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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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누구나 의학이 아직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는 의학기술로 어찌하지 못하는 질병들이 도처에 널려 있고, 또 다른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페니실린으로 시작된 항생제의 혁명을 거쳐 일견 많은 감염성 질환들을 정복해가면서 한껏 부풀어 올랐던 모든 질병을 정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대의학에 대한 기대는 결국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한발한발 더디기만 한-하지만 의미있는- 발걸음으로 또다른 개선의 과정을 걷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입니다. 물론 그러한 개선의 과정이 과거에 비하면 놀랄만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완전하지 못하고, 실수투성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이없는 실수로 사람을 놀래키는 모습으로 현대의학은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환자들은 현대의학이 완전하지 못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완전하고 안전하게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완전하지 못한 의사와 현대의학에 기대어서 말입니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모르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현대의학이 얼마나 모르는가에 대한 예로 엉덩이에 총상을 입은 젊은 청년에 대한 자신의 진료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방광과 장을 관통한 것이 의심되어 응급수술을 했건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고, 기존의 관통을 의심할 만한 소견도 이내 말끔히 사라져버린 환자, 하지만 수술을 마치고 다시 확인한 사진에 복부안쪽에서 총알이 발견된 환자에 대한 황당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의사들이 안다는 것, 그리고 그 지식을 통해서 확신을 가지고 하는 의료행위들이 얼마나 쉽게 부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고백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외부에서 기대하는 현대의학의 논리정연하고 정확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불완전성과 불확실성, 부단한 변화와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모험이 담긴 목숨을 건 줄타기인지에 대한 고백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현대의학 안에 있는 과학이 또한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습관과 직감, 때로는 낡은 추측으로 얽혀, 아는 것과 목표로 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만들고, 그 간극으로 인해 일이 꼬이게 되는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풀어내고 있습니다. '보기보다는 덜 완벽하지만, 또한 보기보다는 특별한' 의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말입니다. 

 저자가 현대 의학을 들여다보는 내용은 다양한 진보와 발전을 자랑하는 의학의 눈부신 모습이 아니라, 완벽해 보이고 적어도 어느정도 잘 통제되고 있어 보이는 의학과 의료시스템 속에 숨어있는 오류의 가능성과 불가사의,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것들입니다. 정확하고 논리정연하게 진행되는 듯한, 의사를 통한 의학의 실행속에 담긴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국 많은 이들에게 의학에 대한 불신과 비난을 낳는 소재가 되고 -서점가의 많은 책들이 이러한 냉소적인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있지만, 적어도 저자는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의학의 본모습이 그러하다는 고백을 하고 있고, 또한 애정어린 시각으로 그 안에서 고민하며 문제를 헤쳐나가려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의학의 모습을 말입니다.

 1부에서는 의학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신출내기 의사들이 술기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의 능숙한 의사가 탄생하기까지 겪어야 하는 위험과 암묵적인 인정 등에 대한 이야기에서 부터 의사들이 실수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러한 실수를 의사사회 내부에서 치열한 의견교환을 통해서 교정해 나가는 과정,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아픈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닌 건강한 사람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남들과 단절된 혼자의 삶을 사는 모습에 대해서, 그리고 굿맨이라는 의사의 실례를 통해서 나쁜의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좋은 의사가 어느 순간에라도 나쁜 의사로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과정이 잘 통제되거나 걸러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2부에서의 의학의 지식과 실제 현실속에서 발생한 사건들 사이의 불가사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미신일 뿐이라고 믿었던 '13일의 금요일의 보름달'인 날, 당직을 서며 그 미신이 현실이 되어버린 일, 의학의 역사를 지배하였던 통증에 대한 가설의 변화에 따른 통증에 대한 이해와 치료의 변화, 그리고 의학적이라기 보다는 사회문화적이라거나 정치적인 성격을 띠어가는 통증의 성격, 심한 임신성 구역증을 겪는 산모가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을 통해 보는 병적인 것이라고 취급하여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든 치료하려고만 했던 의학의 모습에 기대어- 호전시켜보려고 했던 구역증의 또 다른 의미에 대한 고찰, 수술을 통해 안면홍조를 치료했지만 심리적인 위기를 겪는 아나운서를 통해 단순한 수술을 통해 달라진 그리고 더 당당해지기까지하는 모습과 진정한 내면은 그대로이고 수술을 통해 겉으로 나타난 모습만 바뀌었을 뿐인 자아 사이의 충돌, 현재 효과가 인정되었지만 미래의 여러 합병증이나 위험성까지는 확인되지 않은 위수술을 통해서 비만증을 고치려고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의학이라는 표면뒤에 감춰진 의학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의학의 수수께끼와 아직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죽은 이의 부검을 통해서 진단오류의 경우가 의사의 무지와 무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경우도 있다는 것, 소아 돌연사 증후군의 사례처럼 이유나 원인을 알거나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 풀어내기가 쉽지 않은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 사이의 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문제, 의료인으로서 무수히 부딪히는 불확실성의 회색지대에서 결국 객관적인 증거나 알고리즘의 부족속에서 의사의 감(느낌)에 의존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 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러한 불확실성과 무지에 현명하게 대응하고자 하는 의사들의 고민을 담아 들려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분명 냉정하고 딱딱해 보이는 의학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저자는 이야기 책을 엮어가듯이 내용을 술술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의학의 본질에서 시작하여 내면에 숨겨진 고민과 부족함, 그리고 특별함 등에 대한 것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진심도 잃지 않고 있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사와 병원 그리고 현대 의학에 대한 따뜻한 이해의 기회가 되고, 의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겸손함과 불확실성과 오류의 가능성에 대항해 현명하게 싸우고자 하는 열정, 그리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질병과 부딪치는 현장속에서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겨 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지식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는 아직 더 나아질 수 있다.'

'어떤 조치가 취해진다해도 의사들은 때때로 비틀거릴 것이며, 그런 우리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우리에게 요구할 것은 완벽이 아니라 완벽을 향한 중단없는 노력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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