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아빠가 잠시 잊고 있었단다 - 늘 바쁜 아빠가 가슴으로 쓰는 편지
윌리엄 란드 리빙스턴 원작, 코하세 코헤이 글, 후쿠다 이와오 그림, 이홍렬 옮김 / 깊은책속옹달샘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아이들과 살갑게(?) 지내는 아빠인지라 특히 둘째 아이는 무척이나 아빠를 괴롭게(?) 하곤 합니다. 틈만 생기면 '아빠 게임해요.' ' 다이아몬드 게임 한 판만요.' '오늘은 저랑 축구하러 가실거죠?' '목마 태워 주-세-요' '피터팬 책 읽어 주세요' ' 말타고 싶은데 한번만 태워 주세요' 등등등..... 끝없는 요구를 하고, 조금이라도 소홀할라치면 휙 돌아서서 뾰로통해져서는 시위를 하곤 합니다. '밥을 안먹을거야'는 기본이고, 심할 때는 훌쩍이며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으니 '짐을 싸서 집을 나갈거야'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떤 부모들은 버릇 고친다고 정말 짐을 싸들려서 문밖으로 내 보낸다고도 하지만.... 아직까지 거기서 아이를 억지로 이기지는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 이제 초등 2년이 되는 큰 아이는 어려서부터 동생덕에 다 큰 아이 취급을 받아서인지 분위기가 아닐 듯 하면 이내 자기의 의견을 접고 아빠의 말에 따르곤 합니다. 아빠에게 안기는 것도 동생이 안 보이거나 아빠가 정말 기분이 괜찮아 보일 때만, 또는 아빠가 정말로 안된다고 하지 못할 약점을 잡혔을 때만 당당히(?) 요구합니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어도 부모가 안된다고 하면 이내 '그럴께요' 하고, 매번 동생과 물건이나 먹는 것으로 다투다가도 시끄러워질 듯 하면 알아서 먼저 양보를 해 버리곤 합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 아버지로서의 나의 관점은 항상 '이제 우리 첫째가 다 컸네' 하는 식이었습니다. 아이의 마음속을 다 헤아리지도 못했고, 헤아려 볼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게으른 아빠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두에 이리 나의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문득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이 생각들을 통해 아이들 앞에서 아빠로서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나도 잃고 있었다는 반성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내가 작은 아이의 요구들을 때로는 괴롭게 생각하고 큰 아이의 어른스러움을 당연하게 생각하곤 하는데, 아이들의 입장에서 반복되는 부모의 요구나 간섭, 또는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어찌 받아들여질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이거해라 저거해라 하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참 괴롭고 힘든 일이겠다는 생각도 들고, 좋은 것을 골라 먹이고 입히는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세상살이가 바쁘다는 핑계와 다른 사람들과 어쩔수 없이 해야하는 경쟁관계 안에서 생각하게 됨으로 인해서, 아이에게도 사랑과 소망이 담긴 그런 관계맺음 보다는 공부를 하는 것이나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하는 것, 영어공부를 잘 하는 것 등으로 먼저  칭찬하고 관심을 보였던 모습을 뒤돌아보면 못내 부끄러움이 고개를 숙이게도 만듭니다. 아이와 나의 관계는 그런 것이 기초가 된것이 아닌데, 살다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모습속에서 아이에게 가르친 것도 그런 형식적이고 눈에 나타나는 성과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을 가르친 것 밖에 안 되었다는 반성도 들구요. 그러고 보니 내 아이들에게 단지 그들이 나의 아들이고 딸이라는 사실자체만으로도 기쁘다는 고백을 하고,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을 대한 것이 언제적인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 나의 부모들에게 바랐던 그 소박한 꿈들의 꾸러미를 아득하게나마 간직하고 있는데, 그게 어른이 된 지금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마음의 다락방 한 구석에 그리 처박혀 있습니다. 그걸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지고 풀어보았다면, 지금 이 순간이 이렇게 많이 부끄럽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속에서 장난감을 치우지 않는다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옷을 더럽혔다고, 인사하는 태도가 공손하지 못하다고 사사건건 아이에게 잔소리하고 호통치고, 매번 비꼬는 듯한 아버지의 모습은 바로 나도 모르는 아버지로서의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름대로는 아이를 잘 이해한다고 하였지만, 결국은 나의 아이들의 눈높이로 고개 숙이지 못하고, 나의 눈높이로 그들을 대하고, 그들에게 요구하고, 또한 훈육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 책속에서 잠든 아이를 보며 아빠가 기도했던 고백도 고스란히 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다만 좀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세상을 둘러보고, 아이들의 생각과 생활을 조용히 들여다 보는 반성의 시간이 많이 부족했음을, 그래서 그들이 잠시 나의 천사들이었음을 잊고 살았다는 고백을 덧붙입니다.

 '아이들아!  아빠가 미안해!  너희들이 나의 천사였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거든....'

 나의 천사들 앞에 선 나는 누구일까요? 

 이제까지는 아니지만 앞으로는 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아이들을 내려다 보지 않고 무릎을 꿇고 똑같은 눈높이에서 대화를 하고 웃고 우는, 사랑스런 두 천사를 가진, 자랑스런 이름,  아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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