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의 박물관 - 처음 만나는 문화재 책
이광표 지음 / 효형출판 / 200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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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에게나 손에 쥐면 반갑고 마음에 즐거움을 주는 책이 있을 겁니다. 익숙하지 않더라도 왠지 낯설지 않고, 언젠가 보았던 듯 하고, 아니면 어디쯤에선가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런 책들이 있기도 할 겝니다.  내게는 작가의 정성어린 땀이 담긴,우리 문화재나 사적에 대한 책들이 그렇고, 우리 말에 대한 책들이 그렇고, 또한 우리 역사에 대한 책들이 그렇습니다. 그 분야를 유난히 더 열심히 공부했던 것도 아니고, 유별나게 관심을 가지고 책을 찾아 읽었던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더 많은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 고유의 것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알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 한 구석에 쌓인 부채의식(?)을 해소할 수 있었고, 그러한 과정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주곤 합니다. 그런 내게는 이런 책들을 만날수 있는 기회, 소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누군가의 흔적을 찾아간다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참으로 흥미로운 일입니다. 그것이 더더구나 우리 자신의 흔적이고, 우리 조상의 묻힌 흔적이라면 말을 덧붙일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박물관에서, 그리고 고궁에서 대하는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이 없어 가까이 다가가서 마음껏 감상하기를 부담스러웠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우리 것이라 좋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데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그냥 오래된 물건이나보다, 건물인가보다 하며 지나치며 답답함과 부끄러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나에게도 수없이 반복되는 일들입니다. 저자는 그런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문화유산에 다가가서 즐겁고 재미있는 대상으로 만나고 그러는 가운데 참된 문화유산의 의미를 깨닫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그래서 딱딱하게 정형화된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문화유산에 대한 숨겨진 아름다움과 의미,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연들을 들려주며 자연스럽게 그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도록 유도하곤 합니다. 구판의 제목처럼 아는 즐거움을 통해서 보는 즐거움에 이르게 한 것이라고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저자는 청자나 백자의 모양과 문양, 벽화, 탈, 토우, 처마의 잡상 및 조각품들을 통해 익살을 부리는 여유와 한국미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특히 고구려 벽화나 고려 청자에 나타난 나이키나 코카콜라의 디자인에 비견될 만한 멋스러운 우리조상들의 솜씨를 알려줍니다. 우리 건물의 처마와 문창살과 꽃살무늬, 각종 무지개 다리, 종묘의 단순하면서도 엄숙한 건축적 특징, 그리고 현판 하나에도 지형을 고려한 의미를 담은 섬세함을 통해서는 한국 건축의 멋과 아름다움을,  석빙고와  해인사 장경판전, 첨성대, 자격루, 무두정광대다라니경, 거북선, 혼천시계를 소개하면서는 거기에 담겨진 놀라운 우리 조상들의 과학기술을, '그리는 이와 보는 눈'을 통해서는  그동안 문화재라는 의미에서 내 의식의 한켠으로 비켜서 있던 우리의 그림과 글, 그리고 작가들에 대한 독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알려줍니다.  범종의 용두, 도깨비 기와엔 없는 도깨비, 우리 문화재와 일본 문화재의 비교, 경천사탑과 원각사지탑, 성덕대왕신종을 통한 복원과 보존에 대한 이야기등이 담겨 있는 '집중문화재 탐구', 그리고 가짜문화재와 전시를 위한 복제품의 제작, 문화재의 포장과 운반, 문화재의 현금 가치, 몇살이 되어야  문화재가 되는지 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긴 '문화재의 뒷이야기'의 내용은 또다른 시각에서 우리의 문화재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줍니다.

 '익살과 해학의 미', '자유분방함의 미학', '자연스러움의 미', '무기교의 기교' 등 한마디로 정의 하기 어려운 우리 문화재에 대한 특징을 저자는 '열린 눈으로 자연과 하나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에'부서진 기와나 벽돌조각, 자그마한 토우, 기와지붕의 잡상처럼 사소해 보이는 유물 하나하나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선인들의 빼어난 미감, 여유와 낭만이 있고 이를 만나는 일은 감동이고 이것이 문화유산의 진정한 매력이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내 주변에 있는 것들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갖는다는 것은 분명 내 삶을 더 윤택하게 이끄는 즐거움이 됩니다.

 이 책을 보며 예전에 지방의 한 박물관에서 하던 8주짜리 교양강좌를 듣던 생각이 났습니다.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백제 금동향로에 대한 강의인데, 얼마전에 아이들 답사 여행책에서 소개된 것을 보니 무척 반가웠던 기억입니다. 다는 아니어도 그것에 대해서 그리고 저자가 설명하는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의 반가움이었을 듯 합니다. 그래도 예전에 한번 들었다고 말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러한 책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의 단면입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번 설에 창덕궁에 갔는데 문닫을 시간되었다고 입구에서 쫒겨온 일이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갔는데 그냥 올수 없어서 궁궐대문 앞에서 지붕 네 끝에 달린 동물 모양의 형상들을 보며 아이들에게 저기 뭐가 있다고는 했는데, 아는게 없어 더 말을 붙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건 부끄러운 기억인데 이 책을 보며 그것을 잡상이라고 하며, 아마도 삼장법사 일행을 형상화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 어린이 출판사에서 어처구니 이야기라는 내용으로 책을 출판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처구니가 그렇게 처마에 얹힌 잡상들의 이름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또한 맷돌의 손잡이를 그리 부른다는 사실도 새로이 알게 됩니다. '어처구니없다' 의 어처구니는 아마도 후자의 의미인 듯 합니다. 학교다닐 때 대했던 유홍준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만큼이나 신선하고 유쾌한 시간들이었고 또한 내 뿌리를 알아간다는 즐거움이 있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다음엔 고궁에 가면 잡상들을 보며 부끄럽지 않게 '저기 어처구니가 있네'하며 아이들에게 멋지게 설명을 곁들여 주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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