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양식·새 양식 열린책들 세계문학 284
앙드레 지드 지음, 최애영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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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양식-새 양식

앙드레 지드 ㅣ 열린책들

 

나의 부족함을 깨닫게 해주는 책들이 있다이해력집중력사유의 깊이가 한없이 부족함을 이 작품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새 양식을 읽으며 깨닫는다고로 내가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는 것은 작품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라는 말이다나에게는 어렵고도 어려운 작품이었다하지만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의 문장들은 책장 넘기는 것을 멈추게 할 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결국 전체를 이해하기 보단 단편적 문장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단 걸로 만족했다.

 

앙드레 지드는 결핵으로 투병 중 [지상의 양식]을 집필했다가상의 수신인이자 말벗인 나타나엘에게 보내는 다양한 방식의 말걸기는 문학 종합세트이다편지일기여행기록대화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지드는 욕망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지드는 [지상의 양식집필 후 38년이 지나 [새로운 양식]을 펴낸다.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욕망'에 대해 말한다기다림이 욕망이 아닌 마중하는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그의 문장에 동의한다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지나치면 우리는 힘겨워진다그저 설레하는 마음 정도면 적당하다나에게 이를 수 있는 것내가 가진 것 안에서만 욕망한다면 상처 받지 않을 것이며 예측가능한 것이기에 평온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면서도 욕심을 낸다언제나 나의 능력 이상을 바라고때때로 남의 것을 탐한다지나친 욕망은 성취했다는 기쁨보다는 도달하는 과정 안에서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욕망을 채움으로 인한 발전과 성장보다는 소진되어 스스로에게 실망만 할 것이다.

 

욕망이 사랑으로 이루어졌다면 나를 아프게도남을 상처주지도 않을 것이다욕망에 대한 지드의 깊은 사유가 평온함을 가져온다몸도 마음도 힘겨워질 만큼 피폐해졌을 때 지드는 지난 날 자신을 뒤돌아보았을 것이다그리고 스스로를 병들게 했을 욕망에 대해 고찰했을 것이다그의 깊은 사유에 온전히 도달할 수는 없으나 그의 문장들이 좋다.

 


 

[지상의 양식]을 마무리 하며 지드는 나타나엘에게 이 책을 던져 버리라고 말한다그러면서 이 책으로 부터 해방되라고도 이야기 한다그건 아마 책으로 얻은 지식과 사유는 직접 경험한 깨달음에 비하면 미비한 것임을 말하는 것이리라그는 책에 만족하여 안주하지 말고책으로 얻은 양식은 진정한 진실이 아니라고도 다시 한번 경고한다곧 내가 경험하여 깨달은 양식이 진짜 우리의 양식인 것이다그래야만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로 우리는 창조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자기주도적으로 찾은 양식이 진정한 나의 양식이다. [지상의 양식]은 지드의 깨달음이므로 지드의 양식인 것이다우리가 그의 깨달음을 이해하고따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어찌보면 모방일 뿐이다그러니 지드의 충고대로 나만의 양식을 찾고 나의 그릇만큼 깨달아도 충분하다.

 

38년이 지나 다시 양식에 대해 써내려간 [새 양식]의 마지막에서도 지드는 우리에게 주도적 양식에 대해 말한다모든 것은 내 자신에게 달린 것이며제안하는 삶을 그대로 수락하지 말 것이며나의 삶의 책임은 온전히 나에게 있으니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지 말라고 경고한다두 양식 사이에 변화는 물론 공통점도 존재한다.

 


 

[새 양식]이 [지상의 양식]과 다른 점은 좀더 이타적이라는 것이다나의 욕망사랑깨달음이 중요했던 [지상의 양식]과는 다르게 [새 양식]은 나만의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급스러운 식탁보다는 주막의 편하고 왁자한 식사가 더 좋고벽으로 둘러싸여 안에서도 밖에서도 서로를 볼 수 없는 최고의 아름다운 공원보다는 남녀노소 누구나 들락거리고 부딪칠 수 있는 공공의 정원이 더 좋다고 지드는 말한다또한 귀하디 귀해서 다루기 조심스러운 희귀본 보다는 거리낌 없이 들고 나갈 수 있는 책이 좋으며 홀로 감상해야 하는 예술 작품이 아름다울수록 나누지 못함에 슬픔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라 말한다.

