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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스트리트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허름한 집은 안 된다. 뒷골목에 있는 공동주택도 안 된다. 남자들을 위한 집도 안 되고 아빠의 집도 안 된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집. 나를 위한 현관과 나만을 위한 베개와 예쁜 진홍색 페투니아가 있는...... 내 책들과 내 삶의 이야기들이 있는...... . 침대 밑에는 늘 내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누구도 내 평화를 흔들어 대지 않는...... 따라다니며 주워야 할, 남들이 버린 너절한 쓰레기도 없는...... . 언제나 눈처럼 조용한 집. 나만을 위한 공간. 시를 쓰기전의 깨끗한 종이 같은...... . - 나만의 집-
아빠가 복권을 살 때마다 말씀하시고, 엄마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꿈을 꾸듯 들려 주시던 그러한 집..... 아마도 주인공 에스페란자는 두 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러한 '나만의 집'을 상상하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권에 그들의 꿈을 담아야 하는 가장의 모습이 암시하듯이, 이 가족은 그러한 집을 가질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저곳 여러번의 이사를 하다가 드디어 이 가족이 말하는 진짜 '우리 집'이 마련된 곳은 바로 망고 스트리트의 빨간 집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꿈꾸던 물도 잘 나오고 수도관도 멀쩡한 집, 텔리비젼 속의 멋진 저택처럼 멋진 계단도 있고 지하실도 있고, 욕실도 세 개쯤 있어 순서를 정해 목욕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그런 집은 아니었지만, 수녀님에게 그리고 교장 선생님에게 집을 알려주려고 손가락으로 가르키려할 때면 한편으로는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하는 집이었지만, 비록 현관앞 계단이 너무 비좁고 창문은 너무 작아 답답하고 집 주변에 깨진 벽돌들이 널브러져 있는, 앞마당 같은 건 없고 시시한 가로수 몇그루와 조그만 차고에 욕실도 하나요 침실도 하나밖에 없는 집이었지만 에스페란자의 모든 가족에게 진짜 '우리 집'은 그 망고 스트리트이 작은 빨간 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복권을 사면서 소망을 품고, 어머니는 이야기 속에 꿈을 담고, 에스페란자 역시 '나만의 집'을 그리며 그리 생활하겠지만, 그러한 소망과 꿈과 바람을 담고 있는 현실은 멕시코 이주민들이 모여살고 있는 허름한 망고 스트리트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에스페란자는 그 공간에서 친구를 만나고 사람을 사귀고 가족과 부대끼며 마음과 영혼과 정신이 성숙해져 갑니다. 때로는 가슴 아픈 사연들과 절망스런 모습들 가운데서, 때로는 정겨운 모습들 가운데서, 그리고 가끔씩은 소망과 웃음이 담긴 사연들 속에서......
저자가 에스페란자를 통해서 말하는 망고 스트리트는 아마도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우리네 옛 집과 길과 골목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스페란자가 '나는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 받았지만, 창가의 자리만은 물려받지 않겠다'고 자신의 또렷한 자아를 깨닫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세상살이의 이치를 알아가고, 또한 자신의 가슴속에 꿈을 키워가는 자람의 공간이었던 망고 스트리트는 바로 우리가 그리 간직하며 자랐던 우리네 집과 동네, 길과 골목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에스페란자가 마지막에 '그들은 내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났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남겨 두고 온 그들을 위해, 떠날 수 없는 그들을 위해, 돌아오기 위해 떠났다는 것을...... .' 이라고 말하였듯이, 우리가 남기고 온 그곳도 매번 우리의 추억의 샘을 자극해 돌아가고픈 곳이 되어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망고 스트리트와 그곳의 빨간집은 에스페란자가 그리도 벗어나기를 원하였던 곳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에스페란자가 자라고 꿈을 꾸게 한 근간이 되어준 없어서는 안될 곳이었다는 아이러니도 함께 담고 있는 그런 곳이요, 나중에라도 영혼이 쉼을 바랄 때 등기대어 쉬고 싶은 추억이라는 공간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겠지요. 장소와 지명과 사람이 서로 바뀌어 있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당신의 망고 스트리트는 어디십니까?...... ^^
참고로 역자 후기를 보면 이 책이 산문시라고 불릴 만큼 문체가 아름답다는 소개글이 있는데, 앞에 언급한 '나만의 집'같은 경우는 번역된 글을 읽어도 그러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다른 많은 글들에서는 그러한 맛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먼저는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쳤다는 한계로 인함이겠지요. 그런 면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어느 정도 언어에 대한 능력이 되는 사람이라면 원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면이 있어 마지막에 사족을 붙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