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코필리아 -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
올리버 색스 지음, 장호연 옮김, 김종성 감수 / 알마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음악은 귀로 듣고 감상하는 예술로서의 의미가 강할 것입니다. 고전음악에서부터 현대의 대중음악이나 가요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의미로서의 스펙트럼만 본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를 이루고 있고, 거기에 덧붙여 각 나라의 전통음악들을 합쳐 놓는다면 그 방대함과 다양함은 말이나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런 음악은 우리의 삶 순간순간에 끼어들어 우리에겐 희노애락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러한 우리 삶에 다양하고도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음악자체가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 자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음악이 우리의 뇌에 인지되고 정서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질병의 증상이 되거나 질병의 치료를 위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고, 단순히 음악을 듣고 즐기며 흥얼거리는 수단으로서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음악을 인식한다는 것은 음이나 음색, 음정, 화성, 리듬 등을 인식한다는 것이고 또한 뇌의 여러 부분에서 그러한 요소를 통합하여 새로운 정서적인 반응이나 의미를 구축하는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것들이 어긋났을 때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이야기의 진보속에는 발전된 의학과 뇌영상 촬영 기법이 아마도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인 올리버 색스가 신경과 의사라는 점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상당히 한정된 주제이고, 뇌과학이라는 분야는 아직도 미지의 부분들이 더 많은 부분이기에 어찌보면 저자가 지금 책속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시간이 조금 지나면 고전적인 이야기들이 되거나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의 뇌라는 곳이 알려지지 않은 만큼 찾아내서 들려줄 이야기도 그 만큼 흥미롭고 많다는 의미가 될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시작 지점이 바로 많은 특별한 환자 증례들이 암시하는 뇌와 음악이 관련되는 흥미로운 현상들에 대한 탐구라고 하겠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언어만큼이나 오래전에 인간의 뇌속으로 들어온 음악이 귀의 고막에 잡히고, 청각시스템을 통해서 뇌에 전달되고 뇌에서 복잡하게 이해되고 통합되는 과정, 그리고 청각과 무관하게 뇌의 작용만으로도 충분히 음악을 마음속에 연주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등에 대한  여러 증례와 연구를 통한 탐구와 이해에 대한 내용들이 가득히 담긴 내용을 읽어 가노라면 일반독자가 읽기에는 조금 난해감마저 느껴지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단지 지금까지 귀로 듣고 흥얼거리던 가요나 고상하게 앉아서 감상하던 고전음악이라는 단편적인 의미에서의 음악에 대한 이해에서 벗어나, 정말로 언어와 마찬가지로 한편으로는 언어보다도 더 원초적인 면에서 인간 삶의 일부로서 기능하는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4부로 이루어진 책의 내용은 다양한 상태에서의 음악과 사람 그리고 뇌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줍니다. '1부 음악에 홀리다'에서는 번개를 맞고 나서 갑자기 음악에 열정을 쏟기 시작한 정형외과 의사, 음악 발작, 음악 유발성 간질, 음악 환청 등 음악과 관련된 병적 상태들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2부 놀랍고도 풍부한 음악성의 세계'에서는 음악성에 대한 의미, 절대 음감, 두 귀의 스테레오로서의 역할, 시각장애와 연관된 새로운 청각의 세계와 음악, 음악을 들으며 색을 느끼거나 맛을 느끼는 공감각 등 우리가 쉽게 음악이라고 하지만 음악을 인지하고 표현하는 것속에 얼마나 다양한 과정이 포함되고 그것들이 통합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와 일반인으로서는 느끼지 못하는 전혀 다른 의미의 음악세계라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3부 기억과 동작, 그리고 음악'에서는 기억상실증 환자나 실어증 환자, 투렛증후군, 파킨슨병 환자 등의 치료과정에서 사용되는 음악의 효용 등에 관한 이야기인데, 기존의 운동계나 감각계와는 전혀 다른 과정을 통해서 작용하는 음악을 통해서 환자들의 장애가 교정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마도 환자의 치료에 음악이 사용되는 것들에 대한 많은 근거들 중의 몇가지 사례들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4부 정서와 정체성, 그리고 음악'에서는 음악이 우리의 정서와 정체감에 미치는 영향들에 대한 내용인데, 특히 일반적인 부분에서는 지적인 문제가 있지만 음악이나 사교성에서 만큼은 천재적인 소질을 보이는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들과 치매환자에 대한 음악치료를 통한 파괴된 인지기능 등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책에서 언급한 많은 부분들이 아직도 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고, 또한 실생활에 적용되는 음악치료들도 더 많은 개선을 거쳐야겠지만, 저자의 40여년동안의 임상 경험과 자료 축적으로 이뤄진 책의 내용은 여러 실례에 대한 꼼꼼한 추적의 결과들이나 동일하게 해석될 수 있는 다른 환자들의 실례, 그러한 환자들에 대한 연구결과 등을 통해서 음악과 뇌에 대한 한단계 높은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즉 음악이 뇌에 이해되고 또한 생활속에 표현되는 다양한 상태-정상적이기도 하지만 병적일 수도 있는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음악이라는 산물이 그냥 우리가 흥얼거리는 활력소나 감상하는 도구로서의 기능보다 훨씬 더 뿌리 깊은 의미 -음악을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인간 존재 자체를 이해한다는 의미- 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고, 또한 아직도 우리가 찾아내지 못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환자들의 다양한 증상을 통해서 뇌와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그 안에 담긴 해석과 통찰력을 통해서 음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 뇌의 근원적인 곳에 자리잡고 있는 원초적이고 매력적인 '그 무엇'인지에 대해서 깨닫게 해 주고, 또한 그러한 깨달음이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에 이르게 해 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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