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분 후의 삶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일 분 후에도 나는 살고 싶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까요. 아마도 삶의 극단에, 생과 사의 갈림길에 한발씩 걸치고 서서 죽음을 응시하는 고통에 노출되어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평생에 한번이라도 가져보지 못했을 소망일 듯 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분후의 삶이니, 소망이나 관심의 대상이 될 수가 없는 것이겠지요.

 '위기의 시간에 자신에게 허용해도 될 생각은 오직 하나, 다음 할 일은 무엇인가뿐이다...',  이 책은 자신의 삶의 일순간에 다가온 사고로 인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서 삶을 간절히 소원했던 사람들, 그리고 도저히 이겨내지 못할듯한 역경을 극복하고 삶의 편에 서게 된 12명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각각이 일을 겪은 환경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나이는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건강하게 자신의 일에, 또는 생활에 열중하던 중에 사고를 당하고 죽음의 고비를 넘긴 이들입니다. 어떤이는 수천미터의 설산과 빙벽을 오르다가 추락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배를 타고 있다가  폭발사고를 당하여 배가 침몰하여 바닷속에 내 팽겨쳐지기도 하고, 어떤이는 갑판에서 잠깐 방심하고 바람을 쐬다가 파도에 휩쓸려 드넓은 망망대해에 남겨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울의 지하수가 흐르는 지하로 빨려들어가서 어둠속에서 생사의 투쟁을 벌여야 했고, 어떤이는 모르는 아이의 부탁으로 전선에 걸린 연을 내리다가 감전되어 생명은 겨우 건졌지만 자신의 삶과 꿈을 고스란히 접고 새로 시작해야 했고, 또 어떤이는 산사태에 묻히고 급류에 휩쓸렸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지만 무너진 삶의 터전에서 사랑하던 한마리 애완견마저도 보살필 여력이 없어 남의 손에 넘겨줘야 했던 가슴아픈 이야기를 전하기도 합니다. 12건의 이야기 모두가 이런 사고와 조난속에 있었고, 삶보다도 죽음이 더 가까이에 있었던 시간을 겪은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생은 매순간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작가 서문의 제목입니다. 저자가 시간과 노고를 아끼지 않고 발품을 팔며, 12명의 사람들을 찾아다닌 후에 우리에게 간절히 하고 싶은 한마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소설보다도 더 소설같고, 전설보다도 더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저자의 손끝에는 순간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에 대한 긍정의 염원이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어진 많은 시간과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기 보다는 너무 쉽게 불평하고, 즐거워하기보다는 너무 자주 권태로움을 표현하는 나같은 이들에게 내가 그리 생각하는 한순간의 삶이 어떤이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찰라를 넘나든 말할 수 없이 귀하고 간절히 소망하던 그러한 삶의 한 순간이었다는 담담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기도 합니다. 매순간을 그리 자각하며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인생에 그러한 순간이 있다는 자각을 가지고 사는 이라면 아마도 조금은 달리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우는데 한 평생이 필요하다', 아마도 한평생으로도 부족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배웠다고 말하기에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이 책속에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고 나면 분명 조금 더 지혜롭고, 조금 더 겸손한 삶을 살게 될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한 평생 배워도 부족할 삶에 대한 깨달음에 한 걸음 더 내딛은 모습이 아닐는지요! 부디 전설보다도 더 신비롭고, 소설보다도 더 극적인 삶의 관문을 통과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같은 범부들뿐만이 아니라, 이들과 비슷한 환경에 처한 이들, 지독한 죽음의 병고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 정신적인 또는 정서적인 면에서 인간으로서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이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격려를 받고 주어진 순간의 삶들에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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