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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환상동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은경 옮김, 이애림 외 그림 / 이레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그리고 우리의 전래 동화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의 동화책을 대할 때면 거의 항상 일정한 틀 -권선징악, 고진감래 등- 안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아이들에게 세상살이의 교훈이나 어른들이 그리되기를 바라는 -하지만 이기적 욕심과 교만 등으로 결코 이루지 못한- 바람이 투영된 선하고 아름다운 사회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끔씩은 그러한 경향에 대한 패러디를 통해 통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이야기들이 등장 - 흑설공주, 아기 늑대 세마리와 못된 돼지 등- 하기도 하지만, 많은 아이들에게 읽히는 고전이나 전래동화에서 창작동화에 이르기까지 교훈이나 가르침의 내용만이 조금 다양해졌지 그러한 경향은 변하지 않은 듯 합니다. 물론 과거의 이야기들에 비해서는 요즈음의 창작동화들은 훨씬 현실적인 감각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교훈과 가르침이라는 지향점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을 긍정하고 세상의 밝고 희망에 싸인 모습을 기대하며 배워가는 것이 분명 잘못된 것은 아닐터이고, 그러한 것들을 무작정 비판코자 하는 것은 대책없는 또 다른 편협함을 낳는 것일 겁니다. 그래서 무작정 비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이상적인 모습을 담은 동화들과 균형을 이루는, 세상의 보이는 현실이나 숨겨져서 표면적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가면을 들춰주는 이야기들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에 생각이 이르게 되고 그런 균형추의 역할을 수행해 줄만한 동화책이 바로 오스카 와일드의 환상동화와 같은 이야기들이지 않을까 합니다.
책에 실린 아홉편의 동화에는 지금까지의 동화 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른 삶의 방식과 시각을 지닌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이 결국은 선하거나 깨달음을 얻게 되기는 하지만, 그들이 반드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닌 존재로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선하지도 그렇다고 반드시 악한 것도 아닌 두가지 얼굴 모두를 지닌 가능성으로서의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까요. 또한 백설공주나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공주와 왕자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도식적인 결말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것이 아닌, 때로는 죽음으로 때로는 파괴와 버려짐으로 그리고 때로는 선한 자의 실패와 악한 자의 이득으로 결말이 나기도 합니다. 즉 우리의 삶속에 나타난 그러한 부조리함들을 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녹여 놓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인공들은 항상 선하거나 포근한 것이 아니어서 별아이처럼 극단적인 이기심을 보이다가도 자신에 대한 자각을 한 이후에는 또한 그 누구보다 더 선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거인처럼 이기적인 마음에 정원을 폐쇄하지만 이내 자신의 잘못을 체험을 통해서 깨닫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품는 자각에 이르기도 하고, 황금과 보석으로 꾸며진 행복한 왕자의 겉모습을 찬양하던 이들이 모든 화려함을 없는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서 행복한 왕자의 동상의 몰골이 흉해졌을때 냉랭히 돌아서는 천박한 인간정신에 대한 조소와 그런 왕자의 버려진 심장을 선택하는 신의 손길에 대한 묘사는 그 자체로 세상을 향해 지르는 시원한 발차기가 아닐는지.....
무엇보다도 아홉편의 동화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야기의 흐름이나 구성을 이루는 작은 이야기들은 충분히 동화적인 상상력과 발랄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이야기 꾸러미들이 한덩어리의 큰 이야기로 꾸며져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들은 지극히 현실적인, 아니면 현실보다도 더 현실적인 사람과 그들이 사는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행복한 왕자에서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는 왕자의 따뜻한 심장보다는 루비와 사파이어 그리고 황금으로 꾸며진 외양을 더 찬양하는 시대, 인어를 사랑한 어부처럼 자신의 사랑에 충실했을 때 주어지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이 비일비재한 사회, 한스의 어리석음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이용하기만 하고서도 그의 장례식에서까지 그 뻔뻔함을 버리지 못한 방앗간 주인의 창창한 삶과 한스의 억울한 죽음으로 대별되는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삶의 모양이라는 것에 대한 통렬한 비꼼 등은 어른들이 보아도 충분히 흥미와 자신에 대한 자각을 얻을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제목은 환상 동화였지만 환상과 이야기 속에 세상살이의 현실더 생생하게 담은 지극히 현실적인 동화라고 해도 옳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