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흐린 날엔 그림책을 펴세요
야나기다 구니오 지음, 한명희 옮김 / 수희재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아이들이 있어서 그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고 살았던 시간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가를 생각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아이들이 손에 들고 읽은 만큼 나 자신도 그 아이들의 책을 손에 들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보는 책들의 분량이 늘어서 그 내용들을 차분히 다 음미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이들이 볼 책은 꼭 나도 읽어보고는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책속을 거닐면서 이 책은 참 좋은 책이구나, 아이들 책에도 깊은 감동과 의미를 느낄 수 있네.... 등등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가지곤 하였던 기억입니다. 한데, 이 책을 보면서 그런 나의 감상보다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어른들에게 그림책의 세계로 돌아갈 것을 권하는 작가의 열정을 보게 됩니다. 그림책이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글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위해 그림을 곁들인 보조적인 의미의 책이 아니고,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세상을 멋지게 표현하고, 또 하나의 생각을 훌륭하게 빗어낸 완성된 작품으로서의 의미가 있다는, 그래서 그 그림책을 나이가 들어서 인생의 경험을 쌓고 나서 찬찬히 읽으면 실로 또 다른 깊은 맛을 찾아낼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과 열정을 말입니다. 

  저자는 일본에서 NHK의 사회부 기자, 논픽션 작가로 일하였으며, 위기관리 분야에 관한 저서를 집필하고 그외의 종말 의료 등의 다양한 분야의 책도 써 내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그림책에 관한 에세이와 캠페인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 것은 아마도 그의 삶속에서 그림책을 재발견한 것이 이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을 앞둔 한 첼로 연주자의 마지막 공연모습에서의 인상과 자신의 어린시절 읽었던 플란다스의 개의 소년 네로의 마지막 죽음의 과정속에서 겹치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 자신의 인생과 그 종결에 대한 긍정적인 납득의 모습을 보고서는 새롭게 그림책에 대한 관심을 가진 듯 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점에서 차례로 발견해 가는 그림책 속의 깊은 세계와 또 다른사람들의 활동을 통해 보게 되는 그림책의 가치를 느끼면서 '어른이야말로 그림책을' 읽어야 할 때라고 확신하고 자신의 확신을 따라 여러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바로 저자가 그림책을 재발견하고 그 가치를 깨달아가는 과정과 그런 자신의 깨달음을 도한이라는 대형 출판도매회사와 요미우리 신문사, 하쿠후토라는 광고대행사를 통하여 전국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한 것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마음의 사막에 물을~'이라는 테마의 1차 프로젝트와 '마음과 언어의 위기 시대'라는 주제의 2차 프로젝트에서 소개했던 각각의 책들에 대한 자신의 감상과 포인트를 정리하였고, 그러한 책들속에 담긴 글과 그림의 주제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한 정리, 그리고 두차례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편지를 보내온 이들의 사연속에서 그러한 활동의 성과와 실질적인 의미를 되짚어 주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책을 읽을 때면, 이 책은 그림이 고운 책, 이 책은 내용이 좋은 책, 이 책은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하는 깊이 있는 책 등등의 느낌을 가질 때가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가끔씩은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 그림책의 매니아가 되었노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는데, 저자와 같은 안목과 깨달음을 가졌던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저자가 나나 그들보다 더 나아간 점은 그러한 가치를 혼자서만 간직하지 않고 자신의 활동을 통해서 그리고 이런 책을 통해서 사회에 돌려주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요즈음 우리 서점가를 보면 어른들에게 히트를 쳤던 자기계발서류의 책들이 -자기계발서가 아니더라도 어른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책들이- 앞에 '어린이를 위한~ '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어린이용으로 발간되는 것이 붐이 아닐까 할 정도로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그중에 몇몇은 잘 팔리는 책의 앞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러한 흐름이라는 것이 결국 우리 사회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 어른들이 달려가는 길에 대한 축소판으로서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역설적인 자기고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른들의 이런 처세술이나 지식, 지혜를 미리 배워서 성공을 향해서 발빠르게 경주하기를 바라는 어른들의 욕심이 숨어 있기도 하겠구요. 이 책을 보면서 우리사회의 그런 모습이 더더욱 건강해 보이지 못한다고 한다면 너무 과한 비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보던 베스트셀러들을 미리 탐독할 것을 권하는 세상을 보는 외눈박이 시각에서 벗어나, 물이 말라 사막이 되어버린 마음 밭을 애처롭게 가꾸고 있는 마음과 언어의 위기를 겪고 있는 어른들이 먼저 지금 아이들의 손에 들려 있는 책에 다가가 잃었던 감성과 눈물과 순전함을 회복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자의 말처럼 앞만보고 달려가던 우리에게 잊어버리고 있던 삶의 감성을 채워주는 샘이 거기에 숨어버린 듯 하니까요. 책의 제목처럼 이제는 마음이 울적한 날엔 그림책을 펴 보아야겠습니다. 인생에 적어도 세차례 -어렸을 때, 부모가 되어 아이와 함께, 그리고 노년에 (이때는 손자와 함께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림책을 펼치자는 저자의 말처럼 그 안에 담긴 세상은 내가 세상에서 다 배우지 못한 것들, 세상에 다 펼치지 못한 것들을 아직도 가득 품고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음을 믿으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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