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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전거
심봉희 옮김, 예안더 그림 / 예림당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백설공주 이야기처럼 아름다운 것도,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신비로운 것도, 그렇다고 해리포터처럼 기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아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참으로 오랫만에 정겨움을 느꼈습니다. 책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어릴적 나의 감정과 삶, 기쁨과 아쉬움들이 내 오랜 기억을 일깨워줍니다. 정말 그때는 이랬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땐 작은 것 하나로도 만족하고, 기뻤었는데..... 나도 친구 자전거 몰래 타다가 우물가 모서리에 부딪혀서 나뒹군 적이 있는데.... 내 친구중에서 책속의 소년처럼 짐자전거를 능숙하게 끌고 다니던 아이도 있었는데....등등등
등에 장난감 칼을 메고, 자신의 등치보다 훨씬 큰 짐자전거를 끌고, 언제나 꼴찌로 졸졸졸 따라가야 하지만 그래도 다정한 친구들과 놀이를 하러 가는 소년의 모습이 어린시절의 부족함에도 만족하며 살 수 있었던 여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날랜 자전거를 타고서 소년을 놀릴려고 이리저리 따라오기 어려운 길로 내달리는 친구들, 하지만 결국은 함께 갈려고 기차 건널목에서 기다리고 있는 소년의 친구들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얄밉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린시절의 치기어린 장난을 보는 듯 하여 미소짓게 만듭니다. 매번 그렇게 친구들과 늠름하게 어울리기는 하였지만, 소년도 친구들처럼 날쌔게 생긴 자전거를 무척이나 갖고 싶었나 봅니다. 친구들은 자전거의 열쇠를 채워야 했지만, 자신은 그냥 세워 두어도 되었고, 어른들이 어린 것이 짐자전거를 잘도 탄다며 짐을 좀 실어달라하며 칭찬을 하기도 했지만, 할아버지의 그럴 듯한 감언이설 -찻주전자가 애들의 소원 세가지를 들어 준다는- 에 넘어가 그 램프를 몰래 가져가서 첫째는 멋진 빨간 자전거를 가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빨리 갖는 것이라고 비는 것을 보니까 말입니다. 소원을 빌고 기다리다 자신이 아니 친구가 자신이 기대하던 새 자전거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고선 '넘어져 버리라'고 심술을 부리지만 여린 마음에 능숙하게 친구를 새 자전거에 태워주며 자신과 친구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 듯하다며 미소짓는 모습에서는 순전하고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3등안에 들면 새 자전거를 사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10등도 안되던 소년이 100점 맞은 시험지를 받아들고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 아저씨보다도 빠르게 어머니한테 달려가는 모습은 소년이 얼마나 새 자전거를 가지고 싶었는지 짐작하게 합니다. 그리고 결국 집안 살림살이가 어려워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서 묵묵하게 자신의 소원을 포기하고 두번째로 갖고 싶은 새 크레파스를 사고나서는 짐자전거에 자신이 상상하던 자전거처럼 빨간 페인트를 칠하는 모습에서는 속깊은 소년의 마음 씀씀이를 보는 듯 하여 미소짓게 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러한 소년의 모습에 대한 안쓰러움이 살며시 고개를 쳐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습니다. "지금 자전거는 조금 낡았지만 아직까진 타기 괜찮다. 아마 색깔만 바꿔 주면 훨씬 멋져질 거다. 그렇게 해서, 나에겐 새 크레용과 새 자전거가 생겼다." 소년은 그렇게 새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짐자전거에 연을 매달고서 어스름한 황혼녁을 자전거로 달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세 번째 소원을 빕니다.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너무 빨리 늙지는 말고......" 건널목에서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자전거를 멈춰선 소년의 모습은 오늘도 늘름해 보입니다. 그리고 전깃줄에 걸린 소년의 연에는 자신이 가지기를 소원했던 빨간 새 자전거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소년은 그렇게 자신의 소원을 멀리 날려 보냈나 봅니다. 빨리 어른이 되기를 바라면서.....
요즈음, 특히 도시에서 넉넉하게 자라는 아이들은 이 책을 보더라도 아마도 내가 느끼는 그런 감성을 느끼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책속에 담긴 이야기가 얼마나 아름답고 순전한 것인지, 어린시절의 삶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삶을 실찌우고, 영혼을 자라게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속깊은 이야기들을 아마 나의 아이들도 듣거나 느끼지는 못할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묻혀있던 내 기억이 온전히 모습을 드러낸 기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많이 느끼게 되는 시간입니다. 아마 소년도 자신이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이만큼이나 세상이 변해 있겠지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어린시절과 그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들로 채워지리라고 믿어봅니다. 자신의 짐자전거에 소원을 담아 그렸던 자전거 그림을 붙여 날린 소년의 그 마음 씀씀이를 오늘 내 곁에 있는 우리 아이들의 삶속에서도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생활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지만 여전히 그들은 세상에 밝은 웃음을 주는 어린이들이기에.....
글의 행간에 담긴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통해져 삐져 나오는 소년과 사람들의 순전한 마음, 그리고 페이지마다 담긴 그림이 참으로 정겹고 아름다운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