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정말 좋은 분이라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거지?
데이비드 비벨 지음, 김인경 옮김 / 황금여우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의학의 발전과 과학 문명의 발전이 어우러진 현대 사회에서는 고통(고난)이라는 것이 적어도 유쾌하게 취급되지는 않는, 즉 정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는 듯 합니다. 그래서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통증이 적은, 또는 통증이 없는 것들을 더 나은 것, 우수한 것으로 선호하는 듯 하고, 정상적인 과정으로 겪게되는 통증 -예를 들면 아이를 낳을 때의 진통-도 이제는 아이를 낳는 이들에게 유쾌하지 못한 경험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생기는 듯 합니다. 또한 재미와 쾌락이 우선시 되는 여러 문화적인 것들이 그러한 경향을 더 자극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비단 육체적인 어려움이나 고통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의 고통들도 이제는 치료하거나 피해야 할 어떤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로 취급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에서도 그러한 느낌이 묻어납니다. 하나님이 정말 좋은 분이라면 시련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시련을 내게 주시지 않아야 된다는 그런 뉘앙스가 느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책은 신앙인들이 살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시련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놓았습니다. 제일 크게는 목회자인 저자 자신이 원인모를 유전병으로  큰아들을 잃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둘째 아들마저 동일한 질병의 위험을 겪으며 그와 그의 가정에 닥쳤던 시련과 고통의 순간 그리고 그 긴 터널을 지나며 새로이 깨닫고 알게 된 그러한 고통속에 하나님이 담아 놓으신 의미와 이유들을 이야기 하고 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고통속에서의 신앙과 방황, 괴리된 삶, 우울 그리고 회복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고통이나 시련들에 대해서, 그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다 잘 되려고 그러는거야'나 '주님만 바라보면 만사가 형통할거야'라는 식의 진실이지만 공허한 권면들의 실체를 인정하며, 또한 그리할 수 밖에 없는 많은 신앙인들의 모습에 애통해하는 모습을 느낄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가 그러한 상태에서 취할 자세는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었나요?'라는 식의 질문이 아니라 그러한 순간에도 함께 하시며 '네 마음을 다 이해한다. 나는 지금 여기에 너와 함께 있단다.'라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향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겸손히 묻는 자세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욥이 그에게 닥친 고난속에서 보였던 모습은 아마도 고난에 대한 우리의 자세의 하나의 모범이 될 수도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왜 제가 이래야 하느냐고 따지기도 하지만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저주하지 아니하며, 믿음의 끈을 놓지도 않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함은 그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또렷하게 배울 수 있게되고, 신앙의 성숙을 이끌게 되며, 온전하게 살아있는 신앙을 이룰 수 있게 함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부단히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바는, 고난이나 시련이라는 것이 부질없는, 쓸데없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신앙의 발전과 성숙을 위한 기회가 될 수도 있으며, 무언가 하나님이 숨겨놓으신 섭리가 함께 한다는 믿음의 눈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러한 고난을 무조건적으로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설익은 이해로 이리 표현하는 감이 있기에 다시 몇번을 더 읽고서 숙고하여야 할 부분이 있음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실적인 고통을 대면하게 될때 신앙인의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그것은 저자의 말처럼 하나님의 다음과 같은 성품을 믿으면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 그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충분히 알고 계신다.

 - 그는 그것을 좋은 것으로 만들 만큼 강하시다.

 - 그는 당신의 한계를 존중할 만큼 친절하시다.

 - 그는 당신의 의심을 용서하실 만큼 사랑하신다.

 - 그는 당신의 두려움을 가라앉히실 만큼 사랑하신다.

 - 그는 두려움을 가질 정도로 나약한 당신의 신앙을 받아 들이실 만큼 자비로우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을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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