 

타인을 위해서라도 스스로 행복해야 하고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으며나의 행복은 곧 모두의 행복이 되며모두가 행복해야 본인도 행복해 진다는 행복 전도사 지드결국은 나만 행복하면 반칙이며 타인의 불행을 보며 행복해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인듯 하다공감하며 동감한다지당한 말씀이다.

 


 

지드의 경고처럼 나도 이 책을 이젠 던져버리고 나만의 양식을 찾기 위해 노력하련다또한 나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련다그의 깊은 생각에 도달하지는 못했으나 작게나마 얻은 깨달음에 감사한다또한 던져버린 [지상의 양식새 양식]을 종종 들춰보면서 책 속에 넘쳐나는 지드의 양식도 찾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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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에디터스 컬렉션 1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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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다자이 오사무 ㅣ 문예출판사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배경'을 미리 파악하는 것은 필요하다작품 속 시대적&공간적 배경은 물론이며 작가가 작품을 쓴 시대의 배경도 중요하다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지만어떤 작품은 배경을 배제하고 읽어나가면 도대체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다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은 특히나 그렇다.

 

사양은 1947년 발표된 작품이다. 1947년은 2차 세계대전에 참여했던 일본이 패망한 후 2년이 지난 시점이다세계를 향해 기세 좋게 나아가던 일본은 미국이 쏘아올린 두 발의 폭탄에 의해 하루 아침에 패전 국가가 되었다나라의 꺽인 기세는 개인을 전복시켰다작품의 제목 사양처럼 인물들 모두 저무는 태양처럼새로운 것들에 밀려 몰락해 가는 일본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가즈코는 몰락하여 가난해진 귀족이다그녀는 남편과 이혼 후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고 있다가즈코의 어머니는 귀족으로써의 기품을 잃지는 않았으나 점점 병들어간다가즈코의 남동생 나오지가 마약중독으로 큰 빚을 안기고 전쟁에 참여 후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태라 어머니의 마음은 아프다전쟁 후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시골의 작은 집으로 이사하게 된 모녀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나오지가 귀환한다다시 모인 가족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지 못하고 더 혼란스럽기만 하다.

 

 

 

작품 속 인물 모두가 병자처럼 느껴진다모두가 초점없는 눈으로 세상을 겨우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또한 그들의 행태가 기괴하다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나오지의 스승 우에하라를 대하는 가즈코의 행동이다가즈코의 행동 이전에 우에하라의 행동도 기이하다짧고 강렬한 첫 만남 후 6년 이나 지난 시점에서 그를 향한 사랑 편지를 보내는 가즈코의 마음은 무얼지 생각해 본다.

 

어머니의 귀족으로써의 기품을 유지하기 위해마약 중독자 나오지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집안의 옷가지며 물건들을 팔아가며 살아가야 하는 매일의 삶은 가즈코를 지치게 했을 것이다아무리 애써봐도도저히 버텨낼 수 없을 것 같은 초조가 그녀를 감싼다이런 초조 때문에 그녀는 심장이 옥죄고숨을 쉴 수 없으며눈앞이 까매져서 뜨개질마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이런 암울한 시기에 우연히 경험한 짧은 입맞춤의 설레는 감정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를 삼켜버린다아마도 가즈코는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때의 감정이 소중했었을 것이다희망 없고 우울한 매일 속에 섬광처럼 자신을 감쌌던 얼굴 붉어지는 순수한 감정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생각지 못한 경험과 따뜻하고 설레는 감정은 힘겨운 상황을 이겨낼 힘이 될 수도 있다.

