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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40일 간의 낮과 밤 - 에베레스트.안나푸르나 트레킹 입문
김홍성.정명경 지음 / 세상의아침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히말라야 산맥, 에베레스트 그리고 안나푸르나. 여기까지는 등산에 대해서 문외한이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름들입니다. 하지만 초모롱마-에베레스트의 현지어입니다-, 쿰부, 텡보체, 아마다블람 등의 지명은 전혀 알지도 듣지도 못한 외계어처럼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친밀한 그 무엇인가가 그 안에 담겨있을 듯한 느낌이 전해집니다. 그 이름들에도 사람의 정서가 담겨 있을 테니까요.
에베레스트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고상돈 대원이 첫 태극기를 그 정상에 꽂던 장면입니다. 장엄한 에베레스트가 아니라 인간에게, 우리나라 사람에게 정복당한 세계 최고봉, 이런식의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이 가는 길을 그런 정복자의 발걸음이 아닙니다. 경외스런 자연에 조심스럽게 한발한발 다가가서 자연속에 묻혀 들어가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고소부적응으로 힘들어 하는 과정에서 만난 설산과 강과 절벽과 산길과 사람과 마을, 그리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순례의 기록입니다.
도시 생활을 하다보면 -모든사람이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출퇴근에 대하는 길과 풍경이 일상이 되고, 살고 있는 아파트이 편리함에 길들여지고, 커다란 마트의 진열상품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집어들고 계산대를 통과하는 것이 당연함이 될 때 쯤이면, 내가 생각하고 상상하는 다른 세상도 결국은 비슷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음을 문득문득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다른 곳에 여행을 간다고 해도 거기의 길이나 집이나 상점은 내가 지나고 살고 사용하던 곳과 크게 다를바 없는 모양일 듯하고,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간다고 생각을 해도 내 상상의 나래는 도시화된 공간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곤 합니다. 산과 들도 내가 어렸을 때 자라던 곳의 모습처럼 다정한 곳이 먼저 떠오르곤 하던 나의 상상력의 빈곤을 우스워하기라도 하듯이 이 책의 곳곳에 나온 사진들은 전혀 다른 세상, 친근한 산보다는 경외감을 주는 산, 그리고 꼭대기에 올라 야호하고 외치던 산보다는 바라보기만 하고도 엎드려 절을 할만큼 장엄한 산을 보여줍니다. 20여일간의 여정으로 돌아보는 쿰푸 트레킹과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은 아마도 그 안에 들어선 사람에게 도시화된 공간에서 살면서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했을 자연의 장엄함과 우아함,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겸손 등등의 수많은 가치있는 가르침을 전해 줄 듯합니다. 글이 없어도 사진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화려하게 꾸며 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만 적어가도 인간에게 감동을 주고, 거기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가지게 하는 영혼을 울리는 한편의 시가 되는 듯 합니다. 또한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을 썼던 저자가 간암으로 이 세상을 달리 했다는 마지막 후기를 읽으며, 이 히말라야 트레킹의 기록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그들 삶의 기록이었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아려옵니다. '트레킹은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다'고 한 저자의 말처럼 내 삶의 한 과정에 저자들처럼 온전히는 아니더라도 쿰푸를 순례하고 안나푸르나를 트레킹하는 나름대로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소망이 간절해 집니다. 나도 그 곳에 가고 싶고,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습니다.
<사족> 초모롱마, 이건 성스러운 어머니라는 뜻의 에베레스트의 현지어 이름인데 서구열강의 한 관리의 이름이던 에베레스트가 이젠 현지인들도 그 산을 부르는 일반적인 언어가 되었답니다, 돈과 권력이 산의 이름까지도 바꾸어 버렸습니다. 우린 그걸 모르니 당연히 에베레스트라고 하였지만, 저자의 말처럼 우리 백두산을 서양인들이 와서 엘리자베스라고 바꾸어 부르기를 강요한다면 어떨까? 하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안나푸르나. 이건 여신의 이름이라고 알려졌는데 실은 그 어원은 안나-곡식-, 푸르나-가득찬-이라는 의미로 '하얀 쌀밥이 쟁반에 가득 담긴 모양'이랍니다. 뭔가 마음속에 느낌이 오지 않나요? 저는 한참이나 그 경외스런 산을 두고 이런 의미를 담은 옛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일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결국 말로 못할 느낌만이 떠 오르고 말긴 한데.... 아미다블람. 히말라야의 보석이라고 하고 암벽에는 부처님의 좌상이 자연적으로 생성된 모습이 보인다는데, 개인적으로도 이 산의 모습을 보고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만든 아름다운 설산의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