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섯 살이 되면
프레드 엡스타인·조수아 호르비츠 지음, 이경남 옮김 / 한언출판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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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인 프레드 엡스타인 박사는 소아외과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서, 어린 환자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정으로, 자신의 생애의 대부분을 소아종양환자를 치료하고, 더 나은 새로운 치료법들을 개발하고 시도하며 보낸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의 바탕이 된 소아환자들의 이야기는 그의 이러한 경력이나 업적 때문에 씌여진 것은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그가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해 심각한 뇌출혈을 입고, 한달여의 기나긴 혼수 상태를 이겨내고, 과거에는 자신이 치료했던 바로 그 어린이들이 자신의 눈앞에서 의연하게 어려움과 고통을 이겨내며 전진하는 모습을 보이곤 하던 그러한 재활치료 과정에서 씌여진 것입니다. 그의 경험에 더하여 인생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자신이 치료하며 살폈던 아이들이 이제는 자신의 삶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치료자가 되어주고 있다는 깨달음에 이른 뒤에 씌여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환자들에 대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온전히 그들의 아픔과 절망, 눈물과 웃음과 희망까지도 보듬어주는 넉넉한 치료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는 몸으로는 이미 예전의 프레드 엡스타인이 아니지만, 자신의 일생과 그 일생에 보태졌던 소아 환자들과의 관계속에서 더 큰 용기와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아마 그러한 이야기가 그가 진정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다섯 살이 되면요, 두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거예요.' 저자가 25년전, 지금과 비교하면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치료하던 나오미라는 아이가 수술후에 힘겹게 몸을 가누며 침대에서 일어나서 저자에게 처음 한 말입니다. 당시 나오미는 네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두개의 뇌동맥에 싸여있는 종양이 있었고, 그 두개의 동맥중 하나가 터져서 혼수상태로 병원에 실려 온 상태에서 수술을 받은 것입니다. 물론 그리 말하는 나오미를 보면서 저자는 그가 내일도 이리 살아있을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나오미는 매일 저자에게 다섯 살이 되면 하고 싶은 새로운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내가 다섯 살이 되면요..... 틱택도 게임에서 오빠를 이길 거예요./..... 운동화 끈을 두 겹으로 묶는 법을 배울 거예요!/..... 나도 오빠처럼 만화책을 읽을 거예요./..... 줄넘기를 배울 거예요. 뒤로 넘는 법도요.' 매일 회진 온 저자를 보고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오미는 그리 자신의 소망을 말하였습니다. 비록 어린이라도 느낄 법한 생명의 위험속에서도 그렇게 '긍정적인 다짐과 희망적인 결심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소중한 자산이 되는지'를,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그러한 장애물을 뛰어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해 가는지를 저자의 눈앞에서 가르치고 보여 준 것입니다. 여기에 이어지는 많은 소아 환자들의 이야기는 이러한 깨달음과 믿음의 연장입니다. 아이들에게 숨겨진 무한한 용기와 희망, 회복력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니까요....

 또 한가지 책속 이야기중에 언급하고 싶은 환자 이야기는 크리스 램버트라는 악성 뇌종양으로 수술과 화학요법을 반복하였지만, 결국은 생명을 구할 수 없었던 아이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나오미에게서 어떠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어린 환자들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한 저자가, 각고의 노력으로 성공과 명예를 얻어가며, 그것들의 달콤함에 취하고 오만해지던 순간에 크리스의 어머니에게서 날아온 편지가 있었습니다. 크리스가 죽기 2주전에 썼던 시가 적힌 편지였는데,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죽음이 가까이 왔습니다. /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애원합니다. / 따뜻한 손으로 떨리는 제 손을 잡아 주세요......' 크리스를 살리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던 저자는 그 편지 앞에서 자신은 그 아이를 놓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사랑을 필요했던 것이었는데, 나는 그걸 몰랐습니다...... 나는 그때 애타게 나를 부르는 크리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몹시 후회했지만 때가 너무 늦었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아이들이 나의 사랑을 필요로 할 때 나는 얼마나 많이 귀를 막고 있었을까요?' 완벽한 의학 기술자가 되기 위해 앞으로만 달려왔던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많은 아이들에게 훌륭한 의술을 가진 능력있는 의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환자를 살린다는 것은 그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긴 심오한 일이라는 자각을 한 것이지요. 아마도 이러한 자각은 저자와 같은 의사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사람에 대한 애정과 손내밀어 잡아 줄수 있는 따뜻함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저자가 자신이 다루었던 환자들과 동일한 과정을 거치며 회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린 환자들을 생각하며 쓴 것들입니다.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여정 속에서 씌여진 이야기들 속에는 어린 아이들을 통해서 깨달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길,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오늘을 충실하게 사는 지혜, 두려움에 과감히 맞서는 진정한 용기, 희망을 꿈꾸게 하는 우리 안의 기적, 마음속에 숨어 있는 위대한 의지, 그리고 죽음과 눈물 속에서 피어나는 끝없는 사랑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저자의 어린 환자들에 대한 감탄과 찬사는 일차적으로는 자신의 처지에서 스승이 되어 준 아이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그리고 그에 더하여 독자들에게는, 역경을 이겨내고 위대한 용기와 희망이 담긴 삶이 무엇인가를 보여 준 어린이들의 지칠 줄 모르는 삶에 대한 의지와 회복력에 대한 진솔한 나눔에의 초대가 아닐까 합니다. 저자의 긴 이야기는, 갈수록 현실적이 되고 자기 능력에 대한 벽을 쌓아가는 어른들에게 자신의 질병 앞에서 용감하고 당당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리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일곱 번 넘어졌다면, 여덟 번 일어나세요!' 그러면 다섯살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나오미가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을 모르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용기는 두려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판단하는 일이다

-Ambrose Red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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