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어머니 같은 후원자는 없다. 옳건 그르건 어머니의 관점에서는 아들이 항상 옳다

 책을 읽는 내내 해리 트루먼 전 미국대통령이 했다는 이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를 보면 여기에 딱 부합하는 모습이니까요. 어머니이기때문에 항상 자신의 아들편을 들어주었고, 그의 잘못을 잘못이라 비난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결행한 자살이라는 인생최후의 몸부림의 현장에서도 그의 가슴속에서 다시 살아나 그가 자신의 소원의 성취였고 의미였다고 고백하며 용기를 주고 다시 살 힘을 북돋아줄 수 있었던 사람..... 바로 자신의 자식이 항상 옳다고 믿어주는 어머니만의 자리가 아닐까요?

 이혼한 어머니에게서 자랐지만, 한때는 야구선수로 잠깐이지만 메이저리거로 살았고, 꿈의 제전이라는 월드시리즈에도 참여했던 칙. 그런 그가 절망의 몸부림속에서 마지막에는 자살까지 시도하게 됩니다. 사업의 실패, 술, 이혼등이 그의 절망에 일조했지만 그가 자살이라는 극한 처방을 시도한 것은 자신의 딸 마리아의 결혼식에도 그리고 그후 어떤 모임에도 초대받지 못하고 따돌림 당한 절망에 기인합니다. 야구선수를 그만둔 후 엉망이던 그의 삶에서 유일한 예외였던 딸 마리아에 의해서 이젠 그의 존재가 무참히 무시 당했고 -칙이 어머니에게 했던 식으로 말하면 딸이 칙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거죠- 그는 그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택하려 그의 어릴적 고향집으로 질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선물(?)로 주어진 하루동안 아마도 그의 가슴속에서 살아서 평생 함께 살던 그의 어머니가 그의 현실속으로 다시 들어와 칙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진행되는 이야기속에서 칙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 마지막 하루를 어머니와 함께 보내고자 했을만한 이유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칙은 그의 딸의 외면으로 자살을 택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칙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많은 순간에도 칙처럼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아들의 편을 들어주는 후원자로 남았고,  그의 아들이 자신의 간절한 소원의 성취였다는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하는 아이는 제 마음이 그만큼 아픈 것이라는 지혜를 터득하여 아이들을 다독였고,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간호사 베네토가 아닌 미용사 베네토, 청소부 베네토를 부끄러워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야기 내내 나오는 '내가 어머니 편을 들어주지 않은 날'과 '어머니가 내 편을 들어준 날'에 대한 기억은 아마도 주인공이 자신의 딸이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데 대한 절망으로 자신의 어머니처럼 자신의 딸의 편을 끝까지 들어주지 않고 결국은 자신의 편을 들고 마는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의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딸로 인해 자살이라는 극한을 택한 그 앞에선 어머니 - 자식이 자신의 편이던 아니던 항상 자식의 편에 서 계셨던 자신의 어머니-를 보면서 그가 느꼈을 감정은 아마도 회한과 부끄러움 그리고 감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딸 마리아, 아내 캐서린 그리고 자신의 동생과의 화해를 이루고 만족스러운 말년생활을 누린 듯 하구요.

 옮긴이가 이야기하듯이, 이 이야기는 헌신적인 어머니와 예전에는 미처 그걸 알지 못했던 한 아들의 이야기, 즉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과 희생에 대한 이야기로 끝나기에는 삶과 인생에 대한 더 많고 깊은 뜻을 지니고 있을지 모릅니다. 비단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이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조상과 나와 나의 후손이라는 계보를  또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거창한 이야기나 담론보다는 소설속으로 돌아가서 평범한 듯 보이지만 읽는이의 마음을 울리는 저자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마음을 열고 가슴으로 귀기울이는 것이 더 현명하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여담으로 마지막 페이지의 사진들을 보니까 할로윈의 미라는 저자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한 듯 합니다. 

 칙의 독백으로 이 아름답고 가슴 뭉클했던 이야기에 대한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나는 그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하루를 가져보았던 사람입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지나간 하루를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중요한 건 아니더군요. 그리운 사람, 사랑했던 사람과 단 하루만이라도 더 보낼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이미 그 하루가 주어져 있는 셈이니까요. 오늘 하루, 내일 하루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들의 하루는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라고 주어진 하루입니다. 그러면 매일이 단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소중해지지요. 이제 나도 오늘 하루,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로잡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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