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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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는? 평상시에는 동물과 식물의 구분만큼이나 명확하다고 생각되는 이 질문에 막상 답을 하자니 말문이 막힙니다. 그 사이에 있는 헛갈리는 존재들에 대한 생각 때문이겠지요. 바이러스는? 요즈음 광우병으로 관심을 끄는 프리온은?...... 저자는 '생명이란 자기 복제를 하는 시스템이다'라는 정의로 책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생물학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자기복제를 한다는 말에 문득  DNA구조를 통해 부단한 자기복제의 과정을 수행하는 세포의 특징을 떠올릴 것이고, 거기에 생명의 포인트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겠지요. 저자 역시 여기DNA에서 자신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DNA는 저자가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매듭일 뿐이지 자기복제라는 경이롭지만 싱겁기도 한 정의로 생명을 재단하고 끝내는 것은 아닙니다.

 제임스 왓슨(James Watson)과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저자가 '생명이란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는 시작이 되는, 아름답고 황홀하기까지한 이중나선의 DNA 구조를 최초(?)로 밝혀낸 이들입니다. 상보적인 염기서열 구조를 하고 있는 이중나선 구조가 풀리면서 플러스 가닥과 마이너스 가닥이 생기면, 그 가닥들을 모체로 새로운 상보적인 가닥이 생기면서 두쌍의 새로운 DNA를 완벽하게 만들어 내는 시스템을 통해 거기에 새겨진 유전정보를 자기복제하여 후대에 전하게 되는 생명의 본질을 저자는 자신의 정의에 담은 것이지요. 그러한 위대한 발견자들에게 저자는 경의를 표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지만, 그들에 앞서 '유전자=DNA'라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한 오즈월드 에이버리와 DNA 염기의 네가지 구성 성분중에 A와 T, C와 G의 함유량이 같다는 사실을 밝혀낸 어윈 샤가프에 대한 경의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DNA의 다량 복제 기술인 PCR 기법을 드라이브 데이트 중에 고안해 냈다는 멀리스에 대한 이야기는 그러한 발견이 그에게 노벨상까지 쥐어줬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그 과정이 하나의 전설 -신이 다른 모든사람을 제쳐두고 그에게만 비밀의 문을 열어주었다는 전설-이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법한 극적인 요소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소설같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과연 왓슨과 크릭이 최초의 이중나선구조의 발견자인가? 그들과 같은 시기에 X선 결정학을 통해서 RNA의 구조를 연구하고 있던 로잘린 프랭클린, 그리고 그의 상관격이던 윌킨스, 윌킨스를 통해서 프랭클린의 X선 사진을 훔쳐(?)본 왓슨, 또한 영국의학연구기관에 제출된 프랭클린의 DNA에 관한 데이터를 몰래 훔쳐볼 수 있었던 크릭에 대한 이야기인데, 한편의 음모와 스릴, 희망과 절망, 찬사와 반역 등이 담긴 소설의 전개를 보는 듯한 흥미진진함을 담고 있습니다. 과학의 뒤안길에 담긴 흑막이라고 할까, 결국 노벨상은 왓슨과 크릭, 윌킨스에게 돌아갔고, 프랭클린은 그들 공범자들이 노벨상 단상에 서기 4년전 암으로 세상을 마감합니다.... 

 다시 생명에 대한 정의로 돌아와서 자기복제 시스템을 생명이라고 정의한다면 바이러스는 생명체인가? '기생충처럼 다른 세포에 기생해서 완벽하게 자신을 복제해 내기는 하지만 입자단위를 보자면 무기질적이고 딱딱한 기계적 오브제로서 생명으로서의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바이러스를 생명이라고 해야할까? 이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는 저자는 자기 복제라는 개념 너머로 생명현상에 대한 고찰을 확장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중요한 요점이랄수 있는 '생명이란 동적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다'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물리학자인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제기된 두가지 질문 즉, '유전자의 본체는 혹시 비주기성 결정이 아닐까?'와 '원자는 왜 그렇게 작을까?' -역으로 생명체는 원자에 비해 왜 그렇게 커야만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나서는 것으로 새로운 고찰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쇤하이머가 실험을 통해 얻어낸, 물리화학적인 면에서 접근한 생명에 대한 탐구의 결과 엔트로피 증대의 법칙에 항거하여 생명의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 끊임없이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명의 동적평형 상태에 대한 개념과 '생물이 살아있는 한 영양학적 요구와 무관하게 생체고분자든 저분자 대사물질이든  모두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이란 대사의 계속적인 변화이며, 그 변화야말로 생명의 진정한 모습이다'라고 말하며 그것을 '신체 구성 성분의 동적인 상태' (The dynamic state ig body constituents)라고 부른 다이내믹한 흐름에 대한 개념을 바탕으로 자기 복제를 하는 존재로 정의된 생명을 동적  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라고 재정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동적평형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작동하는 단백질과 세포와 세포막, 유전자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내용의 대부분은 저자의 경험과 어우러진 과학에 대한 내용이지만 딱딱하기 보다는 소설책만큼이나 흥미로웠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만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저자가 과학자이긴 하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쌓아온 길들에 대한 충분한 되새김을 통해서 인문학적으로도 훌륭히 자신의 분야를 소화해 낸 안보이는 노력이 있어서이기도 하겠고, 남다르게 갈고 닦여진 글솜씨에서 연유한 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생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열정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깨닫고 알게 된 만큼만 겸손하게 전달하고자한 절제된 글솜씨도 그 이면에 책의 무게를 더하는 이유가 되는 듯 합니다. 저자는 두가지 정의로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 뿐이지만,  생명을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며 동적평형 상태에 있는 흐름이라는 자신의 평생에 걸친 고찰의 결과를 진지하게 담은 목소리를 통해서, 생명에 대해 지금까지 내가 품고 있었던 막연한 신비로움이나 경외감 이상의 진지함 -'생명이란 이름의 동적인 평형은 그 스스로 매 순간순간 위태로울 정도를 균형을 맞추면서 시간 축을 일방통행하고 있'으며 이는 '절대로 역주행이 불가능 하며, 동시에 어느 순간이든 이미 완성된' 상태여서, '혼란을 야기하는 인위적 개입은 동적평형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다'는, '표면적으로는 변화가 없어보여도 이미 내적으로 무언가 변형되고 손상을 입고 만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연의 흐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 외에, 그리고 생명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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