 


6년이라는 시간은특히나 매일을 술로 보내는 일상을 살고 있는 우에하라에게는 치명적이었다볼품 없으며형편 없는 외모에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여 퇴물이 되어버린 지식인은 가족을 돌보는 것에도 무책임했다.그럼에도 가즈코가 그를 사랑한다고 느꼈던 것은 그의 방탕한 자유로움과 지식인으로써의 박식함 때문이라고 본다어찌보면 몰락했으나 여전히 남아있는 귀족으로써의 허영심이 표현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6년 전의 그날 처럼, 6년 후에 어머니를 잃은 가즈코는 또 살아남아야 함을 알기에 우에하라를 통해 그 옛날 처럼 앞으로를 살아나갈 수 있는 설렘의 감정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가즈코의 동생 나오지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본인을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또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중 [인간실격속 요조의 전신처럼 보이기도 한다요조처럼 나오지도 귀족인 자신을 거부하며 민중의 벗이 되고 싶었으나 생각만큼 쉽지 않았기에 약과 술에 의존한다하지만 그의 의존은 변명처럼 들린다민중이 됨을 천박함이라 표현한 것은 귀족으로써의 자신을 너무 고귀하게 평가한 것이다어찌보면 요조처럼 타인과 소통되지 못함이 빚어낸 오류때문에 몰락한 귀족으로써 더 힘겨웠을 수도 있다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그의 노력이 종국에는 포기된 것이 안타깝다.

 

어제와 너무 다른 오늘은 모든 사람들에게 혼란스러울 것이다그 혼란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그 혼란에 발버둥치다 끝내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강한 힘으로 세상을 휩쓸 것이라 자신했던 어제의 일본은 패전 국가로써 책임을 다해야 하는 패배자의 오늘이 힘겨웠을 것이고귀족으로써 모든 특권을 누렸던 어제의 나오지는 존중마저 받지 못하는 오늘이 힘겨웠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나오지 처럼 포기하지는 않음을 우리는 가즈코를 보며 생각한다여성이며이혼한 경력을 가진 가난하며 몰락한 귀족인 가즈코는 그럼에도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여 살아가겠다고 다지는 힘을 발휘한다아이는 새로워진 세상 속 새로운 질서 속에서 가즈코의 보살핌으로 잘 살아갈 것이다.

 

 

 


오늘날 사양은 페미니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충분히 이해가 된다모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려한 가즈코의를 칭송한 평가처럼 느껴진다특히나 1940년대의 여성으로써 미혼모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은 용기이다그녀의 용기가 과연 끝까지 힘을 발휘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래도 그녀의 주체적인 행동은 그 시대 젊은이들에게 힘이 되었을 것임을 인정한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를 통한 문예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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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채우는 감각들 - 세계시인선 필사책
에밀리 디킨슨 외 지음, 강은교 외 옮김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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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채우는 감각들

에밀리 디킨슨 ㅣ 페르난두 페소아ㅣ 마르셀 프루스트 ㅣ 조지 고든 바이런

민음사

 

시는 언제나 어렵다시를 이해하고 즐기고 음미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하지만 다가가려는 용기를 가져본 적은 없다용기내지 못했기에 더 시와는 멀어졌었다그렇기에 세계시인선 필사책 밤을 채우는 감각들을 읽는다는 건 나에게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밤을 채우는 감각들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에밀리 디킨슨페르난두 페소아마르셀 푸르스트조지 고든 바이런의 작품을 선별하여 엮은 필사책이다왼쪽에 배치된 시를오른쪽에 배치된 여백에 따라서 쓰다 보면 시인의 감정이 전달되는 다소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에밀리 디킨슨철학적 사색으로 인도하는 페르난두 페소아아름다운 문장으로 감동을 일으키는 마르셀 프루스트낭만과 영웅적 면모를 표현한 조지 고든 바이런의 모든 시들을 따라 쓰다 보면 어느 새 나도 시인이 된 것 같다.

 

 

19세기 대표하는 4명의 시인들 중 '페르난두 페소아'의 시들이 가장 좋았다그의 시는 ''를 돌아보게 했다.

 

'양 떼를 지키는 사람에서 페르난두 페소아는 시 쓰기의 번거로움을 토로한다또한 외롭고 고독한 일임을 말하고 있다하지만 그는 홀로 있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왜 홀로 있고 싶은 것일까이해받지 못해도 표현함에 만족한다는 것일까아니면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일까원래 그런 것이 시라는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많은 의문을 남기는 시이다또한 쓸쓸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어마어마한 작품을 남긴 작가이기도 하다프루스트의 시는 처음이다물론 그의 또다른 문학작품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하지만 우리 집 책장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찬란하게 꽂혀있기에 친밀함이 느껴진다.

