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트레이 귀공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이미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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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트레이 귀공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15

 

19세기의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인물 심리 묘사는 탁월하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경험했던 섬세함을 [밸런트레이 귀공자]에서 다시 경험하게 되었다서로 다르게 느껴졌던 모든 인물들이 결국엔 인간의 숨겨진 본성을 여실하게 드러내는 존재들임을 깨닫는다또한 그들 모두의 모습은 내 안 여기저기에도 숨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듀리스디어와 밸런트레이 지역의 듀리스 가문은 남서쪽 지역의 막강한 집안이었다학식이 풍부한 듀리스디어 경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큰 아들 제임스는 위선적이며통속적이고 방종하였으나 화려한 외모와 뛰어난 수완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았다반면 작은 아들 헨리는 정직하고 착실한 사람이었으나 고지식한 구두쇠라는 평판을 받았다자코바이트 봉기가 발생한 상황에서 여느 귀족들 집안처럼 이들도 한 아들은 반역 세력에 가담하고한 아들은 영국 왕실에 충성하는 자세를 취함으로 가문을 지키려 한다이 과정 중 장남이 집에 남기를 가족들은 바랬으나 활동적 기질을 참지 못한 제임스가 봉기에 가담하고 남겨진 헨리는 모두의 비난을 받게 된다.

 


 

언제나 무시받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면서도인정받지 못함을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헨리그는 차라리 무법의 일행에 들어가 죽음을 무릅쓰고 달릴 수 있다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말한다그가 선택한 것도 아닌 일로 모두에게 비겁하며 이기적이라는 낙인이 찍혀야 했던 그의 고충은 충분히 공감된다.

 

어찌보면 이 상황은 자신의 넘치는 열정과 용맹을 뽐내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봉기에 뛰어든 제임스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그 모든 일의 책임은 헨리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게다가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제임스로 인해 평생에 뛰어넘을 수 없는 경쟁자가 생기게 된 헨리는 이 모든 수모를 맨몸으로 감당하기로 한다.

 

그가 조금은 덜 스스로를 자책하거나그가 조금은 더 자신을 사랑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하지만 그를 둘러싼 환경이 그에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음을 인정해본다그의 아버지 듀리스디어 경의 노골적인 편애와 나중에 헨리의 부인이 되지만제임스의 약혼자였던 앨리슨 양의 제임스에 대한 어긋난 애정은 헨리를 점점 더 작아지게 만든다이들의 태도는 그들의 하인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쳐 현시점의 실제적인 주인인 헨리의 위신을 대놓고 무시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자신을 둘러싼 모든 이들이 자신을 무가치하고 파렴치하게 바라보는 데 그 누가 자신의 존재를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단 말인가삐뚤어진 평가와 지나친 애정은 그것을 갈구하는 사람을 메마르게 만들고그것을 누리기에 모자라는 사람을 악마로 만들어버림을 두 형제를 통해 생각해 본다.

 

 

어느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제임스는 살아 돌아오고모두에게 동정과 연민을 받아낸다이런 상황에서 헨리는 돌아온 형을 온전히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다게다가 제임스는 모두의 앞에서는 억울한 피해자 행세를 하면서 헨리와 일대일 대면 상황에서는 본성을 드러내며 그의 양심을 무기로 폭언과 비아냥을 퍼부어댄다헨리가 이루어 낸 모든 것이 원래는 자신의 것인냥 행동하는 제임스는 결국엔 헨리의 부인에게 까지 대놓고 애정을 표현한다형을 바라보는 헨리의 감정이 어떤 이름일지 우리 모두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복수는 스스로를 파멸하게 함을 알아야 한다가장 완벽한 복수는 나를 힘겹게 하고 아프게 했던 대상에 집착하지 않고나의 행복을 위해 좀 더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복수를 위해 상대를 증오하고아파하고괴로워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망가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세상이 말하는 복수를 행한다 한들 상대의 고통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나를 파멸하게도 한다나를 미워하고 시기해서 괴롭혔던 대상에게 똑같은 아픔을 주고 싶은 마음은 모두에게 존재한다하지만 깊고 넓게 생각하면 힘겹게 했던 상대의 행동이 나에게 어떤 의미도 없음을 의연하게 보여주는 상대를 더 미치게 할 것이다.

 

 

두 형제의 얼키고 설킨 실타래를 보며서로 다른 색의 실타래가 결국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얼룩처럼 변하며 더 엉켜져 버림을 보게 된다때론 실타래가 망가지더라도 가위로 잘라내야 할 순간도 있다그럴 땐 과감히 잘라내 버리는 것이 남은 실타래의 색도 유지하고온전히 사용할 수 있음을 잊지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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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더
엠마 도노휴 지음, 박혜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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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더

엠마 도노휴 ㅣ 아르떼

 

매혹적인 소재와 심도깊은 주제가 매력적인 작품이다영국과 아일랜드의 관계기근이라는 시대적 배경신의 기적을 바라는 종교인들과 학술적 명성을 노리는 학자의 검은 속내 그리고 병들어 죽어가는 어린 소녀. []으로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엠마 도노휴의 최신 화제작이다작가는 19세기 중반 대기근 시대 아일랜드에서 실제했던 '단식 소녀사건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1850년대 아일랜드의 어느 마을한 소녀가 몇 개월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도 생존하여 기독교 신자들에게 기적의 상징으로 추앙받기 시작한다금식 소녀 애나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면서 기적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모여들고기적이 사실인지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파견된다소녀 애나의 상황을 관찰해 달라는 제안을 받은 나이팅게일의 제자인 노련한 간호사 리브는 2주 동안 마을에 머물며 소녀를 관찰한다.


