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가는 부자청년 - 21세기 크리스천 자기계발시리즈 1
조성의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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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로되,  '네가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근심하여 가니라 (막10:21-22)

 근심하여 가는 청년의 뒷모습을 보며 예수님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마가복음의 바로 뒷단락에는 '약대가 바늘 귀로 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시는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하며 놀라는 제자들에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대답하시고, 다시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리나.'고 말씀하십니다.

 '돈과 믿음', 물질과 신앙과의 문제는 크리스챤이라고 한다면 한번쯤은 고민하고 또한 깊은 갈등을 겪기도 했을 문제입니다. 그런 갈등과 고민의 반영이 청빈론과 청부론에 대한 여러 주장들로 격렬하게 진행되었고, 또한 현재 진행중이기도 하구요. 앞에서 이야기된 성경의 본문은 아마도 청빈론의 근거로 더 많이 사용될 듯 합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는 부분만 떡하니 떼어 내어서 되뇌인다면 다른 어떤 청부론적인 주장들이라도 공허하게 들릴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러 성경의 본문을 이리 단편적으로 떼어낸다면 청부론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는 말씀들이 또한 무수히 많습니다. 아마도 이 두 주장들 사이에 존재하는 논쟁과 혼란은 "부"라는 부분에 촛점을 맞추고 진행된데서 오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돈'이란 그 자체만으로는 선도 악도 아니고, 그것을 다루는 사람이 어떤 자세로  대하고,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관점이 성경적일 듯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청빈이나 청부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경의 말씀을 삶속에서 소유하고 사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결핍의 사고와 풍요의 사고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합니다. 즉 자신을 의지하느냐,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고 의지하느냐의 순종과 믿음의 관점에서의 접근법입니다.

 '내 창고나 내 품안에 쌓아 놓지 않고, 내손에서 사라지면 없어져 버린다.'는 지극히 당연하게 보이는 사고 방식을 저자는 결핍의 사고라고 부르고, 이는 크리스챤이라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을 외면하고 자신의 힘으로 세상에서의 삶을 빗어내려는 불신앙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삶을 살도록 권유하는데 그 근저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의 자녀된 이들이라는 상속자로서의 크리스챤의 신분에 대한 자각이 있습니다. 저자는 그러한 풍요로운 삶의 방법이란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 한 줌의 씨를 뿌려 열매를 얻듯 움켜진 손을 펴서 베푸는 삶을 사는 것, 하나님께 받을 것을 기대하며 살며, 씨를 뿌리되 많이 뿌리는 것 등 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말씀에 대한 순종, 신뢰와 믿음 등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세는 청빈이나 부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듯이 소유의 많고 적음 자체가 기독적인가의 판단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그보다는 자신의 소유가 얼마나 깨끗한가, 그리고 자신의 소유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끊임없이 자각하고 그 뜻을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기독교적인 삶이라는 태도와 일맥상통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인 것들로 파고 들어가면 저자가 말한대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삶이, 죄를 사함받고 천지를 창조하신 부요하신 하나님의 상속자된 자로서의 크리스챤의 위상을 자각하는 삶이 진정으로 부자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한 자각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위해서 내 것을 포기할 줄 알고, 하나님의 몫을 하나님께 감사히 드릴 줄도 알고, 그가 주실 것을 묵묵히 기대하며 살아가는 그러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논쟁의 대부분이 결국은 마음의 첫자리를 누가 또는 무엇이 차지하고 있느냐는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것으로 귀결되는 듯 합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로서는 할 수 있다는 바늘귀를 통과하는 부자도 그 마음의 첫자리에 하나님이 항상 계셔 인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믿음의 조상들, 즉 아브라함이 그랬고, 이삭과 야곱이 그랬고, 요셉이 그랬고, 욥이 그랬고, 다윗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먼저 배웠고, 묵묵히 기다릴 줄 알았고 감사할 줄 알았던 하나님을 마음에 소유한 진정한 부자의 삶을 살았고, 그러한 가운데 풍요로운 하나님의 물질이 주어진 삶을 누렸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고, 하나님 안에서 노력하고, 하나님 안에서 땀 흘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고백할 수 있었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의 모습이 바로 바늘귀를 통과한 낙타가 아닐까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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