 설명할 수 있고, 또한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직관이 성공하거나 실패할 경우를 말할 수 있다면, 직관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면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것이고, 바로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FA컵 승자 예측하기나 윔블던 선수권 대회 승자 예측하기, 두 도시나 국가 중 인구가 많은 나라를 맞추라고 했을 때 부분적인 무지가 기여하는 재인 어림법의 일관된 효과, 다양한 상황에서 단 한가지 이유만을 근거로 하는 순차적인 의사 결정의 놀라운 효과, 환자의 진료 과정에 도입한 '예'나 '아니오'라는 단순한 질문에 의거해서 의사 결정을 하게 만든 '빠르고 간단한 나무' 방식의 효율과 유용성에 대한 이야기들은 직관을 적용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보인 경우들입니다. 직관이 실패한 경우의 예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는데, 스탠리 밀그램의 유명한 '권위에 대한 복종과 양심'이라는 실험으로 설명되곤 하는 평범한 독일 군인들의 학살가담을 '계급의 서열을 깨뜨리는 행동을 하지 마라' 또는 '동료중의 다수가 하는 행동을 하라'는 어림셈법에 의거한 행위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장기 기증에 대한 '옵트아웃(opt-out)' 국가에 비해 '옵트인(opt-in: 사전 동의)' 국가의 낮은 기증률 또한 '기본 규칙이 존재한다면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직관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고, 영국의 치안판사들이 보석결정을 내리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빠르고 간단한 나무'의 예도 직관이 자신을 위한 방어적인 결정을 내리는 부적합한 경우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결국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직관과 사고를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직관에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무엇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직관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에 동의한다면, 직관이 단지 '변덕스럽고 신뢰할 수 없는 삶의 가이드'라고 조롱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가장 정교한 추론이나 계산 전략들도 하지 못하는' 것을 어떤 규칙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무의식적으로 가공할 정도로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그 안에 잠재된 능력과 의미를 새롭게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는 밝게 보이기 보다는 '안개가 자욱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사용하여 어떻게 효과적인 결과들을 산출하고, 또 어떤 때 비극적인 결과나 혼란을 초래하게 되는지에 대한 실례들을 통해 '직관에도 신뢰할 만한 이유들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표현한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직관에 대해서 새로운 관심과 이해를 주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까지 기존의 심리학이나 기타 뇌신경학 등의 분야와 얼마만큼 겹쳐있고, 얼마만큼 다른지에 대한 혼돈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직관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부여하고자한 저자의 노력이 신선하고 의미있게 다가오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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