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위대하지 않다] 서평단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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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위대하지 않다 (양장)
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의 이 책에 담긴 주장과 저술 목적의 일면은 다음의 주장을 통해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신이 존재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 신의 이름으로 악행이 저질러졌다는 것, 신을 만든 것이 바로 인간일 가능성, 세상에 피해를 덜 끼치는 대안적인 믿음과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항상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람들의 예로 소크라테스에서 시작하여 스피노자, 볼테르 등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새로운 계몽-인류의 견본은 신이 아닌 인간 그 자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 계몽-이 필요하다 주장을 덧붙이며 자신도 그러한 사람들의 맨끝에 서있는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종교란 그리고 신이란 사람들이 원시적인 두려움과 지배욕에서 발생한 발명품에 지나지 않고, 그로 인한 수많은 악행과 폭력을 담은 광기어린 신앙에서 벗어나 이제는 인간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인본주의적인 시각에서 세상을 살아가야한다는 주장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입니다.
저자가 책의 처음을 신앙인들을 비꼬는 그리고 그들에게 도전적인 자세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보기에는 맹목적으로 보이고, 자기와 같은 믿지않는 사람들의 삶에 무례하게 침범하여 천국과 지옥을 설파하며 신앙을 강요하는 그래서 자신을 편하게 놓아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그들의 신앙이 어떻더라도, 신자들 각자가 자신의 종교에 관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자체에는 불만이 없고 존중하는데, 그들에게는 자신이 베푸는 아량 -즉 참견하지 않고 그냥 자신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조차도 기대할 수 없다는 듯이 비꼬고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저자는 자신이 종교가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고 주장하는 것 만큼이나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이 상관하지 않는다는 종교와 신앙인들에게 더 간접적이고 교묘하게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 저자가 말하는 아량이라는 것도 결국 말장난이고 비꼬는 말에 다름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결국 글로 하는 것이지만 내 눈에는 전쟁을 하자는 말로 들립니다. 저자가 듣는다면 또 여기서 신앙인들의 잔혹성과 폭력성이 튀어나온다고 할 일이지만, 저자의 이러한 자세는 아마 신앙인들에게는 도발로 느껴지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신을 부정하기로 작정한 사람, 저자의 글을 읽으며 느끼는 것입니다. 모든 것들을 심지어 성경의 구절이나 코란이나 유대교의 가르치까지도 자신이 부정하기로 한 종교와 신을 깍아내리고, 신앙인들의 신앙을 조롱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변성기도 겪기 전에 모두 찾아냈다는 종교에 반대하는 네가지 주장에도 그의 생각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종교가 인간과 우주의 기원을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것, 이 첫번째 잘못 때문에 최대한의 노예근성과 최대한의 유아독존을 결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종교가 위험스런 성적 억압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것,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희망사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결국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형상을 기초하여 신이라는 허상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절대화시킴으로서 종교로 인해 발생하는 온갖 고통과 부조리와 만행이 자행되고 있다는 주장에까지 이르고, 그러한 종교의 불합리성과 폐해에 대한 예와 주장들이 저자가 신이 위대하지도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말하는 근거와 조롱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최근의 9.11 사태에서 시작하여 종교의 각종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이나 돼지고기를 예로 들며 종교에서 말하는 음식문화에 대한 비합리성에 대한 지적, 지적설계론에 대한 비판, 구약이나 신약에 대한 조롱 등에 대한 불편함이 마음속에 가득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때로는 비판이 지나쳐 맹목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아마도 무수한 자료들과 주장들을 정리하고 다듬었을 것이기에 책을 덮으며 내놓은 나의 대답들은 어찌보면 초라할 수 밖에 없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느낌이 물론 저자의 주장 중에 일리가 있는 것들도 있고, 종교인들이 분명 반성하고 되돌이켜야 하는 부분도 있다는 것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자의 그런 여러 주장들도 결국은 종교라는 울타리안의 신앙인들이나 사람의 눈에 보기에 부조리하게 보이는 것들에 대한 비판에 의존하고 있기에 더 근원적인 신의 부재에 대한 주장만 있을 뿐이지 그에 대한 명백한 증거는 아니지 않는냐는 것이지요. -한데 저자는 자신이 신의 부재를 증명했다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암스트롱과 같은 이에게는 우주공간이 신의 축복으로 가득차게 느껴졌지만, 가가린과 같은 불신자의 눈에는 우주 어디에서도 신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신앙인들과 저자와 같은 이들의 사이에 있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은 바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서로가 이러이러한 것 때문에 신을 믿는다, 믿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거꾸로 신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삶속에서 겪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한 반응을 결정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물론 이 생각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저자의 자세를 보면 종교를 부정하기로 작정하고 대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싸움은 아마도 끝이 없는 줄다리기일테지요......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3:13-14-
'스스로 있는 자', 모세에게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표현한 이 말은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의미있고 중요한 이름이 되지만 아마도 저자와 같은 이들의 눈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허망한 표현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저자와 신앙인들 사이에는 그 만큼의 간극이, 즉 신은 위대하다고 무릎을 꿇는 모습과 신은 위대하지 않다고 조롱하는 모습 만큼의 간극이 존재한다는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