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1
임레 케르테스 지음, 이상동 옮김 / 민음사 / 2022년 1월
평점 :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임레 케르테스 ㅣ 민음사
'의식의 흐름대로 글쓰기' 는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기억, 자유 연상, 마음에 스치는 느낌을 그대로 문장으로 표현하는 글쓰기이다. 이 글쓰기는 다소 산만하고, 주제가 명확하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물이 매순간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심리를 직접적으로 대면할 수 있어 인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서술되는 작품이다. 독자를 이끄는 의식의 주인공은 단호하지만 불안하고, 불행하게 느껴진다.
-----------------------------------
시작부터 그는 무언가를 부정한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본능적으로 즉시 부정한다. 단호하게 부정한다. 그러고는 자신이 부정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의 본능이 우리의 본능에 반하여 작동하는 것이, 말하자면 우리의 반본능이 우리의 본능을 대신하고, 더욱이 본능인 것처럼 작동하는 것이 이미 아주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는 말장난처럼 보일테지만 비참한 진실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를 비참하게 만드는 진실이 무엇일지 알아가는 것에 집중하며 남은 문장들을 읽어나가야 할 듯하다.
숲에서 산책 중에 만난 철학자 오블라트 박사에게 작가이자 문학 번역가인 서술자는 "아니요"라고 즉시 단호하게 말한다. 이는 박사가 서술자에게 아이가 있는지 무심코 던진 질문에 대한 답변이였다. 그리고 철학자의 이 질문으로 서술자는 속이 뒤집어짐과 동시에 강박과 혐오를 느끼며, 잠깐의 망설임도 허용치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답한 것이다. 그와는 다르게 철학자는 자신이 아이를 갖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무에 대한 태만 행위"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철학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의지할 곳이 없어 '감정의 석회질화'가 올 것이 두렵다고도 말한다. 이에 작가이자 번역가인 화자는 자신은 이미 목구멍까지 두려움이 차올라 두려움과 하나이며, 석회질화가 올 것을 두려워하기보단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할 것이므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문장이, 모든 단어가 아픔과 공포를 내포하고 있다. 곁에 그가 있다면 작고 갸날프게 느껴질 듯 하다. 울먹이는 아이를 안아주듯 그를 감싸안고 다독이고 싶어진다. 과연 이토록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자신을 넘어 다음 세대에 까지 영향 미칠 것을 두려워할 만큼의 경험이라니 끔찍하다.
-----------------------------------
누군가의 광기와 변태스러움으로 만들어진 공간 아우슈비츠는 서술자에게 한 곳에 정착해서 사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주기도 했다. 하루아침에 발생한 전쟁처럼 ,자신이 일구고 살아가던 공간이 한 순간에 무의미해질 수도 있음을 깨우친 서술자는 최대한 약소하게, 임시로, 넋을 놓은 채 셋방살이를 하는 것이 타당하게 사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언제든 다시 독일인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집을 소유함에 있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소유에 관련된 절차와 고민들이 그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살고 있는 순간을 자신의 생성과 소멸 사이에 주어진 '대기의 시간'이라고 서술자의 입을 통해 작가는 표현한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에 깨어 있는 그 시간은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대기의 시간'이라는 단어만으로 그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 분노가 전달된다.
-----------------------------------
송두리째 자신을 흔드는 기억 때문에 자신의 생활은 물론 자신이 야기할 다음 세대의 아픔까지도 차단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아프지만 현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역사 속에서 탄압받던 기록이 남아있으며 그것이 일방적이었던 것을 누구나 알지만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반유대주의' 가 그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또한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유대인들을 무조건 옹호하고 사랑하는 것이 그에게는 불가능한데도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압박도 그는 힘겹다. 그는 물론 그의 아내 또한 유대인이다. 그녀는 스스로 유대인이 되는 것을 선택한 것이 아닌데도 유대인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여러가지가 진흙 속에 처박힌 사람이 되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고 한다. 서술자와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 그의 아내였던 그녀가 가지고 있는 유대민족이라는 정체성은 그들을 숨막히게 했을 것이다.
서술자의 글은 그의 아내에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자유를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무엇이 자신을 유대인으로 만드는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서술자는 자신의 글쓰기가 기쁨을 찾기 위함이 아닌 명백하게 고통을 구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녀에게 자유를 준 그의 글쓰기는 그에게는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한 수단이다.
잊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애쓴다는 것만으로도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인종을 버거워하는 그들이 느껴진다. 우리 사회가 다양한 수식어가 아닌 그 사람 자체만으로 타인을 대하지 못하기에 벌어지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반복되는 차별과 편견은 인류 속에서 과연 사라질 수 있을지 이쯤되면 의문스럽기도 하다.
-----------------------------------
'유대인' 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학살의 대상이 된 경험이 있는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도 유대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그는 평생을 아이 앞에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어야 할 만큼의 강요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의 부모에게 외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유대인'이라는 피 때문에 겪어야 했던 폭력으로 그는 부모를 원망했을 것이다. 그가 외치는 "안 돼!" 는 그를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게 했던 부모와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날 아기의 탄생을 생각하는 자신에게 외치는 울부짖음이다.
서술자는 '아버지'를 '아우슈비츠'에 빗댄다. 대상과 공간 모두가 소년을 지배하고, 공포스러우며, 난폭하고 비이성적이었던 것이다. 문장을 읽는 나는 충격을 받았다.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긴 공간과 빗대어질 만큼으로 느껴지는 부모라니 어떤 부모일까? 너무도 많은 비난과 너무도 많은 요구 속에서 느꼈던 좌절과 견딤을 겪은 소년은 자신이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하기까지 한다. 그의 상처는 자신이 겪은 일을 또 다른 아이가 겪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까지 하게 만든다.
아동기 유대인 소년이었던 작가가 측은하게 느껴진다. 인간은 태어남의 순간과 자신의 조건 대해 선택하지 못한다. 나의 의지와 선택으로가 아닌 세상과의 조우이지만 살아가며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면 살아감을 다행으로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단 한 번도 살아감을 만족하거나 다행이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부정 당하고, 차별 당하며, 폭력에 노출되었기에 부모와 세상을 원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아픔을 자신의 아이에게 되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아픔과 깊은 사고에 공감한다.
-----------------------------------
위대한 작가인 그가 위대하다기 보다는 상처받은 어린 시절을 가지고 있는 약한 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그는 끔찍함에서 벗어날 길이 없음을 단정하며 그래서 더욱 더 자신은 아이를 생각하는 것에 대해 "안 돼!" 라고 기도하며 외칠 것임을 확고히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의 아내였던, 지금은 아내가 아닌 그녀가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손상된 자의식에서 벗어나 주근깨가 있는 여자아이와 초롱초롱 한 눈을 가진 남자아이와 나타난 것이다. 누군가는 아파하며 괴로워하지만 또 누군가는 이겨내고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