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 법의곤충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수사 이야기
마크 베네케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드라마 <CSI> 시리즈에서, 사건을 기가 막히게 해결해 가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감탄사가 흘러 나올 때가 있습니다. 살인과 관련된 사건을 여러가지 정황과 증거물들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통해 범인을 색출해 내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고문이나 윽박지르기의 거친 수사를 거치지 않고서도 완벽하게 범죄를 증명해 내는 모습이 경탄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니까 극적인 요소를 더 극대화하고 덮고 싶은 부분은 슬쩍 넘어간 면이 있겠지만, 범죄의 경계에 있는 까칠한 사람들에게는 두고두고 두려움을 느끼게 할 만한 내용들이기도 하겠다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이 책도 제목을 처음 접하면서, 드라마 속에 나오던 CSI 요원들의 깔끔하고 단정하면서도, 완벽하고 멋지게 문제를 해결하던 모습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흥미와 재미를 지닌 멋진 이야기로 통쾌하게 범죄를 해결해 가는 모습을 기대하였습니다. 하지만.....

 책의 처음은 끝까지 읽어내기에는 조금은 역겨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물론 내용 자체가 역겹다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의 <CSI> 시리즈에서 보아왔던 기가 막힌 솜씨로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이지만, 저자가 1부에서 말하는 그런 문제해결의 열쇠들은 가까이 하고 눈으로 보며 이야기하기에는 속을 메스껍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구더기와 파리, 바퀴벌레와 거미, 송장벌레와 달팽이 등의 곤충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행히 흑백사진으로 실리기는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 실린 다양한 사진이나 그림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무 감정의 흘들림없이 보기에는 조금 과한 사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훨씬 현실적이고, 범죄 생물학 또는 곤충 법의학이라는 내용에 충실한 책이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1부에서는 바로 여러가지 곤충이나 구더기 등을 통해서 사체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 -사인에서 부터 시작하여, 어떤 상태로 죽은 것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버려졌는지, 그 자리에서 죽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옮겨진 것인지 등-를 얻어내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내었던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낯설고 생소한 분야이고, 내용에 등장하는 여러 해결사들의 모습이 친근하거나 사랑스럽지는 못하지만, 자못 흥미스러운 내용인 것도 사실입니다.

 2부는 범죄와 관련된 DNA 분석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고, 이제 일반인에게도 기본적인 지식 중의 하나이지만, 이에 대한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이 담겨 있습니다. 즉 DNA 분석의 여러 방식과 장단점에서 시작하여, 검사 결과의 해석과 그에 대한 이해, 사건 해결에 사용된 실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모계나 부계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mtDNA와 Y 염색체에 대한 설명과 이것들의 이용법에 대한 내용도 실려 있습니다. 단순하게 그리고 막연히 알고 있는 DNA 검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정확히 할 만한 내용들입니다. 또 한가지 관심이 가는 부분은 범죄자나 기타 그에 합당한 이유로 데이타 베이스화 되는 사람들의 DNA 분석자료들의 악용 가능성에 대한 저자가 태도에 관한 것입니다. 저자는 강한 어조로 그러한 악용을 가능하지 않다고 부인하고 있는데, 이유인즉슨 범죄자의 신원확인을 위해서 사용되는 유전자 감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 최근에 완성된 DNA 지도라는 의미에서의- 부호화 된 DNA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부호화 하지 않은 영역'에 대한 연구이기에, 유전자 주인의 신원확인 외에는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면에  대한 것은 많은 논의와 고민이 필요한 것이지만, 저자가 말하는 이론적인 면에서의 그러한 악용 가능성의 부인은 타당한 면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3부는 히틀러의 독일 치하에서 활개를 쳤던 범죄 생물학의 어두운 면에 대한 반론의 글들입니다. 인종의 우월과 인종 개량의 미명하에 유대인의 대학살이라는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고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반복하여 재생산했던 범죄 생물학의 헛점과 신중하지 못함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조상들에게로 이어지는 아픈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라고 할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과학 수사대(CSI)라는 말도 최근의 미국 드라마를 통해서 우리 귀에 익숙해진 것이지만, 이젠 낯설지 않은 용어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범죄 생물학이라는 분야는 비록 유전자 분석이라는 분야를 포함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낯설고 아직까지도 우리에게는 설익은 분야인 것만을 확실한 것 같습니다. 특히 1부에서 말하는 시신에 기생하는 여러 곤충들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기법에 대한 것은 의외의 내용이었습니다. 어찌보면 내용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그런 류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세상의 모르던 영역으로의 관심과 흥미를 조금 더 넓힐 수 있도록 호기심을 자극한 내용들이었습니다. 막연히 알거나 오해하고 있었던 범죄에 이용되는 유전자 감식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내겐 뿌듯한 기쁨을 주는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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