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의 존중 - 문명의 충돌을 넘어서
조너선 색스 지음, 임재서 옮김 / 말글빛냄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새무얼 헌팅턴의 책 '문명의 충돌'이 번역되었을 때, 그의 주장에 대해서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세상사를 보는 그의 시각이 너무 인위적이고 단순하다며 비판을 가해 대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기억을 새롭게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현재도 진행중인 아프간 인질사태나 이라크 전쟁, 911 사태등을 보고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라는 생뚱맞은 생각을 하기 합니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 자본주의와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라는 큰 틀이 세계에 얼마나 큰 위협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생한 외침을 들려준 사건들인데, 많은 사람들이 원인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 하지만 그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에 대해서는 귀기울일만한 의견들을 내 놓지 못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이러한 단견도 결국은 이 분야에 대한 내 지식이 짦아서 일 겁니다, 아마도.....

 이라크에서의 김선일이라는 우리 청년의 죽음, 그리고 두명이 풀려나긴 했지만 두명이 희생되고 여전히 진행중인 아프간에서의 우리 인질 사태를 생각한다면, 굳이 거창한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개념을 뒤적여보지 않더라도 그 의미만큼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의미가 살이 찢기고 피가 튀기는 삶과 생존, 그리고 죽음과 투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책은 그러한 갈등과 긴장의 현장에 희망의 씨앗 하나를 뿌리는 저자의 노력이라고 해도 될 듯 합니다. 누구나 문명의 충돌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그 원인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조금 고민하고 있는 그 지점에서 저자는 '차이의 존중'이라는 개념을 통해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풍요로울 수 있는 평화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문명의 충돌을 넘어설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으로 삼는 것은 아마도 종교인 듯 합니다. 저자는 요즈음 많은 비난을 받는 세계화라는 개념에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 대해서도 방향은 옳다고 말합니다.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만큼 인류를 빈곤에서 벗어나 풍요로 이끈 제도는 이제껏 없었다고 단언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세계화도 인류가 더 풍요로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다만 문제라면 양극화, 즉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같은 나라 안에서도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에 부의 쏠림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고, 거기에 대해서는 저자도 분명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이야기들은 현재 세계를 지탱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자신의 종교-유대교-를 통해서 새로이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한 노력이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자 나름대로 세상에 공헌하는 바가 있는 것이고, 또 그렇게 공헌하는 바는 하나같이 소중한 것이다..... 우리의 태고적 본능은 차이를 위협을 느낀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교환(거래)를 통해서 차이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 된다는 대단히 심오한 정신적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은 시장이다. 차이가 전쟁으로 이어질 때는 쌍방 모두가 패배한다. 거꾸로 차이가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할 때는 양쪽 모두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이 차이를 존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있는 표현입니다. 나와 같지 않음을 인정하지 않고 틀리다거나 교정하라고 강요한 데서 온 많은 역사적 오류와 아픔들에 대한 예는 역사책 곳곳에 널려 있는데,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충분히 비극적이지 않을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었겠지요. 그리고 인류의 풍요를 위해 내달리는 자본주의가 지금 내뿜는 문제는 인간적응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 및 문화적인 현상들의 변화이고, 결국 사람들에게 그것을 극복할 안정감이나 정체성을 붙들어줄 대안은 니체가 죽었다고 했던 신의 영역 즉 종교안에 남아있습니다. 결국 현대로 들어서면서 종교가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중요시하는 정치나 경제가 '무엇'이나 '어떻게'에 대한 대답을 줄 수 있지만 '왜'는 알려주지 못하지만, 오직 종교만이 그 대답을 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종교안에서 제시하는 개념들, 통제, 자선, 창조성, 협동, 보존, 화해 등이 자신과 다른 모든 이들에게 확대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뜻임을, 즉 종교가 추구하는 지향점임을 강조하며 저자는 그것들을 통해서 세계화의 문제점과 문명간의 충돌을 해소시키고 서로 어깨를 마주하고 나설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안에 이미 하나님의 차이에 대한 존중이 있었고, 이러한 개념에 대한 열린 마음을 통해선 현재 세계를 전율로 몰아넣고 있는 서구자본주의와 이슬람의 충돌이라는 위험도 화해와 평화의 노래로 바꿀 수 있으리라는 주장이겠지요.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내용들에는 너무 종교적이고, 학구적인, 또한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친 면이 있음을 짦은 나의 소견으로도 느끼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들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는 지혜로은 하나의 길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어떻게 메꿀수 있을까?하는 물음은 여전히 남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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