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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닮았다 -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유전학 연대기 ㅣ 사이언스 클래식 39
칼 짐머 지음, 이민아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3년 4월
평점 :
『웃음이 닮았다』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유전학 연대기
칼 짐머 ㅣ 사이언스북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통해 출판사 사이언스북스를 알게 되었으며, 이후 사이언스북스의 [종의 기원]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사이언스북스의 책들을 통해 과학을 쉽고 재밌게 접할 수 있었기에 당연하게 유전학을 다룬 『웃음이 닮았다』도 망설임 없이 선택하였으나 무지막지한 두께감에 압도되며 과연 내가 잘 읽어낼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편견' 은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를 말한다. 우리는 다양한 것에 편견을 가지고 있다. 편견은 책을 대할 때에도 발휘된다. 벽돌책은 읽기 힘들고 어렵다는 편견, 과학분야 책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비문학은 문학에 비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편견. 이렇게 다양한 책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는 책을 발견했다. 8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지만 책장이 술술 넘어가고, 과학도서이지만 과학적 지식을 장착하지 않아도 읽어낼 수 있으며, 비문학이지만 가독성있게 읽히는 책 말이다.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유전학'의 역사를 엮어낸 칼 짐머의 『웃음이 닮았다』가 우리가 가진 책에 대한 편견을 깨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칼 짐머는 과학 저술가이자 칼럼니스트, 저널리스트이며 예일 대학교에서 생물 물리학 및 생화학 겸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가 탁월한 과학 저술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며 확인했다. 이 책은 과학적 정보를 다양한 서사적 사실들에 배치하여 전달함으로 인해 독자에게 우리의 삶과 유전학이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으며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 학문이 이용되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저자 칼 짐머는 아내 그레이스가 첫아이를 가졌을 때 다운증후군 검사를 제안 받으며 '유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 글을 쓸 당시 그의 딸 샬럿은 15세였다. 그리고 샬럿에게는 13세 된 동생 베로니카가 있었다. 칼 짐머는 두 딸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유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궁리하게 된다. 그 생각과 궁리는 유전학 연대기를 다룬 책으로 완성된다.
저자는 유전자를 우리의 조상이 우리에게 선사한 축복이자 저주라고 말한다.(p.16) 축복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축복을 자신들만의 특권이라 생각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차별의 폭력을 내세웠으며, 이로 인해 구석으로 내몰린 누군가에게는 조상이 물려준 유전자가 저주로 작용하게 된다. 유전자는 한 인간을 형성하는 전부가 아니다. 부모에게 전달된 세포 속의 유전자와 주변의 다양한 환경의 영향으로 인간은 완성된다. 하지만 인류는 오랜시간 유전과 관련된 환상과 오류에 빠졌으며 이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책의 시작은 1555년 10월25일, 브뤼셀의 궁전에서 진행된 신성 로마제국 황제 카를5세의 퇴위식으로 시작한다. 55세의 황제의 곁에는 황제와 동일하게 아래턱이 심하게 돌출되어 입이 다물어어지지 않는 주걱턱을 가진 28세의 아들 펠리페가 있다. 그들이 부자지간임은 독특한 턱모양만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이들 왕조는 독특한 턱 때문에 '합스부르크 턱' 이라 불렸다. 이들은 왕족 혈통이 오염되지 않은 고귀한 피로 남겨져야 한다는 이유로 외부 세계와의 친족 관계를 봉쇄한다. 결국 합스부르크 가는 순혈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문의 성원들끼리만 혼인하게 되며 이런 근친혼은 다양한 유전질환을 야기시킨다. 또한 이 시대의 혈통 개념은 유태인을 별개의 종족으로 규정하며 차별하고, 후대에 종족 학살로 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시작이 된다.
식물을 다양하게 교배하는 '육종'은 유전학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다윈은 진화를 주장하며 자연 선택과 함께 유전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알듯 다윈은 자연 선택에 대해서는 논리적 추론을 제시하지만 유전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다만 그는 모든 생명체가 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며 세포가 '원자와 같은 미세한 알갱이' 인 제뮬을 생식 기관 속에 축적한 후 교배를 통해 부모의 세포가 결합하여 자녀에게 전달된다고 추론했다 . 그가 같은 시대 수도원에서 완두콩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멘델을 알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다. 그가 생각한 제뮬 안에 열성과 우성이 존재하여 다양한 혼종이 발생하여 종의 다양성이 만들어짐을 이야기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윈과 멘델 이후 많은 학자들은 유전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여 '유전학' 이라는 학문의 기틀을 마련한다. 유전학은 '우생학'으로 파생되고, 우생학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특별 종족과 인종, 장애인과 범죄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수단이 된다. '바인랜드' 라는 '심신 미약 아동 교육과 돌봄 시설' 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잘못된 가치관이 학문과 만났을 때 벌어질 수 있는 부작용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시대와 문화, 개인사와 정치, 윤리와 과학을 넘나드는 유전학 연대기는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고 재미있다. 유전자 지도가 발견되고 유전자 가위로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게 되었으며 유전자를 조작하여 유전병을 제거한 아이가 탄생하며 다양한 논쟁거리가 만들어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과연 유전자를 조작할 수 있게 된 지금의 유전 과학 기술은 인류에게 축복일지 저주일지 생각하기 위해, 또한 저주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유전학 연대기는 읽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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