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와 토끼가 잘자라고 말할 때
카트린 쉐러 글 그림, 고은정 옮김 / 예림당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그림책이라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지만, 다 읽고 나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한 요점이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에 약간은 고민스런 시간이 흘러갑니다. 아이들 책을 읽고서 이리 아리송한 경우는 많지 않았는데, 단지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라는 것인지.... 아니면 이 이야기속에 작가가 자신의 숨은 생각을 감춰놓은 것인지....

 책표지 그림처럼 아기토끼를 본 여우는 혀를 낼름거리며 입맛을 다시고 있습니다. 멋진 식사거리를 발견한 것이지요. 한데 그 여우를 마주보고 있는 아기토끼의 표정이 가관입니다. 조금도 주눅들거나 겁먹지 않고 귀를 쫑긋세우고 반갑다는 미소를 지으며 여우를 다정스레 바라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야기 속의 아기토끼는 '여우와 토끼가 잘 자 라고 말하는 마을'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믿음이 있는 녀석(?)입니다. 여우는 물론 그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한 신념보다는 자신의 뱃속을 채우려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뭉친 녀석이구요. 그래서 아기토끼가 '여우와 토끼가 잘 자 라고 말하는 마을'에서는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말해도 오로지 관심은 자신의 뱃속을 채우는데만, 더 많은 먹잇감을 먹는 것에만 쏠려 있습니다. 그래서 '잘 자'라는 인사도 건성으로하고 나서 입을 쩍 벌리고, '여우와 토끼가 잘 자 라고 말하는 마을' 이야기도 건성으로 하고서는 입을 쩍!, 이야기가 끝나면 침대까지 데려다 주어야 한다고 하는 말엔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 엄마, 아빠 토끼까지 잡아먹을 생각에 씨익 웃고, 아무도 없는 집에 가서 다시 입을 쩍 벌립니다.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 한데 아기토끼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자장가를 불러줘야한다고 우기고, 이러나 저러나 너는 내 먹잇감이라는 생각이었는지 여우는 자장가를 부르다가.... 조용히..... 점점 더 조용히........ 하다가는 잠이 들고 말았네요.^^  그 사이 돌아온 엄마, 아빠 토끼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표지의 아기 토끼와는 확실히 다른, 현실을 아는 어른 토끼의 표정입니다. 그래서 아빠 토끼가 방망이를 들어 잠든 여우를 내려치려는데...... 확고한 신념의 아기토끼가 아빠마저 말립니다. 여기는 여우와 토끼가 잘 자 라고 말하는 마을이라고..... 그래서 토끼 가족은 여우를 집밖으로 끌어내고 여우에게 큰 소리로 인사합니다. '여우야, 잘 자!'라고.... 집에 돌아와 문을 판자로 뚝딱뚝딱 막고서 잠자리에 든 엄마, 아빠 토끼의 표정도 이제는 표지의 그 귀엽고 다정한 아기토끼를 닮았습니다. 여우와 토끼가 잘 자 라고 말하는 마을에서 말입니다.

 분명 비현실적인 내용이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말들은 아마도 아기토끼의 말과 행동에 그대로 담긴 듯 합니다. 아기토끼는 여우를 만나기 전부터 자신이 사는 곳은 '여우와 토끼가 잘 자 라고 말하는 마을'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그랬기에 여우를 보고도 당당하게 그리 요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부모 토끼의 놀라는 모습과는 상반되지요-. 최소한 겉으로만 그러한 신념을 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진정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삶에 연결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기에 여우가 무섭지도 않았고, 아빠 토끼가 여우를 죽이려하자 말리고서는 자신의 신념대로 -비록 자신을 잡아먹고자 했던 여우지만- '잘 자!' 하고 인사하고 고이 보내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자는 평화롭게 그리고 용기있게 산다는 모습의 일면을 아기토끼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자신이 신념대로 믿고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신념대로 나아간다는 것, 그것은 여우를 만나도 잘 자! 라고 인사해야한다고 담대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하고, 위기에 빠진 여우를 도울 수 있는 너그러움과 이해의 넉넉한 그릇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자세가 우리가 서로에게 '잘 자!'라고 인사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이야기가 아닐는지...... 우리가 사는 세상도 여우와 토끼가 잘 자 하고 말하는 마을이겠지요. 이곳에 진정 필요한 것은 여우가 아닌 바로 그 이야기에 대한 신념을 가진 아기토끼들이겠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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