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토지 제1부 1 - 박경리 원작
박경리 원작, 오세영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박경리 님의 <토지>.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시대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학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가장'이라는 말에 토를 달고자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더 많은 분들은 고개를 끄덕이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토지>를 제일 처음 대했을 때는 아마도 텔리비젼 드라마를 통해서였던것 같습니다. 매회 빠지지 않고 본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서희의 매서운 눈빛연기와 양복입은 조준구의 교활함 섞인 웃음연기, 서희와 결혼한 길상이 그녀 앞에서는 항상 경직되이 딱딱하게 표현되던 모습  등이 뇌리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습니다. 그리 남은 희미한 빛깔의 드라마를 통해 본 <토지>가 내가 처음 체험한 빛깔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5부와 완결편 16권이 나오기 전부터 읽기를 시작해서 마지막 16권까지 몇번이고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며 억척스럽게 읽기를 스스로에게 강요하며 여름방학을 방바닥에 뒹글며 읽었던 때였습니다. 지금도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힌 열여섯권의 두툼한 모습과 토지사전, 몇권의 비평서 등을 보고 있노라면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곤 합니다. 한권 한권 뒤로 넘어갈 때마다 앞에서 읽은 내용들은 이미지로 흩어져 버리고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아있지 못해서 불편하던 기억과 언젠가는 다시 시작하여 읽으리라는 다짐을 아직까지 지키지 못함으로 인한 안타까움, 그리고 마지막 완결편의 책장을 덮을 때까지 나름대로 지난했던 시간들에 대한 고통스런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오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이면에는 마지막장을 덮으며 참 행복했었다는 기억도 있습니다. 열여섯권에 쌓인 작가의 언어를 내가 읽어 냈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때의 체험이 <토지>를 제대로 몸으로 부대끼며 느낀 것이라고 아직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토지>는 제가 손도 대지 않은 것이니 논할 것이 없겠고, 이번에 이리 만화로 태어난 토지를 1권을 대하게 되었습니다. 토지에 대한 세번째 체험인 셈입니다. 하지만 처음에 소개된 인물소개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름은 낯설지 않지만, 이리 대하게 되는 책과 각개의 인물들은 낯설기 그지 없습니다. 1권에 나오는 이야기의 내용이 다른 것도 아닌데 이리 전혀 다른 작품처럼 낯설게만 다가옵니다. 아마도 매체의 표현방식에서 오는 상이함이겠지요.

 저자는 이 만화를 16권으로 계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부가 7권이니까 아마도 가장 중점적인 부분이 되고 특색을 보여주는 -즉 작가가 원작을 세밀하고 깊이 있게 해석하고 나름대로 표현한 역량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부분일 듯 합니다. 그리고 만화라는 것이 글로만 표현하여 독자들에게 여러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겨두는 소설 자체에 비해, 인물이나 각각의 배경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수반되는 것이므로 원작의 뼈대에 살이 조금 더 많이 붙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해석이 담긴 표현이 들어가고, 그러한 과정이 기존의 소설 토지와는 다른 특징과 개성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1권에는 각 인물에 대한 소개라고 생각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들과 별당아씨와 구천의 야반도주, 용이와 월선의 사랑, 조준구의 등장정도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느끼는 즐거움이라면 각 인물에 대한 작가의 탁월한 묘사를 보는 것과 각 장면들에 들어간 세밀한 필치를 통해서 단순한 사실표현 이상의, 작가 자신의 해석에 대한 것들을 담으려는 배려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1권을 읽은 것이니, 작품에 대한 평가는 조금 미루는 것이 예의일 듯 하구요. 하여간 이리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 토지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대를 가져보는 바입니다.

 얼마전에 신문기사에서 박경리 님이 자신은 원작 <토지>를  토대로 만든 영화나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오래전에 드라마 토지를 칭찬하셨던 기사도 본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으니 뭐라고 못하겠네요.^^- 하지만 이번 만화에 대해서는 작품을 내신 만화가의 역량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인터뷰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도 한번 접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일 듯 합니다. 원작자의 말에 '삶의 모습'이라는 제목의 글로 만화가 오세영님의 역량을 기대하신 박경리 님의 글속에 이런 구절이 문득 눈에 들어옵니다. '..... 결국 만화도 인간을 소재로 하는 만큼 연극적 요소, 소설과의 유사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때론 황당하기도 하고 장난스럽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하겠으나 원형을 향한 구심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끝으로 바라는 것은 만화 <토지>가 원작의 뼈대로 나타났으면 하는 것인데.....' 이 안에서 저는 원작자의 기쁨보다는 염려를 먼저 느낍니다. 내가 느끼는 낯섬보다 원작자는 아마도 더한 낯섬을 느끼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한 낯섬이 작품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에 더 어렵고 난해하기까지 합니다. 원작 <토지>는 이리 드라마로 해석되고, 만화로 해석되고, 또한 청소년들이 읽기에 알맞게 다시 씌여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16권-현재는 21권- 빼곡히 채워진 작가의 언어를 대신하지는 못할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설명하고 이해하기 쉽게 돕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나중에 나의 아이들에게는 할 수만 있다면 본래대로의 토지를 먼저 읽히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세영님의 꿈과 노고와 열정을 기대하고 말씀하신대로 작품을 훼손하지 않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높이 사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면보다는 어차피 다른 표현 형식으로 다시금 작품을 세상에 내 놓는 거라면, 장르에 맞는 세밀한 계획과 시도로 토지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줄 수 있도록 작가가 자신의 혼신을 쏟아서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을 거라는 기대도 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긴 소설 토지가 드라마로, 만화로 영화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풀이되는 것은 기쁜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방대한 스케일과 길이로 인하여 현대인에게 읽히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작품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도 함께 마음속에 묻어남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다른 감상은 다 뒤로 하고 오세영님의 만화 토지만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정성을 들여야 하는 작업을 이리 용감하게 시작하여 세상에 그 소산물을 내놓았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박수를 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에게 즐겁고 보람된 시간들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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