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 - 틱낫한의 평화 이야기
틱낫한 지음, 보-딘 마이 그림, 권선아 옮김 / 그린북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사11:6-9a)

 <두 친구>의 고양이와 생쥐의 모습을 보며 생각이 났던 구절입니다. 신앙의 유무를 떠나서 이 부분만을 따로 떼어서 읽어보더라도 충분히 마음속에 평화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구절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도 이 부분을 읽을 때면 반신반의 하며,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은유로 -현실이 아닌- 받아 들이곤 하였는데, 두 친구의 고양이와 생쥐의 사는 모습을 보며, 정말 문자 그대로 될수도 있는 일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멋을 부리고 과장하기 위해서 표현한 시적인 문구가 아니라, 나중에 정말로 우리에게 주어질 평화의 나라는 바로 이런 나라라는 가르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 부분 크리스챤이 아닌 분들과 논쟁하기 위한 것은 아니니, 그대로 보아 넘겨 주시기를...-

 <두 친구>는 '코코넛 스님'으로 알려진 다오 두아 스님의 삶을 바탕으로 씌여진 이야기라고 합니다. 베트남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 종교 공동체를 세워서 사람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주신 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친구>에 소개된 평화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크게 네 가지로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 첫째는 스님의 사는 모습에 표현된 평화입니다. 코코넛 나무 아래에서 명상을 하고, 평화를 위해 머나먼 길을 묵묵히 여행하고, 감옥에 갇혀서도 부족한 음식을 나누고, 풀려나서도 그의 코코넛 나무 아래로 돌아와 명상하며 가부좌를 한 모습에서 '평화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되물음을 듣습니다. 두 번째는 고양이와 생쥐의 다정히 어울리는 모습에서 보는 평화의 상징성입니다.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짐승이 다정히 노닐며 친구가 되는 모습, 그리고 '고양이와 쥐가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있다면 우리 인간도 역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하는 물음이 주는 평화가 세상에 구현될 수 있으리라는 진한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셋째는 전쟁의 파편들을 모아서 아름다운 종을 만들고 '너희들은 지금껏 전쟁놀음을 해왔지. 이제는 평화를 만들어 내는 것을 도울 수 있단다.'라고 말하며 매일 밤 평화로운 종소리를 울리는 모습에서 보여주는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갈망과 전파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통령궁에 찾아가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분연히 행동에 나서는 결단성과 힘으로 저항하지 않고 감옥에 갇혀서도, 부족한 음식을 나누며 평화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배우는 실천하는 평화의 메시지입니다. 서로에 대한 포용과 적극적인 평화를 만들기 위한 삶, 그리고 비폭력.... 이런 말로도 이 책에서 코코넛 스님이 주는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야기 속의 코코넛 스님은 메콩강의 피닉스 섬에 종교 공동체를 세워 베트남 전쟁의 참혹한 자취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천국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불교, 도교, 기독교 신자들이 다양하게 모였고, 농부도 미군도 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전쟁의 참상속에서도 평화를 이룬 사람, 그리고 평화로운 섬. 이것이 코코넛 스님이 아마도 이 시간 내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일 듯 합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고양이와 생쥐의 친구 관계가 성립될 수 있듯이, 전쟁의 참상속에서도 노력하며 힘쓴 자들은 평화로운 세상을 눈앞에 펼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아마도 갈수록 삶이 무겁게 느껴지고, 마음의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사는 나의 삶이란 것도 결국은 나의 것을 손아귀에 쥐고, 나누지 못하는 데서 오는 욕심 때문인 듯 합니다. 평화를 적극적으로 구하지 아니하고 나누지 아니하고, 내 것을 먼저 챙기는 데서 오는 세상과 사람들과의 불화가 쌓이고 쌓여서 -조금 과장되이 부플리면- 코코넛 스님을 가두고 핍박하던 권력이 되고,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포탄을 퍼붓는 전쟁이 되었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칩니다.

 내 아이들에게 이 책이 주는 평화의 메시지를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움켜쥔 손을 펼치고 그 안에 든 것들을 나누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철로 무기를 만들고 전쟁을 연습하는 욕심에서 벗어나 그 무기들로 쟁기를 만들어 땅을 가는 평화로운 세상을 기원한다면 너무 과한 욕심일까요? 하지만, 내가 읽은 성경에는 코코넛 스님이 이루었던 평화의 나라(땅)에 대한 약속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의 세대에는 그러한 소망이, 믿음이 아닌 좀더 가까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이 책을 대한 어른된 이들 -나를 비롯한- 의 소중한 실천이 싹으로 자라서 열매로까지 맺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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