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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지음, 백영미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3월
평점 :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ㅣ 작가정신
'감각'은 오감을 통해 알아차린 자극을 말한다. '박물학'은 동물학, 식물학, 광물학, 지질학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책의 제목인 『감각의 박물학』은 오감을 통해 알아차린 세상의 모든 자극에 대해 언어로 풀어낸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자연의 언어를 문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가’ 다이앤 애커먼의 『감각의 박물학』이 2004년 국내 출간된 이후 19년 만에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선보여졌다. 작가 다이앤 애커먼은 미술 전문 석사 학위와 영문학 박사 학위를 소유한 재원으로, 코넬 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문학과 인문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매체에 과학과 예술을 넘나드는 다양한 글을 기고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520여 페이지에 달하는 문장은 밀도가 높고, 철학적이며 사색적이라 몰입감이 뛰어나다.
후각으로 시작해서 촉각, 미각, 청각, 시각, 공감각으로 끝나는 감각의 향연은 대단하다. 책을 통해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감각적이며, 다양한 자극을 우리에게 주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또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각의 세계를 자연주의적 관찰자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통찰하며 아름다운 언어로 풀어낸 작가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여섯 개 감각의 시작은 '후각'이 차지한다. 냄새는 상상력을 불러온다. 보이지 않고 실체도 없지만 코를 통해 느껴지는 후각으로 인해 우리는 다양한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과거의 어떤 날, 과거의 어떤 장소, 과거의 어떤 느낌을 불러오는 후각은 아이러니하게도 형태가 없어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후각을 언급할 때 사용하는 표현들은 다른 것과의 관계로 묘사하거나, 느낌 혹은 은유로 표현하는 것들이다. 언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 문자로 기록되는 세상에서 온전하게 표현할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감각임을 사색한 저자의 깊은 사유에 감동한다. 후각은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감각이기도 하다. 냄새를 맡는 과정 중에 진행되는 호흡은 생명의 동작이기도 하다.
책에 제시된 해리 할로우의 '아기 원숭이 실험'을 통해 '촉각'의 놀라운 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접촉을 통한 감촉은 행위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정서적 안정은 물론 공감과 연대의 믿음을 심어 줄 수 있다. 아이가 학교 친구들과의 사이로 힘들어했던 때가 있었다. 매일의 등교가 아이에게는 참아내야 하는 고역이었다. 하지만 부모의 개입을 반대하는 아이 때문에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던 때에 나보다 커진 아이를 매일 아침 포옹하며 다독였다. 그 작은 매일의 짧은 접촉이 아이에게는 힘이 되었을 거라 믿는다. 응원을 전달해야 하는 나에게도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감각'에도 '균형'은 중요하다.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은 인간을 소진시킨다. 하지만 지나치게 둔한 감각은 인간을 위험하게 하며 외롭게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감각의 반응을 당연하게 여기면 안된다. 지나치게 예민한 감각에는 여유를 , 지나치게 둔한 감각에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2022년 11월 출시된 오픈AI의 챗GPT가 열풍과 함께 우려를 몰고 온 현재, 인공지능 로봇이 구현하지 못할 인간만의 능력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기능적인 면에서 인간을 앞서는 존재가 될 그들이 인간이 가진 민감한 감각을 따라올 수 있을까? 감각은 기능의 월등함으로 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감각을 통해 구현되는 또다른 사고의 확장과 기억의 도출은 인간만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 몸이 느끼는 다양한 감각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때이다.
▨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