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소 - 개정판,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이문열 지음, 최일룡 그림, 박우현 / 휴이넘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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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열. 이 이름 석자가 우리 문학사에 남긴 영향은 나 같은 범부야 논하기 어렵겠지만, 어찌하였든 나 같은 사람도 그가 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삼국지>를 접하면서 그의 글을 알았기에, 현재 그가 보이는 정치색이 나와는 많이 다른 편에 있더라도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인색한 건 아니고 해서, 이 작품에 대한 기대가 나름 상당하였습니다. 들소를 통해서 원시시대의 권력의 생성과 사유재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고 책의 서두에 밝혔듯이 작가는 원시 수렵과 채집 -이런 용어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중심의 모계사회가 권력과 사유재산이 형성되고 있는 자와 없는 자가 구분되는 정착지를 중심으로 한 부계사회로의 변화에 대한 나름의 성찰을 이 작품에 묘사한 듯 합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 힘을 합쳐 사냥을 하고, 그 부산물을 공평하게 나누던 원시 부족 사회에서 아마도 가장 영예로운 이름은 사냥에 나서서 공을 세우는 자에게 붙여진 이름이겠지요. 이 신석기 사회의 성년식에서 우리의 주인공은 '소를 겁내는 자'가 되고 뱀눈이라는 권력을 탐하는 약삭빠른 소년은 '뿔을 누른 자'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받습니다. 그리고 뱀눈의 세력은 점점 힘을 얻어가고 결국에는 기존의 부족사회의 전통마저도 자신의 권력을 위한 도구화를 꾀하게 됩니다. 지혜로운 여인이 다스리던 모계사회가 가장 현명한 통치자-실제로는 가장 힘이 세고 많이 가진 자-가 다스리는 부계사회로, 부산물을 함께 나누던 공동체 사회가 뱀눈과의 거리에 따라 권력과 재산이 분배되는 계급사회로, 자신의 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던 사회가 이젠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다른 부족을 공격하기도 하는 사회로의 변화를 꾀한 것이지요. 이것을 우리는 사회의 발전이라고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 탐욕이 자라는 역사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한 불평등과 권력의 억압이라는 사회변화 속에서 마지막에 주인공이 택하는 길은 자기의 소를 찾아 가족마저도 떠나고 자신의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큰 목소리'처럼 뱀눈의 세력에 맞서 불의를 지적하고 공동체 사회의 위기를 되돌이켜 사라져가는 공동체 사회를 회복하려는 선지자적인 역할에 나서지도 못하고, 그런다고 뱀눈의 의도에 따라 그의 권력을 강화시켜주는 충실한 신복이 되지도 못하는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고뇌하다가 그는 결국 부족과 가족 모두를 떠나 자신의 소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이 알타미라 동굴의 들소그림과 연결되는 것을 보니까, 작가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과 그 벽화를 연결시킨 듯 합니다. 어디에도 뱀눈이나 큰 목소리의 흔적은 남지 않았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잊혀진 '소를 겁내는 자'의 들소 그림은 지금까지 남아서 후대 사람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의미이겠지요. 작가가 의도하고 주장하고자 한 예술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합니다.

 권력과 사유재산의 형성, 그리고 불평등과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이 책의 내용이 작가의 최근 성향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작가가 의도한 예술의 가치에 대한 설교를 간파하고 나서야 작가가 정말 말하고 싶은 내용은 이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후자는 제가 생각하는 작가의 성향과 일치하는 듯 하니까요. 권력과 사유재산의 형성 문제를 이 책이 말한대로 간단히 도식화 할 수만은 없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한다면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여러 사회문제에 대한 아주 단순하나마 의미있는 이유들을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에 나온 들소 그림을 통해서 예술의 의미에 대해서도 활발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구요. 하지만 소설 전후에 나오는 너무도 친절한 설명과 유도성 질문들, 그리고 소설 중간중간에 끼워넣은 만화캐릭터 같은 인물들의 소설내용에 대한 간섭은 논술과 생각하기를 위한 장치라고는 생각하지만, 결국 뱀눈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모든것을 교활하게 활용했듯이, 작가가 의도한 대로 독자들이 따라가도록 유도하는 그런 장치가 되어버리고, 천편일률적인 사고의 틀로 다시 내모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따르는게  사실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더더구나 아직 사고력이 성숙하지 않은 학생들이라면 더욱 위험한 장치는 아닐까 하는 염려가 앞섭니다. 그냥 글과 삽화만 있는 단순한 소설의 형식으로 아이들이 이 책을 만났다면 훨씬 깊은 생각거리를 만들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건 물론 책의 내용보다는 형식에 대한 비판이니, 다른 형태로 발간된 이 소설에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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