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를리외르 아저씨 쪽빛그림책 2
이세 히데코 지음, 김정화 옮김, 백순덕 감수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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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하지는 않지만, 이야기에 어울리게 차분하고 깔끔한 색채로 파리의 곳곳의 풍경과 를리외르 아저씨의 작업실과 작업하는 모습이 그려진 이 책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식물도감이 망가져서 그것을 고치고 싶어하는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소녀는 새로운 책보다는 자신이 귀하게 여겼던 책을 다시 고치고 싶어서, 파리의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를리외르 아저씨를 만나게 됩니다. 를리외르가 제본가라는 의미라고 하니까 책의 제목은 "나의 제본가 아저씨"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내부가 뒤죽박죽인 아저씨의 작업실에서 소녀는 아저씨가 책을 낱낱이 분해해서 다시 말끔하게 제본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책에 새 생명이 불어넣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손으로 하나하나의 과정을 정성들여 처리하고, 마지막으로 표지를 만들 가죽을 얇게 펴는 모습까지 본 뒤에 소녀는 를리외를 아저씨와 공원을 산책하며 공원의 아카시아 나무의 나이 만큼이나 오래된 아저씨의 를리외르라는 가업에 대한 이야기도 듣습니다. 소녀에게 이름을 묻고 헤어진 아저씨는 소녀와의 만남을 통해 책에 새 생명을 부여하는 마법을 지녔던 아버지의 손과 가르침을 기억하고선, 아마도 그런 마법을 이젠 자신의 소녀의 책에도 부여하고 싶었던지 밤늦게까지 작업실의 불을 켜놓고 일을 하셨습니다. 소녀가 새 싹이 난 화분을 가지고 아저씨의 작업실에 들렀을 때, 소녀의 책에도 새 생명이 불어넣어졌습니다. 다 망가져 버려질 뻔한 책이 "ARBRES de SOPHIE" - 소피의 나무들-이라는 멋진 금박 글씨에, 파릇한 아카시아 그림의 표지를 입고 다시 태어났답니다. 소녀는 새로운 자신만의 책속에서, 들고 온 화분 속의 싹이 아카시아라는 사실을 찾아내고선, 어느 새 잠들어버린 를리외르 아저씨의 손에 조용히 전해 드립니다.... 아저씨가 마법을 부려 생명을 준 책은 다시는 뜯어지지 않았고.....  소녀는 이제 식물학 연구자가 되어 를르외르 아저씨와 함께 보았던 그 아카시아 나무앞에 책을 펴들고 서 있습니다. 

  다 읽은 후 내내, 를리외르 아저씨가 책을 다시 제본한다는 것, 그래서 책에 다시 한번 새 생명을 덧입힌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적어도 400여년을 장인으로서 이어져 온 가업을 성실하고 묵묵하게 계속하는 를리외르 아저씨의 모습속에서 그리고 그 책을 통해서 새싹의 이름을 찾고, 또한 식물학자가 된 소녀 소피의 모습속에서, 책이 제본가의 손을 통해서 매번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의미가  단지 겉표지가 멀쩡해졌다거나 너덜거리던 책장이 다시 정상적이 되었다거나 하는 단순함을 넘어선, 한 사람의 삶이 되고 미래가 된다는 그런 속깊은 이야기를 작가는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하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를리외르 아저씨가 다시 제본을 한다는 것은 책을 다시 분해하고, 크기를 맞추기 위해 가장자리를 자르고, 너덜거리는 책장을 실로 땀땀이 떠서 다시 꿰매고, 풀칠을 하고... 하는 등의 눈에 보이는 일련의 과정에 담긴 정성과 장인의 혼,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깨달음을 아마도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을 듯 합니다. 
 
  60여 페이지가 채 못되는 그림과 짧은 이야기 속에, 그 그림과 이야기가 겉으로 말하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와 따뜻함이 담겨 있음을 느낍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는 하지만, 이 안에 담긴 작가의 정성과 따뜻한 시선, 그리고 를리외르 아저씨의 제본가로서의 묵묵한 삶은, 단순하지만 깊은 울림을, 다 읽고 나서도 내내 마음속에 남겨줍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이가 어린이든, 청년이든, 장년이나 노년의 영혼이더라도 나와 동일한 울림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 그의 마음 문이 열려 있기만 하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는 이야기 속의 를리외르 아저씨처럼 제본을 하는 책을 찾기도 어렵고, 한편으로는 소피처럼 책 한권을 귀히 여기기에는 책이 너무 흔한 시대가 되어버렸지만, 내 손에 쥐어지는 책에 대해서 그리고 그 책에 내 손때가 묻어간다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나의 아이들에게도 내게 들려준 그런 속깊은 이야기를 속삭여 주리라는 엉뚱한 기대를 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부디 내가 들은 이야기보다 더 풍성한 속삭임을 나의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서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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