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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천마일 - 한비야를 읽었다면 박문수를 읽어라!
박문수 지음 / 이덴슬리벨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기린이 머물고 있는 초원과 파란하늘, 그리고 지평선에 일고 있는 하얀 구름을 배경삼아 노란 셔츠를 입은 청년이 두손을 번쩍 쳐들고 서있는 책표지를 대하며 도시생활에서 느끼지 못하던 광활함과 자유로움을 생각하였습니다. 사진도 아니고 세밀한 그림도 아니지만, 단순한 표지 일러스트를 통해서 말하고자 한 것이 아프리카의 광활한 자연과 삶을 통해서 자유와 가슴에 담은 무한한 꿈과 소망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해몽부터 멋지게 하여봅니다.
청춘, 듣는 것만으로도 심장의 힘찬 박동이 느껴지는 멋진 단어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런 아직은 설익었다고 말할수 있는 20대 초반의 대한민국 젊은이입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어머니가 마련해준 100만원을 가지고 배낭하나 둘러메고, 아프리카를 찾아나선 젊은이의 3년여간의 생활의 기록이 이 책의 내용이구요. 어찌보면 청춘이라는 젊음이 있기에 100만원으로 오지-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피튀기는 문명사회가 오지일수도 있다는 역설을 말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분명 아프리카는 우리 기억속에서 아마존처럼 그런 이미지가 강하다는 의미에서 오지- 아프리카를 찾아서 1년만 살아보자고 용감하게-무모하게- 길을 나섭니다. 그리나 그는 눈으로 처음 대한 아프리카가 자신이 알고 있는 아프리카와 많이 달라서 당황했다고 쓰고 있습니다. 사자와 코끼리와 얼룩말이 우글거리는 초원, 기근과 기아에 삐쩍마르고 배가 불룩한 아이들 등의 모습이 이 젊은이에게도 그 땅에 발을 디디기 전까지의 아프리카의 이미지였던 듯 합니다. 책이나 언론을 통해서 본 이야기거리가 되고 기사가 되는 이야기들이 저자나 우리가 생각하는 아프리카일테데 실제는 그런것 보다는 더 잘사는 듯한 그곳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결국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도시라는 공간은 특히나 기본적인 모습에서는 우리가 사는 도시 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듯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똑같이 나와 우리에게 각인된 편견의 일면이겠지요.
저자는 3년여동안 때로는 기차의 3등칸을 타고, 때로는 콩나물(?) 버스를 타고 그리고 때로는 배를 타기도 하고 근사한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를 타기도 하며 몸으로 돌아보았던 우간다와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 탄자니아, 케냐, 그리고 짐바브웨, 스와질랜드에 대한 이야기 - 정확히 말하면 그 기간동안 자신이 겪고 느꼈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낯선 사람인 그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는 선한 아프리카 사람,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손님에게 좋은 것을 대접하며 나눌줄 아는 순전한 아프리카인, 아무죄없이 AIDS로 죽어가는 가엾은 두살배기 아이엄마인 어린 아프리카 소녀, 우리동네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아프리카의 아이들과 아프리카의 질병과 가난과 아픔을 섬기는 수녀님, 선교사님, NGO 회원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젊은이가 울고 웃고, 절망하고 이를 악물고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고 찾아나서게 했던 이유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프리카인들을 닮기 위해 머리를 완전히 밀고 거리에 나섰지만 외양이 바뀐다고 노랗던 그의 피부까지 아프리카인의 까만 피부가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자기성찰과 비가 내리고 꽃이피는 자연속에서 인생과 행복에 대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자기 성숙, 봉사의 댓가로 총탄세례를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소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던 부부의 모습을 보며 깨닫는 아프리카를 사랑한다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전투적인 것이라는 것, 봉사와 사랑이 감미롭고 아름다운 모습만을 가진것이 아니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전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담겨 있습니다.
변기에 머리를 감고 쥐똥이 박혀있는 매트리스를 대하며 처음 시작하여, 내전의 참상과 질병과 가난과 때로는 핍박으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의 아픔을 체험하여야 했고 때로는 자신의 미약함에 절망하기도 했던 이 여행을 이 젊은이는 '기쁨의 천마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책표지에서처럼 아프리카의 대지와 하늘을 향해 소망가득한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아프리카에 짙게 배인 그런 비극과 아픔과 질병과 가난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여전히 순전하고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을 돕기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변함없는 인류애를 지닌 사람들이 있기에 느끼는 소망이고 기쁨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작정 오지와 대자연의 이미지를 가지고 떠났던 아프리카에서 저자의 몸과 마음, 정신과 영혼이 한 단계 더 성숙하고 자라난데서 오는 그런 기쁨이 가장 큰이유가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저자의 마지막 에필로그의 말처럼 이제는 자신의 활동을 통해 기쁨의 열매가 자라나는 아프리카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한없는 가능성과 소망을 품은 저자의 삶에 전해질지 모르는 작은 응원을 보냅니다.
아프리카에 서있는 나는 오지 여행가도 아니고 / 명상가나 수행가도 아니다. / 그저 아프리카인처럼 아프리카를 사랑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 함부로 그대들의 기준에 맞추려 하지 말라 / 그것 또한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이끌림이다. / 함부로 오지라는 말 또한 쓰지 말라. / 어떤 사람들에겐 부패하고 부도덕한 상횡에 사는 / 우리의 터가 오지이며 / 순결을 잃고 영혼의 때가 묻은 우리들이 오지인이다.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