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속의 글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자에게 쓴 편지들입니다. 하지만 외형적으로 두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비범한 것은 더더욱 아니구요. 할아버지는 서른이 갓 넘었을 때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마비로 30여년이 넘는 세월을 휠체어에서의 눈높이로 세상을 살아온 이입니다. 중간에 당연히 삶에의 절망도 겪었고, 부인과의 이혼도 겪었고, 또한 그 부인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심리학자이자 임상심리의로서 환자들을 대면하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을 보면서 15년이 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이입니다. 편지를 받는 샘은 저자의 두번째 딸이 낳은 아이입니다. 손자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그에게 들려줄 이야기들을 편지로 쓰기 시작했다는 할아버지는 손자가 두돌이 되던 무렵에 사랑스런 딸의 아들 샘이 자폐증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는 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보살펴야 했던 딸이 이제는 장애를 가진 아들을 평생동안 보살펴야 한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장애자로서의 자신의 삶과 그리고 심리학자로서 자폐증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더 많이 이해하고 있는 저자이기에, 그가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도 더 깊은 아픔이 이 말속에 담겨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또한 자신의 사랑스런 손자 샘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다르게 산다는 것을 30년이 넘게 겪은 그이기에 '다름'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었서였겠지요.

  '책에서 배운 심리학 지식은 얼마되지 않는다. 오히려 휠체어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전신마비가 내게 가르쳐 주었다. 가만히 앉아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이는 법을 말이다.'

 전신마비 장애자로서, 심리 상담자로서, <가족의 소리>라는 라디오 방송 상담자, 그리고 칼럼리스트로서의 삶을 살면서 그가 배운 지식의 원천에 대한 저자의 고백입니다. 삶의 재앙이었던 전신마비가 그를 더 지혜롭게 하고 겸손하게 한 축복이었다는 고백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건 물론 저자의 겸손함,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기에 그에게 닥쳤던 뼈를 깎고, 영혼을 갉아먹었던 일들을 과소 평가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의 고백에서 자신이 가장 낮은 곳에 처했을 때, 세상의 비밀들을 알게 되었다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샘이 태어나던 날부터 나는 얘기해주고 싶었다. 인생과 사랑에 대해, 그리고 부모 또한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 학교가 어떤 곳인지, 친구가 얼마나 소중한지, 간혹 못된 친구도 있을수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성, 연애, 일, 돈, 마약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것을 다 말해 주고 싶었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들려주고 싶었다.'

 세상에 태어난 샘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 이유들입니다. 특별한 삶을 산 할아버지이지만, 아직은 정상적으로 여겨지던 샘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아마도 세상의 모든 할아버지들이 자신의 손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어하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적어도 저자가 편지를 쓰기 시작할 때까지는 저자가 전신마비이기는 하지만, 여느 집의 할아버지와 다를바 없는 마음이고, 손자도 여느 집의 아이와 다를바 없는 사랑스런 아기였으니까요. 하지만 이만큼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만한 편지들이 될 수는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깨달았다. 샘에게 해줘야 할 이야기가 훨씬 많아져다는 것을. 나는 샘에게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의 의미를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매일같이 겪어왔고 앞으로 샘이 겪게 될 역경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역경에 맞서 싸우면서 내가 꺠달은 바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싸움을 멈추는 것만으로 어떻게 평화가 찾아오는지도 말해주고 싶었다.무엇보다도 사랑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었다....'

 샘이 자폐증을 진단받고, 저자가 그의 딸과 손자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중에 고백하는 말입니다. 아마도 이 책에 실린 30여통의 편지가 특별함을 지니게 되는 이유가 될 수 있겠지요. 단순히 인생의 지혜와 사랑을 담은 편지가 아닌 진실로 삶에 대한 아픔과 통찰이 담긴, 사랑과 위로와 지혜가 담긴 글이 되고, 자신의 손자 샘만이 아닌, 샘과 같은, 저자와 같은, 그리고 저자가 자신의 삶속에서 만났던 많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이들에게 동일한 사랑과 위로와 지혜를 전달할 수 있는 힘이 이 글속에 담기게 된 사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저자의 이러한 동병상련의 아픔과 혈육간의 사랑, 그리고 담담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와 겸손함이 세상의 그늘진 곳에 움츠리고 있는 많은 샘의 영혼을 위로하고 울릴 수 있는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책의 중간에 저자가 인용을 하였던 책입니다. 벌써부터 많은 이들에게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지요. 그래서인지 어디선가 두 책을 서로 비슷한 범주로 비교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지혜와 사랑 그리고 긍정을 담았다는 면에서 많이 닮아있는 모습이지요. 모쪼록 많은 이들이 -나를 비롯하여-, 특히 세상의 음지에 가려져 있을 모든 샘과 모리가, 이 책을 통하여 사랑과 위로를 얻기를 기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 앤드루 로이드 웨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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