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내 인생 - 손문상 화첩산문집
손문상 지음 / 산지니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박지성 좋아!'를 외치는 넉넉한 두 영국 청년, 해변가에서 투박한 손을 무릎에 얹고 미소 짓고 있는 해녀 할머니,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동생과 모래장난을 하며 아버지를 기다리는 소녀, 끝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고 파밭을 매고 있는 아줌마, 푸르른 교정의 나무아래에서 사각모를 쓰고 여름 졸업식을 치르고 있는 두 여대생.....  그리고 마지막에는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린 아람이와 할머니의 꼭 맞잡은 손으로 끝나는 이 화첩산문집은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삶을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글로 그린 책입니다. '그림이란 그리운 것이다'고 고백하는, 그래서 모두가 그립다고, 온전히 담을 수 없어서 책속 글과 그림 밖 여백의 진실이 그리는 순간에도 그리웠다고 고백하고 있는 작가는 자신이 이야기한 그림과 그린 이야기들을 아무런 과장없이 그리 드러내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평범한 삶이 말한 그대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느끼는 감흥은...... 이런 삶도 있구나 하는 무심함. 적어도 처음의 감흥은 그랬던 듯 싶습니다. 나와 같은 평범한 삶들이지만, 내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하는 듯 했습니다. 아마도 텔리비젼의 자극적이고 과장된 스토리에 이미 길들여진 내 의식을 반영하는 듯한 첫 반응이지요. '브라보 내 인생!'을 외치지만 전혀 '브라보'할 수 없는 듯한 내 인생을 닮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이야기는 그대로 소박한 책속의 이야기들로 책장 한구석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신문에 실렸다'고 한다면 우선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만한 이야기거리들이겠지요. 사건이나 사고, 굉장히 나쁜 짓을 했다거나 착한 일을 했다거나, 아주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이거나 등등등. 그래서 정상적인 우리의 생각속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이 떡하니 그림으로 색이 입혀져서 평범한 사는 이야기와 함께 신문의 한쪽을 차지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이야기지요. 하지만 이 책의 이야기들이 저자의 노력과 땀으로 신문에 실렸던 이야기라고 한다면..... 아마도 신문의 입장에서는 아니 순전히 저자의 노력으로 하나의 실험적(?)인 시도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생각해야 할 수도 있는-였을 이 책의 내용은 부산일보에 주말마다 '화첩 인터뷰' 내용으로 실리던 내용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사실 자체가 나의 이 책속의 이야기들에 대한 무심함을 상쇄시키지는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겐 그냥 그런, 시류를 따라 생겼다가 스러지는 그러한 책 중의 한권이 되어버리는 것이 운명은 아니었든지..... 

 책의 내용보다 훨씬 어렵고 긴 책뒤에 덧붙여진 김곰치 님의 '재능보다 깊은 세계 - 손문상 이야기'를 읽고 나서 책에 대해서 보다는 작가에 대해서 뭔가 다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과 화가가 되는 과정, 중앙 일간지의 만평가였다는 이력 등등등.... 하지만 무엇보다도 '영도 해녀 강해춘'편에 대한 김곰치 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저자의 작업이 단순히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듯 합니다. 그러한 나의 무심함에 담긴 생각없음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고개를 숙일 정도로 말로도 글로도 또한 그림으로도 뭐라 표현 못할 깊은 이야기와 그림이 담겨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 뒤로다시 들춰보는 화첩집의 그림속에서 이제껏 듣지 못했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합니다. 작가나 그림속의 인물들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다는 아니더라도, 세상의 약한 곳에, 힘 없는 삶에 더 가까이에 있는 그들이 그림 속에서 활짝 웃을 수 있고,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흘러간 세월을 미소로 바라보며 또한 미래에 손짓할 수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작가의 붓끝에서 그려진 그림들은 평범한 수채화지만 그 어떤 유명한 그림들보다 더 반짝이는 그들만의 보석이 담겨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인생들의 이야기에 '브라보 내 인생!' 이라는 멋진 제목을 붙인 작가의 들뜬 속마음마저도 읽게 되는 듯 합니다.

평범한 삶들에게 바치는 그립고 아름다운 이야기들, 많은 이들이 이 화첩과 이야기 속에 있는 보석을, 그리고 자신의 삶에 담긴 보석을 찾아 깨닫고 간직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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