 

그의 시 '음악을 듣고 있는 가족은 서로 다른 세대의 가족들이 서로 다른 경험과 가치관에 의해서 같은 음악을 듣고 있지만 각자 다르게 느끼고 해석하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우리는 모두 다름을다름은 당연한 것임을 생각하게 해주는 시이다모두 다르지만다름에도 함께 찬란하고 무한하며 신비스러운 음악을 듣고 있다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해 본다.

 

 

밤을 채우는 감각들을 통해 시에 대해 좀 더 용기를 내 볼 수 있게 되었다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즐기고음미해도 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시에게 한 걸음 불쑥 다가가고따라 쓰고마음의 일렁임을 앞으로도 종종 기다릴 것이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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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
윤순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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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

윤순례 소설 ㅣ 은행나무

 

 

'디아스포라 문학'은 본래 살던 땅을 떠나 이국 땅을 떠도는 이들의 삶과 정체성을 다룬 작품을 뜻한다이 작품 여름 손님은 디아스포라 문학이다본래 살던 땅을 떠난 이들은 탈북민들이다서로 연결된 이들 여러 탈북민들의 이야기는 서글프다.

 

얼마 전 조해진 작가의 [로기완을 만났다]를 읽었기에 더 그들의 삶이 애처롭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목숨을 걸고 선택한 탈북이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지는 못함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인간의 삶과 선택이란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여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연작 소설이다화은철진종우성국화진 등의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이들은 모두 탈북민들이며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름 손님>의 희숙이 남한으로 오며 '화은'이라는 이름을 쓰게 된 이유가 <바람빛 자장가>에서 밝혀지거나, <별빛보다 멀고 아름다운>에서 뒤셀도르프에서 살고 있는 종우가 구매한 가짜 신분인 북한 사람 '김원철'이 화진의 전 남편임이 <사적인너무도 사적인 침묵의 역사>에서 드러나는 식으로 인물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은 남한과 북한의 사람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북한을 떠나 중국의 숙박업소에서 일하던 화은은 남한의 사진작가를 만나고정을 나눈다그녀는 그가 던진 미래를 향한 말들을 품고 되새긴다그에게 이름을 물었던 드문 손님이었으며사랑의 언약을 남긴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그것에 희망을 품고 국경을 넘어 남한에 정착하게 된다남한에 정착하며 그의 고향에 터전을 잡고서야 그가 사진 작가임을 알게 되고중국 훈춘에서 찍힌 자신의 모습을 전시회에서 마주하게 된다그에게 있어 북한에서는 '화숙'이었던 '화은'은 몸을 파는 탈북 여성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그는 그녀가중국을 탈출해 자신을 꿈꾸며 남한에 올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비겁하고 잔인하다.

 

화진은 두 아이아니 세 아이의 엄마이다세 명의 아이는 모두 다른 곳에서 출산했다한 아이는 북한에서한 아이는 중국에서한 아이는 남한에서세 아이의 아버지도 모두 다르다탈북한 여성 화진의 삶은 기구하다기구한 삶 속에서도 그녀의 자식들을 책임지겠다는 신념은 무모하고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다하지만 그 억척스러움이그 미련함이 답답해 보이기 보다는 종국에는 용감해 보이기 까지 한다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되는 남자와의 관계에서는 그녀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더 용감해지길 바래본다.

 

그들 모두가 살기 위해 탈출하고도망치고속이고버리고숨기면서도 한 곳에 온전히 정착하지 못함이 행복한 정착으로 마무리지어지길 바래본다.

 

▶ 출판사 은행나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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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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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

위화 ㅣ 푸른숲

 

