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죽음 - 오래된 숲에서 펼쳐지는 소멸과 탄생의 위대한 드라마
차윤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살아있는 세계는 죽어있는 세계를 토대로 세워집니다 (p262)
 
  연한 연두빛이던 가로수의 싹들이 어느새 잎사귀로 바뀌고, 빛깔도 더 짙어져 가고 있습니다. 멀리 보이던 산과 숲들도 생명의 빛으로 넘쳐납니다. 그걸 바라보고 있노라면 만물이 살아있다는 것, 생명이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들려주는 초록의 외침을 듣는 듯 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되는 나무는 우리가 지금 보며 살아있다고, 생명이 넘쳐난다고 찬탄하며 바라보는 그런 나무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봄이 왔으되 새싹이 나지 못하고, 잎사귀가 나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를 초록빛으로 가리지 못하고 그대로 맨살을 노출한 채 봄을 맞이하는 나무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오래된 숲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그러한 나무의 죽음을 통한 소멸과 그것을 바탕으로 살아가거나 새로이 탄생하는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숲이란 보통 400-500년 된, 그리고 우리나라같은 온대낙엽수림에서는 200년 정도면 도달할 수도 있는 숲을 말합니다. 이런 숲의 특징은 평균수명을 넘긴 늙은 나무들이 많고, 죽어가는 나무와 죽은 채로 서있는 나무들이 많고, 죽은 나무가 숲의 바닥에 두껍게 쌓여있으며, 죽은 나무로 인한 여러 자연의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하지만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곳입니다. 어찌보면 음침한, 그러니까 전설속이나 신화속에 나오는 악령들이 나올 듯한 그런 모습의 음산함마저 느끼게 하는 그런 모습으로 먼저 다가올 수도 있는 곳일듯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이미지에 갇힌 숲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오래되고 음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 숲에서 선채로 죽어가는 나무의 죽음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생물종들의 삶과 번성, 그리고 또 다른 죽음의 터전으로서의 죽은 나무, 그 나무가 땅에 쓰러져서 다시 땅속의 흙으로 분해되어가는 과정에 대해서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생태학적인 변화에 대해서 세밀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봄이 되어서도 새 잎을 내지 못하는 나무는 죽은 나무입니다. 그리고 그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숲과 자연의 일부로 다시 되돌리는 해체의 과정을 거칩니다. 자신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지난한 세월을 거치는 이 해체의 과정은 수백년에 걸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 장수하늘소 등의 산란터가 되기도 하고 곤충들에게 양식을 공급해주는 식량창고가 되기도 하고, 딱따구리 등의 사냥터, 곰팡이나 균들의 번식지, 이끼나 고사리 등의 새 삶터 등으로 거듭나는 선 채로 죽은 나무가 숲 바닥으로 쓰러지면 또 다른 생명체들 -족제비, 도마뱀, 양서류, 곤충류, 절지류, 균류, 세균류 등- 의 삶의 터전이 되고 번식지가 되고 쉼터가 되기도 합니다. 굳건하던 나무의 외양은 너덜너덜한 상태가 되고 결국은 미세한 양분 가루가 되어 숲속의 모든 생물들과 다음 세대의 나무를 위한  양분을 공급하게 됩니다. 실제로 살아서는 5퍼센트 정도의 살아있는 세포로 유지되던 나무가 죽어서는 40%이상의 살아있는 세포로 채워진다고 하니 저자가 말한대로 나무는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 한편으로는 진실이 됩니다. 저자는 숲속에서 나무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매개로 이어지는 사라지지 않고 연결되는 생명의 고리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단순히 거대한 나무가 사라지고 죽어가는 일차원적인 시각이 아닌 생태계라는 큰 틀안에서 그러한 죽음이 갖는 의미를 보게 인도해 줍니다. 앙상하게 죽어가는 고사목의 모습이 전설속의 음산한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또 다른 반쪽이고 숲을 건강하게 이끄는 위대한 유산임을 일깨워 줍니다.
 
 새싹이 돋는 나무를 보며 희망을 이야기하고, 삶의 소망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썩어가는 나무 밑둥을 보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찾기가 힘이 듭니다. 푸른 숲을 보며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구석구석에서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가는 고사목의 모습을 보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저자는 바로 많은 사람들이 알지못해서 외면하는 것들의 의미를 살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래된 숲에서의 나무의 죽음과 그것을 매개로 진행되는 생태계의 활력넘치는 삶의 모습들은 통해서, 죽음은 단순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의 시작과 그 끝이 닿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삶이란 다시 그 끝이 죽음으로 이어지고..... 그런 의미에서 나무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피조물들에게 죽음이란 새로운 삶으로 가는 통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책을 덮으며 또 다시 삶이란 죽음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살아있는 세계는 죽어있는 세계를 토대로 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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