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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동화 긴 생각 - 두 번째 이야기, 생각이 깊어지는 이야기 ㅣ 짧은 동화 긴 생각 2
이규경 글.그림 / 효리원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만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속에 갇힌 사람이에요. / 내 것만 찾는 사람은 우리 속에 갇힌 사람이에요. / 우리 속에 갇혀서 넓은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에요. / 내 것이 없으면 남의 도움 받지 못할 외로운 사람이에요. <우리 속에 갇힌 사람, p38>
함박눈이 내린 일요일날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천변 잔디밭에 가서 눈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열심이 눈을 굴려 나는 몸통을 만들고 큰아이는 머리부분을 만들었습니다. 가져간 준비물이 없어서 눈이며 코, 입은 눈으로 불룩하게 만들고서 머리에는 돌하루방이 쓴 모자처럼 멋진 눈모자도 하나 씌워주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몇장 찍었습니다. 그렇게 기분좋게 시간을 보내고, 들어가기 싫다는 둘째녀석을 달래서 교회에 다녀온 뒤에 다시 와서 깽깽이-6살 둘째아이가 지어준 눈사람 이름입니다. 이유는 저도 모르는데...-와 놀자고 하고 집에 돌아와 가족들이 모두 교회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차가워진 오후에, 아이들의 약속을 지키라는 강력한 항의(?)에 너무 춥다고 그들의 주장을 무력화 하려던 내가 할말이 없어 다시 깽깽이에게 갔습니다. 한데.... 우리의 소중한 작품이 무참히 짓이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10여미터 옆에 다른 사람들이 만들었을 눈사람이 서 있었구요. 저는 잠시 실망하는 아이들을 보며 할말을 잃었습니다. 참 사람들이란게.... 그냥두고 쳐다보면 좋았을것을.... 굳이 이리 부숴야 했을까..... 조금은 씁쓸했습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되었지만 사람들 마음까지 하얗게 깨끗해진건 아니었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부서진 눈덩이들로 성벽을 만든다며 이내 부산히 움직입니다. 그런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보며 내가 억지로 저 아이들에게 무언가 선한것들을 가르친다는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난 아직 우리 속에 갇혀 있고 아이들은 저리 다시 자유로워졌습니다.
넓은 길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은 / 서로 부딪치지 않지만 / 좁은 길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은 / 서로 부딪혀요. / 우리들 감정도 마찬가지예요. / 넓은 마음에서 오고 가는 감정들은 / 부딪치지 않지만 / 좁은 마음에서 오고 가는 감정들은 / 서로 부딪쳐요. <길과 마음, p39>
여기 읽으면 생각이 커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향기가 묻어나는 이야기,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동시라고 생각했는데 작가가 제목으로 굳이 짧은 동화라고 하였는지 나름 고민해 보지만 이내 그게 그거 아닌가라는 타협으로 물음표를 저 멀리 내동댕이 칩니다. 넓은 마음으로 오고가는 생각들을 잘 소통시킨다는 핑계를 덧붙이며.
힘으로 열수 없는 문이 / 마음의 문이예요. / 돈으로도 열수 없는 문이 마음의 문이예요. / 그러나 부드러운 말한마디에 / 쉽게 열리는 문이 마음의 문이예요. / 눈물 한 방울에 쉽게 열리는 문이 / 마음의 문이예요. <마음의 문, p60>
나의 아이들이 이런 세상사는 이치를 깨우쳤으면 합니다. 세상을 지식으로나 힘으로나 돈으로 살지않고 가슴으로 사는 법을 체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친구의 아픔을 공감할 줄 알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손 내밀어 잡아주는 용기를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등의 부드럽고 품위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멀리 떨어져서는 친구가 안돼요. / 오라고 손짓해서는 친구가 안돼요. / 가까이 다가가야 친구가 돼요. / 내가 먼저 손 내밀어야 친구가 돼요. <친구, p129>
학교에 처음 입학한 큰아이가 '오늘은 친구를 몇명 사귀었어요' 하고 자랑스레 이야기하던 기억이 납니다. 새로 학원에 가서 며칠이 지나 물어보면 사귄 친구가 몇명이 있다고 웃으며 이야기 하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아이에게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다른사람과 친구가 되는 방법을 저보다 더 잘 알고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겠지요.
사람을 대할 땐 봄같이 대해요. 따뜻하게 대해요. / 공부를 할 땐 여름같이 해요. 뜨겁게 해요. / 생각을 할 땐 가을같이 해요. 시원하게 해요. / 그리고 나 자신을 꾸짖을 땐 겨울같이 꾸짖어요. 차갑게 꾸짖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p76-77>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서 아이들의 눈에 가장 잘 뜨일만한 곳에 이 책을 꽂아 놓습니다. 아이의 손이 이 책을 반갑게 맞이하기를, 그리고 여기 숨기운 보석들을 자기들 나름대로 찾아가기를 바라면서.... 다만 책의 마지막에 덧붙여진 논리 논술 레벨업과 풀이 부분은 우리아이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생각을 강요한다고 저들이 생각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고, 그리고 저들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영혼의 능력 -남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자신의 일을 할땐 훨씬 열정적이며, 시원하고 폭넓은 생각의 씨앗과 자신에게 철저한 절제의 미덕-을 이미 저들의 내면에 지니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