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
버락 H. 오바마 지음, 홍수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버락 오바마, 지금은 낯설지 않은 이름이지만, 작년 처음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상당히 낯설음을 지녔던 이름입니다. 이제는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로서 힐러리 클린턴과 막상막하의 접전을 벌이고 있고, 갈수록 그가 말하는 변화와 희망이라는 외침이 힘을 얻고 있는 듯 -물론 그가 꼭 이길거라는 주장은 아닙니다-이 보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중 누가 이기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거나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미국 역사상 진기하고 의미있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기 위한 도전이기에 두 사람 모두에게 박수를 보낼만한 일이지요.

 연임을 성공한 대통령의 부인, 르윈스키 사건을 이겨내고 가정을 지켜낸 현명한 여인, 그리고 상원의원으로서의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진 여인.... 힐러리라는 이름을 들으면 미국인이 아닌 내게도 당연스레 연상되는 생각들입니다. 바다건너 한반도에 사는 촌부에게까지 그녀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만큼 관록과 경력이라는 측면에서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실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언급되고는 하던 대세론의 대세에 해당되었지요. 하지만 그러한 대세를 막아선 것이 지금 이 책을 집필한 젊은 흑인 후보 오바마입니다. 그의 첫번째 책을 통해서 그가 백인 어머니와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 이혼하는 바람에 나중에 커서야 겨우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의 나라를 방문하였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확인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 그 전에는 인도네시아인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기도 하였고, 교육은 주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계시는 하와이에서 받았고, 대학을 졸업하고는 시카고의 빈민가에서 사회사업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그리 자라기까지 백인과 흑인의 혈통을 물려받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또다른 혼돈스럽고 반항적인 시기를 보내기도 하였다는 사실 정도가 내가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담긴 진솔함과  삶에 대한 자세가 많은 부분 감동을 전해주고, 한 인간으로서의 가슴 아픈 성장사가 오바마라는 인물의 내면 깊은 곳까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공감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정치인으로서의 오바마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그리고 많은 미국인들에게 그가 호소하고 있는 변화와 희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이 사실이었는데, 드디어 이 책을 통해서 그가 말하는 강대국 미국이라는 나라에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변화와 희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강을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책은 9가지 주제 -공화당과 민주당, 가치 체계, 헌법, 정치, 기회, 신앙, 국경너머의 세계, 가족-에 대한 오바마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물론 추상적인 생각들만 적어놓은 것은 아니고 그가 그러한 가치관과 태도하에 행했던 여러가지 실천이나 정책적인 결정,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 때로는 방송 인터뷰나 신문 기사를 인용하기도 하고, 자신이 오해 받거나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한 세심한 설명들도 담겨 있습니다. 그의 미국의 희망에 대한 생각의 근저에는 미합중국국이라는 기초를 놓고 헌법을 만든 건국자들에 대한 통찰력있는 이해-대화와 타협이라는-가 깔려 있고, 링컨 대통령이 보인 결단-남북전쟁이라는- 과 타협 또는 관용 - 이 부분은 실제 책의 내용을  읽지 않거나 그의 세밀한 정책을 알지 못한다면 알기 어려운 부분인데, 노예제에 대해서는 단호했지만 미합중국의 통합을 위해 작은 부분에서는 남부의 여러주에 양보를 주저하지 않았던 실용적인 면을 가르키는 듯 합니다- 의 정신을 진정으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가 아홉가지 주제를 풀어가는 근저에도 자신이 미합중국의 자랑스런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대화와 타협이라는 틀안에서의 통합이라는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즉 이라크 전쟁, 낙태문제, 동성애 문제, 감세정책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 등 상대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고 자신들의 주장만을 붙들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현 상태의 대안으로,  서로 대화하고 그 가운데서 공통분모를 찾아내고 서로 양보와 타협을 통해서 대립이 아닌 해결책을 찾아가자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는 이라크 전쟁의 문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 있지만, 부시 대통령의 리더로서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하고, 그의 말에 충분히 귀기울이고 동의할 것은 동의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는 그가 말하는 모든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에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어찌보면 그의 자세가 뚜렷한 자기주장없이 주변의 의견에 휘둘리는 듯하게 보일수도, 기회주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삶을 통해서 그리고 정치인으로서의 길에서 보여준 진정성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렇기에 그의 목소리가 많은 이들에게 분열되어있는 미국을 통합할 수 있으리라는 담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듯 합니다.

 아마 이 책에는 그가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로 경선을 하면서 말하고 있을 구체적인 정책이나 비젼에 대한 이야기들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식으로 하면 경제성장률은 목표가 얼마이고, 운하를 건설하니 마니 등의 구체적인 정책목표보다는 가치 지향적인 내용이 가득하다고 해야겠습니다.하지만, 경제를 살리겠다느니,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등의 구호들이 주는 공허함을 품고 있지 않은 이유는 그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그런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그가 삶에서 배운 희망과 절망, 분노와 고통, 기쁨과 슬픔 등을 잊지 않고 진심어린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는 것과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고 상대를 비난하는 자세가 아니라 더디지만 대화를 통해서 서로에게 있는 공통의 가치를 찾아 분열된 사회를 통합하고 그 안에서 잃어버렸던 미국적인 전통의 회복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진정성이 묻어나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열매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있기에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많은 미국인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그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그의 삶과 그의 정치적 행로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와 자세는 지난 수년과 갈기갈기 찢기고 나뉘었다는 분열된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한 사회가 희망을 품고 또한 그것을 이루어 가는 담대함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있는 물음과 답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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