[허삼관매혈기]의 작가 위화가 8년 만에 발표한 원청왜 위화가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인지 새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책장이 거침없이 넘어갈 만큼 막힘없이 읽히며문장마다 호탕함과 대범함이 느껴진다집필에만 23년이 걸렸다는 이 작품은 청나라로 대변되는 구시대가 저물고 중화민국이 시작되는 1900년대 초반 대격변기를 그리고 있다작품이 방대함 만큼 다양한 주제로 읽힐 수 있는 요소가 많다미지의 도시 '원청을 찾아 헤맨 린샹푸의 삶을 통해 격변했던 중국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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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샹푸는 어느 날 홀연히 왔다가두 번이나 홀연히 사라진 샤오메이를 찾아 그들의 딸을 포대기에 안고 그녀가 말한 '원청'을 찾아 길을 나선다하지만 원청은 찾을 수 없었고그녀의 말씨와 비슷하다고 느껴진 시진에서 그는 그녀를 기다리기로 한다그녀를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시진의 린샹푸는 중국의 역사와 함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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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가 무너지며 기근과 사회의 혼란을 틈타 생겨난 토비들이 시진의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간다어미 없이 아비의 손에 키워진 린샹푸의 딸 린바이자는 린샹푸의 동업자인 천융량의 아내 리메이렌에게는 딸 같은 존재였다그런 그녀를 지키기위해 리메이렌은 인질로 잡힌 린바이자를 대신해 자신의 큰 아들 천야오우에게 대신 인질이 되라고 말한다.

 

전쟁과 사회의 혼란 속에서는 도덕보다 생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지며 인간들은 잔인해진다인간들의 잔인함은 상처를 남기며 상처는 약한 존재들에게 더 치명적이 된다이를 잘 알기에 리메이렌은 자신의 아들을 대신 인질로 보내지만 그 마음 또한 지옥이었을 것이다.

 

도둑질은 토비들만 행하지 않았다북양군도 시진의 사람들에게는 토비만큼 악랄하고폭력적이었다당연한 듯 시진 사람들의 음식을 축내고기녀들을 무지막지하게 탐하며아편에 취해 휘청거린다악랄한 얼굴로 횡포를 부리든웃는 얼굴로 횡포를 부리든 토비와 군은 시진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폭력자들이었다.

 

시진에 남겨진 사람들은 토비가 휩쓸고 간 후 그들의 고문 방식을 잘 견디는 사람을 가려내는 대회를 연다어처구니가 없다게다가 잔인한 이 대회에 통탄하는 일부 사람들의 항의에 마을의 유지는 '불안한 민심'을 가라앉힐 수 있다며 대회를 정식으로 인정한다경악스럽다폭력 속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발현되는 광기가 가히 공포스럽다인질로 잡혀간 사람들도남아서 그들을 기다린 사람들도그들 모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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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그곳 '원청'은 겸손함과 과묵함을 가진 선한 남자 린샹푸에게는 행복을 실현시켜 줄 미지의 공간이었다하지만 원청은 린샹푸를 속이기 위해 아창이 거짓으로 만들어 낸 곳이다.

 

'원청을 찾아 헤매는 린샹푸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의지를 가지고 찾다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사랑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함포기하지 않는 열정의 모습 말이다하지만 린샹푸는 영원히 그곳에 닿지 못한다. '원청'은 존재하지 않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만들어 낸 공간임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 그곳을 그리워하는 샤오메이를 통해 애달픈 슬픔을 느낀다린샹푸의 사랑을 알기에버리고 온 딸을 사랑하기에 존재하지 않는 도시 '원청'이 그리웠던 것이다그곳이 존재한다면 린샹푸가 자신을 되찾고자신은 린샹푸를 따라 딸과 함께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자신을 기다리는 아창 때문에 린샹푸의 금괴를 들고 떠난 샤오메이의 선택에 대해 생각해본다그녀의 끊지 못한 미련이 결국엔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 게 아닐까아창은 그녀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다처음부터 그는 즉흥적이었다언제나 즉흥적이었다어려움에 직면할 때 맞서 해결하려하기 보단 도망갔던 아창은 비겁하다그의 비겁함은 샤오메이에게 여러 번 상처를 남긴다상하이 홍등가에서 몸을 팔아서라도 아창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는 샤오메이는 반복되는 상처에도 끝까지 아창을 버리지 못한다미련 때문일 수도 있고 연민 때문일 수도 있다하지만 그녀는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려는 의지보다는 그녀를 이용해 쉽게 살아가려 했던 아창을 그 순간 버렸어야 했다아프지만 결단의 시간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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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는 샤오메이의 죽음을 말하며 개인적인 아픔은 슬프나사회의 혼란 때문에 겪게 되었을 도탄과 파탄에 빠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안도한다격변의 시기 중국 안의 많은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상처 받았으나상처 또한 받아들이고 나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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