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판매학
레이 모이니헌.앨런 커셀스 지음, 홍혜걸 옮김 / 알마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을 위한 약을 만드는 것입니다. 리글리 사의 껌처럼 보통의 건강한 사람에게도 우리 회사의 약을 파는 것, 그것이 나의 오랜 꿈입니다."

 30년전 다국적 제약회사인 머크 사의 CEO였던 헨리 개스던이 했던 이 말은, 좋게 생각하여 받아 들인다면 사람들의 건강을 위하여 질병에 대한 예방적인 약물을 만들어 팔거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강식품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르는데- 약물을 팔겠다는 소망으로 받아 들일수도 있겠지만, 조금 비틀어 생각한다면 모든 건강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어 약을 팔아먹겠다는 야심이 느껴지기도 하는 말입니다. 그가 이 말을 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어떤면에서는 그의 꿈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듯 한데, 전자보다는 후자의 방식을 택하여 자신들의 세일즈 영역을 넓혀가는, 환자들이나 일반인들에게는 숨겨져서 보이지 않는 그들의 비지니스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저자들은 가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미리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덩치가 커진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만들어 내는 약품이나 질병교육, 환자나 의사들에 대한 지원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모습 뒤에 담긴 이익을 추구하는 제약회사들의 의도에 문제제기를 하고, 이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들이 말하는 요점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칫 모든것을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가기 시작하여 결국은 그들의 모든것을 부정할지도 모르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매우 도발적이고 위험한(?) 책이기도 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극단적인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치료에 꼭 필요한 신약들을 개발하여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등의 순기능과 그들도 이익을 추구해야하는 기업집단 -윤리의식은 좀 달라야 하겠지만-이라는 사실을 우선은 인정하여야 할듯 합니다. 

       [病]의사전적 의미는 '생물체의 전신이나 일부분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아 괴로움을 느끼게 되는 현상'을 이릅니다. 그리고 [藥] 은 '병이나 상처 따위를 고치거나 예방하기 위하여 먹거나 바르거나 주사하는 물질'을 말합니다. 질병에 적절한 약물을 투여하여 많은 사람이 좀더 건강하게 살도록 도와준다고 하면 칭찬을 받을 일이지 비난받을 일은 분명 아닙니다. 한데 그러한 현실의 한 지점에서 저자들은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섭니다. 자본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간단하지는 않지만, 그런 속성을 따지는 건 뒤로 하고 저자들이 주장하는 귀기울만한 의견 몇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질병의 위험이나 약물의 효능을 과장한다. 약물의 효능을 따질 때, 통계수치를 사용하여 약물치료에 의한 합병증 발생률이 3%에서 2%로 감소하였다는 것을 33%의 합병증 감소율을 보였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같은 말인데도 느낌은 천지차이가 납니다.  질환의 정상범위를 좁히는데 영향력을 끼쳐 환자의 수를 늘린다. 고혈압 등의 경우 물론 단순히 약물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정상의 범위가 조절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과정에서 기준을 설정하는 전문가들과 제약회사간의 금전적인 거래가 너무 자주 안보이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암시의 수준이지만 분명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정상적인 증상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재탄생 시킨다. 폐경이나 노화의 경우는 어찌보면 자연스런 인생사의 한 과정이지만 이 것들이 치료가 필요한 질병인양 홍보하고, 약물의 치료의 효과를 강조하여 치료를 권장하는 행태에 대한 지적입니다. 새로운 질병이나 적응증을 만들어 낸다. 이것 역시 제약회사 혼자의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의료전문가들과 공공보건 기관, 그리고 환자단체의 협조하에 이뤄지는데, 이 모든 개인이나 단체 대부분에 제약회사의 후원이나 기부에 의한 금전적인 거래가 이뤄지고 있고, 노골적으로는 아니지만 결국은 어떤 증상에 대한 질병의 재정의나 약물의 치료적응증 확장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을 약물치료에 의존하게 만든다. 우울증과 같은 경우를 예로 들면 몇가지 연구 결과를 예로 들면서 뇌의 화학물질 이상으로 단정하고서 약물치료를 홍보하는데, 마음이나 정서의 문제, 사회적, 문화적 환경등에 의한 원인이 배제되어 결국 약물 의존적인 치료 상황을 강화시키는 문제가 생깁니다. 질병을 상품처럼 브랜드화 해서 판다. 전혀없던 질환, 이전엔 알려지지 않은 증상이나 문제를 광고를 통해서, 환자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각인 시키고, 의사를 찾아 치료에 나서게 하는 것에 대한 지적입니다. 약물의 부작용은 숨기고 효능만을 강조한다. 우리가 보는 선전문구들을 생각하면 됩니다.

  고콜레스테롤 혈증처럼 질병의 위험을 통계수치의 허점을 이용하여 과장한다거나, 고혈압처럼 질병의 정상범위를 자꾸 좁혀서 환자의 수를 늘리는 것, 골다공증처럼 어떤 질병에 대한 새로운 위험군을 찾아내어 치료 대상으로 홍보하는 것, 우울증처럼 환자의 환경이나 정서 마음의 문제도 결국 뇌의 문제로 귀결시켜 약물치료의 대상임을 환기시키는 것,  과민성 대장증후군처럼 일상적인 증상을 약물치료가 필요한 질환임을 강조하여 약물복용이 필요없는 환자들 까지 약물복용에 대한 유혹을 갖게하는 것, 월경전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여러증상을 월경전 불쾌장애라는 새로운 진단명으로 유포시켜 고객을 창출하는 행위, 폐경처럼 정상적인 노화과정도 질병이라고 믿게 만들어 약물복용을 부추기는 것 등 다양한 질병에 대한 사례와 분석을 통해 저자들은 질병이 판매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는데, 결국 이리 일이 진행되는 이면에 존재하는 의료전문가, 공공보건기관, 각종환자단체와 제약회사 사이의 후원이나, 환자교육, 대규모 역학조사에 대한 지원금 등으로 연결된 금전적인 고리와 사회적 책임도 있겠지만 이윤을 추구해야하는 제약회사의 막대한 자금에 의한 홍보력이 문제의 핵심일 듯 합니다.

 그렇다면 의료소비자 입장에서 우리들에게 필요한것 무엇일까요? 우리나라는 아직 전문의약품에 대한 일반인에 대한 광고는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어서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과 다른면이 있긴 하지만, 먼저는 이런 이면의 세계에 대한 안목을 가지고 자각하는 것이 첫단추일것 같습니다. 저자들이 말한것처럼 의학자와 제약회사의 공생관계를 끊고, 제약회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질병정보를 얻는 부단한 노력, 현재는 오로지 전문가들에게 맡겨진 질병을 정의하고 치료하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구조의 개혁, 그리고 깨어있는 의사들의 노력 및 자기도 모르게 제약회사의 홍보와 선전에 이용되고 있는 의사들의 자각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일반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아 보이질 않습니다. 결국은 질병과 치료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열심히 질병을 홍보해 대는 거대 제약회사의 힘이 이미 너무 커져 버린상태에서, 저자들이 말하는 노력이나 일반인들의 자각이 너무 늦은게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기도 하듯이 우리의 작은 자각이 모이면 큰 흐름이 될수도 있으리라는 소망도 함께 여기에 써 넣습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이런 자각이라도 갖게 해준것으로 이 책은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사람이 건강한 사회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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