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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2년 7월
평점 :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 문학 에세이 ㅣ 샘터
‘열 권의 책을 혼자 읽는 것 보다 한 권의 책을 열 명이 읽는 것이 낫다' 라는 말이 있다. 장영희 교수의 문학 에세이를 읽으며 이 말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읽었던 책에 대해선 공감할 수 있었으며, 읽지 못한 책에 대해선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문학은 일종의 대리 경험이기에 시간과 공간, 상황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으며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인생의 나침반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꾸준히 '문학'을 사랑하는 것이다. 부족한 공감능력이 사회 속에서 다양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문학을 읽어야 한다. 문학을 읽음으로 타인의 슬픔과 고뇌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책으로도 여러 번, 영화로도 여러 번 본 작품이다. 피츠제럴드는 왜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일까에 대한 질문도 여러 번 토론한 논제이다. 장영희 교수는 개츠비가 위대한 이유는 물질 만능주의와 퇴폐주의로 타락해 가는 시대에 사랑과 희망, 꿈을 잃지않았기 때문이라 답한다. 동의한다. 개츠비의 위대함은 2022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무모함으로 치부될 것이다. 그래서 개츠비의 '위대함'은 더 위대해진다.
나는 왜 '시'가 힘들고 어려울까? 어렵기에 시를 즐길 수 없다. 시를 즐길 수 없는 내가 여류 시인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서 몰랐던 건 당연하다. 그녀가 철저한 칩거 생활과 30대 후반부터 죽는 날까지 흰색 옷을 고수했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또한 그녀의 시는 혼자만의 끄적거림이였기에 생전에는 발표되지 못했으며, 제목도 없다고 한다. 장여희 교수의 글을 통해 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대해 알고싶어졌다.
얼마 전 뇌과학에 관련된 책에서 [대지]의 작가로만 알고 있던 펄 벅의 [자라지 않는 아이]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장영희 교수는 이 작품을 펄 벅의 [대지]보다 더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최초의 여성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펄 벅의 딸은 중증 지적장애와 자폐증을 앓았다. 펄 벅은 작가가 아닌 어머니로서의 마음을 이 책에서 토로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펄 벅과 장애을 가진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보내는 장영희 교수의 사랑과 갈채를 나도 보내고 싶다.
이 책은 2001년 8월부터 3년간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장영희 교수의 북 칼럼에 게재되었던 글을 모은 것이다. 신문의 특성상 칼럼의 길이가 제한적이었기에 문학에 대한 무겁고 어려운 해석보다는 교수 본인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를 문학과 연결한 글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가볍지만 소중하게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소개된 작품들을 따라 읽으며 장영희 교수가 사유했던 것들에 다가가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