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파는 남자 - KI신서 916
페르난도 트리아스 데 베스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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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T는 $이다'

 '시간은 금이다'는 격언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을 작가가 자신이 정한 기호로 축약한 표현입니다. 저자가 프롤로그에서 이 표현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에필로그의 애덤 스미스,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에리히 프롬으로 이어지며 현대 자본주의 체재가 극도의 이윤추구에만 매몰됨으로 인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점차 노예화되고 도구화되는 상황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으로 자유로울수 있는 시간을 사는 행위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암묵적으로 각 개인의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한 자유와 권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성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리 이해하는 것이 너무 관념적인 어려운 문제가 되어 마냥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할 무렵 저자는 반지의 제왕에서 간달프가 프로도에게 말한 아주 간단한 말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시켜 줍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다"

 적두개미의 연구를 꿈꾸는 주인공 TC는 어느날 자신의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적다가 자산으로 지닌 아파트며, 자동차, 예금등을 위하여 자신이 어쩔수 없이 끔찍한 직장생활을 35년동안은 해야한다는, 35년이라는 세월의 부채를 짊어진 빚쟁이임을 깨닫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개미연구를 위해서는 적어도 35년은 부채를 갚기위해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인생의 부채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양도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갖게된 TC는 그 시간을 파는 사업을 구상하고, 5분이 들어있는 플라스크를 제작하고 팔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그의 5분용기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5분의 자유를 누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TC는 2시간짜리, 일주일짜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35년짜리 컨테이너까지 팔기 시작하고, 자신의 재산으로 기꺼이 35년을 구입한 사람들이 사는 어떤나라는 결국 우리가 매일 행하는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중단된 혼란스런 상태로 치닫게 되고, TC는 사형의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결국 다시 국가에서 $로 T를 사는 과정을 통해 혼란은 수습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전의 그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은 듯 합니다. 예를 들어 TC의 상사이자 사업의 동료였던 DP는 나라에서 지급한 $를 쌓아놓고 쇠똥구리연구에 자신의 T를 사용하는 선택을 하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저자는 두가지 결말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과도하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여 삶을 꾸려 나가고 나름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건강한 사회이고, 다른 하나는 다시 이전의 삶을 위해 일생을 고스란히 저당잡혀야 하는 고단한 인생들의 사회입니다. 저자의 의도된 이 두가지 결말은 아마도 우리 사회 체재에 대한 질문인 듯 합니다. 우리사는 사회가 삶을 위해 과도한 시간을 요구하는 즉 과도하게 시간을 착취하여 인간을 노예화 시키는 사회인가 아니면 영성과 사랑, 인류애, 협력 및 연대등을 통한 각 개인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사회인가 하는 질문을 먼저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답은 각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아쉽게도 많은 이들이 부정적인 쪽에 한 표를 던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사는 이 사회도 집과 음식과 의복을 유지하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일생을 저당잡힐 것을 요구하고 있는 듯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게 5년이나 10년일 수도 있고 어떤이들에게는 35년을 넘어 이 세상에서 눈감을 때까지 지속되는 악몽일 수도 있겠구요.

 잠시 개인으로서 시간의 자유를 누린다는 의미를 생각합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누린다는 의미는 어떤걸까? TC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을 갖는 것, 또는 내가 원한는 곳에 원하는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는데, 그러기 위해서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많은 돈이 있다면 상당부분 시간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겠으나, 결국 그 돈을 위해서 시간을 투자해야하므로 지금 당장부터 자유를 누리는 방법은 아닐듯 합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속에 있는 물질에 대한 집착이나 욕심을 내려 놓는 것, 이것이 내가 제일 쉽게 그리고 가까이서 찾을 수 있는 정답일 듯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무심히 나태함 속에 흘러가는 시간을 내게 붙들어 매는 것일 듯 하구요. 그렇게 시간을 관리한다면 TC에게 5분의 플라스크를 사지 않더라도 매일 몇개의 5분짜리 플라스크를 내 자신에게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조주께서 세상사람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신 것이 '시간'이라고 합니다. 언뜻 이 말이 진실인듯 보이지만 이면을 들여다 보면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이마저도 진실이 못되는 듯 싶습니다. 결국 있는 사람은 돈이라는 경제적인 수단을 통해 자신에게 필요한 곳에 좀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시간을 잡아먹는 여러가지 잡다한 일들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되고, 그로인해 좀 더 많은 시간적인 자유를 누릴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동일 -이것도 길게 보면 공평한게 아니지요, 40세를 못넘기는 사람도 있고 100살이 넘어사는 사람도 있으니-할지라도 상대적인 시간이나 그 시간의 질은 결코 같을 수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런식으로 불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라도 우리 자신이 어떤식으로 관리하고 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스스로가 누리는 시간의 자유의 질은 달라질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는 것은 나름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게 합니다. 즉, 내게 주어진 시간의 질은, 시간의 많고 적음보다는 내 삶의 중요한 부분에서 내가 내리는 가치나 의미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것을 깨닫는 다면  우리 각자가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 시간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 그러한 경제적인 이유로 말미암은 양적인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아주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오늘은 적어도 5분만큼은 내 시간의 주인이 되어 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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