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집쟁이들
박종인 글.사진 / 나무생각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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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집쟁이'라는 말자체는 분명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해서 또는 직업에 대해서 고집스럽다는 표현을 듣는다면, 거기서는 아마도 세상살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손해를 많이 본다거나, 세상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출세나 성공에 이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들여다 보면서도 문득 그런 이들의 삶을 생각하였습니다. 어찌보면 고집스럽다고 표현하기보다는 외로운 길을 걸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왠지 후자의 표현에는 능동적인 면보다는 수동적인 느낌이 많이 담겨서 그래도 책의 제목대로 그들이 삶이 고집스러운 것이었다는 말에 더 마음이 가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주류가 아닌 곁길로 들어서서 자기 길을 고집해서 살고 열매맺고, 결국은 주류사회의 인정을 받기까지 그런 삶을 살아낸 23명의 기록-사진과 글-이 바로 이 책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성공이나 출세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들의 삶이 결코 주류사회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가볍지 않은 무게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이들의 삶의 기록이지요. 온몸의 화상을 딛고 교육자로서 불꽃처럼 살다 간  채규철 선생이나 식물원을 만든 한의사 이환용 선생처럼 어디선가에 소개되어 이미 낯익은 이름들도 몇이 있어 반갑기도 합니다. 다만 아직까지 우리사회에 그들이 삶이 소개되면 잠시 신선한 충격을 가하고,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시간이 조금 지나면 찻잔속의 태풍처럼 성공과 출세-특히 물질적인-를 향해 달려가는 사회의 큰 흐름에 묻혀버리곤 한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움이 일곤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철학자보다 더 현실에 침잠하고 실천하는 농부, 다른 장애인을 위해서 하나뿐인 손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구두를 만들어 내는 장인, 이젠 지나버린 유행가처럼 시대의 뒤안으로 사라진 고전음악감상실을 여전히 운영하고 있는 여인, 세상으로 출가한 스님, 대를 이어 엿을 만들고 파는 가족, 장애로 비틀린 손이지만 그 손을 이용해 맑은 영혼을 노래하는 청년 시인 등..... 23명의 모습이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먼, 호강하며 사는 것보다는 바닥에 더 가까운 곳의 삶의 모습들입니다. 하지만 하나같이 절망보다는 하루하루에 성실했고, 자신의 삶에 고집스럽게 충직한 모습들이었고, 결국 그러한 자세가 이리 하나의 이야기 꽃을 피워냈습니다. 각기 다른 향기와 빛깔과 모양을 가진 삶의 꽃을 피워낸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맡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에, 자신의 삶의 향기와 빛깔과 모양에 눈길을 돌리게 합니다. 저들의 향기와 비교했을 때, 나의 삶에서는 어떤 향기가 묻어나오는 걸까.......

 저자가 쓴 글과 사진속에 표현된 각자의 삶의 이야기는 생각만큼 깊이있게 다가오지 못한것도 사실입니다. 이부분은 아마도 기대가 컸던 것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여하튼 좀더 깊이 있는 삶의 이야기와 감동을 기대했는데, 각자의 멋진 삶의 이야기는 밋밋하게 진행되고, 사진속 인물과 풍경에는 그들의 고집스런 모습보다는 일상에 가까운 또는 연출된 것이 훤희 보이는 것들이 더 많이 담겨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마도 십여 페이지의 공간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 한다는 것의 한계였겠지요. 한권으로 엮어도 모자랄 이야기들이 그들의 삶속에 가득하겠지만, 저자는 그저 그렇게 그들의 삶의 향기를 이야기 속에 슬쩍 묻혀 놓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그들의 인생 깊숙이에 담겨있는 삶의 향기는 결국 독자 자신들이 스스로의 삶속에서 묵히면서 찾아야 할 해답이라는 듯이 말입니다. 결국은 책에서 만난 이들의 삶을 조용히 대면하며 자신의 하루하루의 삶속에서 하나씩 만나며 깨달아가는 것이 이 책을 진정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하게 됩니다. 이 책의 내용을 진정으로 완성시키는 것은 그들의 삶도, 저자의 필력도 아닌 가치있는 삶을 바라는 내 자신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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