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낙원을 찾아서 - 내 마음속 가장 아름다운 그곳
림헹쉬 지음, 백은영 옮김 / 가야북스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무심코 책장을 넘겨대다가, 문득 책장이 너무도 수월하게 넘어가는데 재미를 느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언제부턴가 책의 내용을 곱씹고 음미하기보다는, 오로지 빨리 읽는 속도에 중독된 사람처럼, 눈으로 잽싸게 읽어 내리는데  더 열중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 책도 작가의 글을 통해 그의 의도를 잡아내려는 듯이 그림들은 거의 무시하고 눈으로 열심히 글을 읽어내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대목에 이르러서야 내가 무언가를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천리 밖을 걸어서야

 비로소

 마음을 가져오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몸으로만, 눈으로만 책을 읽은 것이지요. 빨간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하늘을 날고, 저전거를 여유롭게 타고, 작을 배를 떠나 보내고,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그런 모습이 담긴 그림들을 무심한 눈길로 스치며, 작가가 쓴 글의 내용에만 정신이 팔려, 눈으로 책을 읽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문득 내 마음이 어렸을 때, 파란 하늘을 눈망울에 담고 있었던 순전한 마음이 빠져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내게 작가는 조용한 속삭임으로 묻고 있습니다. 곱던 마음을 어디에 두고온지도 모른 채, 어이 그리 바삐 사느냐고.... 마음을 열고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나의 속삭임은 들리지 않느냐고...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이번에는 그림만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습니다. 글로 읽었던 처음보다 천천히 책장을 넘기면서 말입니다. 그림속의 소녀와 눈을 마주치고, 표정을 살피고, 행동을 바라보며 작가의 생각들을 되뇌여 봅니다. 아주 천천히 말입니다..... 아마도  수백 페이지를 빽빽한 글자로 채운 책을 읽을만큼의 시간을 들여 이 책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잃어버린 낙원에 대해서 작가보다 더 많은 것들을 알게되고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의 삶속에 그 만큼의 마음의 공간과 시간의 여유가 남아 있다면 ..... 

 유년의 놀이터에는

 아직도 지난 날 웃음이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아.

 내가 언제부터 이 놀이터의 손님이 되었을까?

 시간이 나를 따라다니던 유년의 어디쯤에선가부터 내가 시간을 따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아마도 놀이터의 손님이 되고 말았고, 거기쯤 어딘가에서 나의 낙원도 함께 잃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내 유년과 다시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내 유년의 벗들과 파란 하늘을 머금은 맑은 눈동자를 가진 놀이터의 주인공이 서 있던 그 자리로.....

 이 책은 말레이시아의 그림작가의 작품입니다.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와 문화에 대한 낯섬이나 설레임 같은 것을 처음에는 기대했는데, 결국 거기서도 우리의 감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된 시간입니다. 잃어버린 어릴 적 꿈, 동심, 눈동자....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또 다르게 써내려가는 삶의 이야기들은 거기서도 여기처럼 눈이 시리도록 커다란 아쉬움을 담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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