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길을 잃어라 - 시각장애인 마이크 메이의 빛을 향한 모험과 도전
로버트 커슨 지음, 김희진 옮김 / 열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눈이 먼 상태에서도 수십년을 멋지게 살았던 시각 장애인이 눈을 뜬 이야기라는 책소개를 보면서 누구든 숱한 역경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이야기를 기대할 것입니다. 물론 그 중 하나에 나도 해당됩니다. 눈을 뜨고 세상의 온갗 색과 모양과 사물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눈뜬 사람의 입장에서는 명백하게 세상을 다시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것은 축복이고, 앞을 보지 못하고 어둠속에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마도 세상이 무너지는 것과 똑같은 정도의 재앙이라고도 할 수 있을겁니다. 그래서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하면 누구나 환호하면서 아낌없는 축하를 해 주고 관심을 보일 겁니다. 눈을 뜨고 세상을 보게 된다는 것의 의미가 너무도 당연한 눈뜬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하지만 세살때 화학적인 폭발사고로 시력을 상실하게 된 마이크 메이의 일생을 적은 이 책은 눈뜬 사람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당연히 본다는 것의 의미를 자기 중심적으로 느낄 수 밖에 없어서 생기는 것이겠지만- 즉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멋지게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며, 눈을 뜨고 본다는 것이 분명 축복이지만 나이가 들어서 시력을 찾는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히 눈으로 빛을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복잡한 것들이 얽혀 있음을, 그리고 세상을 본다는 축복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당장의 의학적인 위험부터 시작하여 본다는 것의 의미를 끊임없이 의식적으로 익혀야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정서적인 혼란과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앞을 못보는 상태에서 세상에 나서는 용기도 기꺼이 길을 잃으리라는 용기의 표현이지만, 세상을 보기로 결정하고 수술을 통해 새롭게 눈동자에 빛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는 것도 또 다른 의미에서 기꺼이 길을 잃으리라는 더 큰 용기의 표현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진정한 용기. 마이크 메이의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과 또한 각막줄기세포 및 각막이식을 통한 새로 눈뜬 자로서의 삶 자체를 이리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마이크 메이라는 한 시각장애인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을 읽는다면,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용감하게 삶을 헤쳐가는 한 남자를 보게 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집안의 그늘진 곳에 수동적으로 남아있지 않고, 앞을 보는 이들이 하였던 모든 것을 똑같이 때로는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마저도 개의치 않고 도전하던 멋진 모습이 책에 담겨 있으니까요. 물론 그리 살기 위해서는 앞을 보는 이들보다 더 용감하고 더 무모하게 살아야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삶을 통해서 그것이 무모한 것이 아닌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나 골대에 부딪히더라도 남들과 같이 축구를 하고,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무선 햄 라디오 통신을 위해 25미터 높이의 안테나를 홀로 세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리고 남들이 다니는 일반학교를 거쳐 대학에서 공부하고, 스키를 타고 세계기록을 작성하였던, 또한 CIA에 근무하고 은행원으로서도 일하고 자신의 사업에 뛰어드는 대담함을 보이는 모습속에서 -우리가 보기에는 무모하고 특별나다고 표현하겠지만, 그로서는 적극적으로 세상을 사는 모습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모습속에서- 용기있게 자신의 삶을 헤쳐나간다는 것,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일면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그의 용기를 보게 되는 것은 그 다음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상을 보기전의 시각장애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분명 다른 시각장애인보다 더 활동적이고 적극적이고 감동적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적어도 그와 보조를 맞추며 그의 삶을 지지하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세상을 보기 위한 각막수술을 받아들이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래서 아무도 본다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못한 길로 과감히 발걸음을 옮기고, 자신이 최초로 가는 그 길에서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본다는 것을 배우고 익히는 모습은 진실로 용기있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살아있는 기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메이에게 용기가 있다고, 그의 삶에 다른 이야기와 다른 감동이 있고 진정한 용기가 있다고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가는 길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의 의미가 무엇이고 몰랐어도 과감히 도전하였고, 그길이 외롭고 힘들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길을 잃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라는 생각입니다.

 세상을 본다는 것의 의미. 이 책을 다른 각도에서 읽는다면 바로 이러한 시각에서 읽을 수 있겠습니다. 정상적인 시력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는 무슨 얼토당토 않은 이야기로 생각될 부분이지만, 메이가 수술을 받고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서의 이야기는 시각이나 시력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처럼 메이는 처음에 수술을 받으며 다른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고, 책을 읽는 독자들 -나를 포함해서- 대다수도 처음에 약간의 문제는 있겠지만, 결국 정상적으로 세상을 보고 살 수 있으려니 생각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메이가 시력을 회복해가기 위한 과정 -완벽하게 회복할 수는 없는-을 읽고 있노라면 세상을 지금처럼 본다는 것의 의미가 단순히 눈속으로 빛이 들어와서 망막에 상이 맺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됩니다. '눈으로 보고 뇌로 이해한다.' 하지만 메이는 눈으로는 보지만 뇌로는 정확하게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과정을 거쳐야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어렸을 때부터 훈련되고 학습되어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들에 대한 뇌속 신경망이 생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메이는 입체감을 느끼지도 못하고-그래서 계단을 제대로 발견하지도 못합니다- 원근감이나 눈의 착시현상 같은 것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색이나 움직이는 물체는 감지하지만 사람의 얼굴을 서로 다르게 인지하거나 남녀를 구분하는 것과 같은 일도 힘들어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경험과 학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어야 할 이러한 기능을 담당할 신경단위의 연결고리가 형성되지 못했고, 결국 나이가 들어서 눈으로 보는 것은 회복했지만, 뇌로 이해하는 것은 그러한 신경단위의 결핍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메이가 세상을 본다는 것은 그러한 불가능으로 결말을 맺지는 않습니다. 정상인의 관점에서는 분명 메이가 세상을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것이지만, 메이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는 것에는 다른 의미가 생겼으니까요. 그가 시각장애인이었을 때는 그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으로 세상을 느끼고 행동을 하였듯이, 메이는 그때의 자신의 예민했던 다른 감각과 시각 정보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헤쳐나가는 시도를 하기로 하였고, 그래서 그에게 본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고 체험하기 위한 감각하나를 더 얻은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정상인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느끼고 보는 것들을 시간이 갈수록 하나 둘 더 알아갈 수 있겠지요. 바로 메이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중에라도 새롭게 시력을 얻고 혼란스러워 할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보는 것이 정상인과 조금 다를지라도, 새롭게 주어진 감각은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체험할 수 있는 축복이라고, 그리고 그 자신이 앞서서 그 길의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 수 있을지 탐험하겠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빛을 향한 여정을 통해, 정상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에게는 세상의 빛과 색과 깊이를 오롯이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오묘하고 감격할 만한 축복이고 경이인지 아느냐고 , 얼마나 그러한 축복을 감사히 누리며 사느냐고 속삭이는 듯 합니다.

 모험하라. / 호기심에 답하라. / 기꺼이 넘어지고 길을 잃어라. / 길은 항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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