 

자신의 몸이 스스로를 먹어치우는 데도 저항하거나 요구하지 않는 아이한없이 상냥하고 차분하며 솔직한 소녀신앙심도 깊으며 자연을 아끼고 동정심도 뛰어난 애나 오도널누가보아도 죽어가는 상태임에도 주변의 그 누구도 소녀가 아사 직전의 상황임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그들 모두는 자기의 자리에서 고상하지만 잔인하게 소녀를 이용한다그리고 소녀는 그들의 이용을 자신이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수행처럼 여긴다.

 

매일 서른세 번의 기도를 하는 애나서른 셋은 부활한 그리스도의 나이이다아이의 기도는 염원과 간절함을 담고 있으며 그 간절함은 먼저 죽은 팻 오빠에게 향해 있다소녀의 여리고 약한 마음을 이용하는 어른들그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이기적이다약한 존재는 가진 것이 없다가진 것이 없는 소녀가 자신의 유일한 소유물인 육체를 이용해 자신의 염원을 갈구할 때 아이 주변의 위선자들은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죽음을 부추긴다진정한 어른이라면 아이의 과도한 죄책감을 가볍게 해주어야 했을 것이다죽은 자로 인해 살아있는 자의 삶이 피폐되고무지로 인해 순수한 영혼이 고통받고 있다면 우리는 다독이고 인도해야 한다그것이 사회가 해야 할일인데 애나의 사회는 오히려 진실을 말하려는 리브를 비난한다무섭고 섬뜻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제작되어 문장들이 살아났다리브로 분한 '플로렌스 퓨'의 연기력과 아름다움이 이야기에 더 빠져들게 한다가제본으로 읽어 문장으로는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다읽지 못한 뒷이야기 속에 애나를 위한 기적이 펼쳐지길 기대한다너무 작고 소중한 영혼들이 사회 속에서 이용 당하지 않길 애나를 떠올리며 바래본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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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을유세계문학전집 123
막심 고리키 지음, 정보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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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막심 고리키 정보라-옮김 을유문화사

 

표지 그림이 인상적이다등을 보이고 있는 여인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하다나의 눈에는 그녀가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없이 울고 있는 걸로 보인다그녀의 어깨에 한 손을 살짝 올린 이는 아마도 그녀의 아들일 것이다어머니의 갈색 겉옷 여기저기가 기워져 있는 것도 눈에 띈다.

 

막심 고리키의 대표작 [어머니]는 노동자의 각성과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을 다루고 있다이 작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효시로 불린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이다즉 주체가 사회주의적 렌즈를 통해 세계를 파악해 그 세계를 서술하는 예술사조이다따라서 노동자가 계급투쟁을 하여 사회를 바꾸고 미래를 전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리키의 [어머니]는 각성하고 혁명에 뛰어드는 주체가 여성게다가 어머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털북숭이 철물공 미하일 블라소프의 아내 '펠라게야 닐로브나 '는 남편의 폭언과 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하지만 그녀의 어린 아들 파벨은 무거운 망치를 들고 "더 이상은 당하지 않아라고 외치며 대항한다철물공의 죽음 이후 아들 파벨은 여느 노동자들과 다름 없는 삶을 사는 듯 보였으나 슬프고 온순한 어머니의 얼굴을 마주본 후 어딘가 다른 방향을 향해 집중하기 시작한다파벨이 집중하는 방향은 곧 어머니의 방향이 되어버린다.


 

어머니 '펠라게야 닐로브나는 1900년대의 여성이다여성은 가정 내 자기 발언권은 물론 남성의 소유물로 여겨지던 시절이다그녀가 남편에게 얻어맞았던 매일을 누군가는 '고문'으로 표현할 만큼 폭력적이었는데도 그녀는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 눈에 띄지 않으려는 노력만 했을 뿐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한다인식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녀의 세상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다그녀의 주변 사방의 여자들이 다 그녀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잘잘못을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부족했던 것이다어머니는 아들 파벨에 의해서 '혁명'에 가담하며 신문을 이곳 저곳에 전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많은 곳을 방문하며 깨달음을 얻는다그녀의 깨달음은 자각을 불러일으키며 부당함은 대항하고 맞서야 바로잡아진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막심 고리키는 왜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의 주인공을 여성인 어머니로 설정했을지 궁금해졌다가장 취약하고 억압받는 대상이기 때문일까가정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절대권력을 가진 유일한 대상이 절대약자인 다수의 구성원들을 대하는 폭력성을 통해 사회 속 약자들의 어려움을 독자가 더 실제적으로 느끼게 하기 위함임을 예상해 본다아이러니하게도 가정 안에서는 절대권력을 가진 강자였던 남편 블라소프는 조금 더 확장된 사회인 공장에서는 가장 취약하고 약자인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된다는 것도 생각해 볼 지점이다그는 착취의 부당함을 대항하여 개선하려는 노력이 아닌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들에게 화풀이함으로 해결한다이런 해결은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고 오히려 모두가 불행해짐을 생각해 볼 수 있다아버지와 달리 아들 파벨은 자신을 착취한 대상을 향해 정면으로 소리친다올바른 자세이며 또다른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행동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이야기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준다닐로브나처럼 어머니의 위치에 있는 나는 그녀의 아들을 향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응원과 지지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고 있다이들과 같은 상황에서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보단 자식이 자신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 더 집중하길 바라는 것이 대부분의 부모 마음일 것이다그렇기에 그녀의 응원은 아들 파벨에게 더 값졌을 것이다본받고 싶은 부모의 자세이다.

 

고리키의 [어머니]는 6월 항쟁 전까지는 금서였다고 한다. '혁명과 '각성'이 진실을 숨기고 싶었던 힘을 가진 자들에게는 꺼려지는 단어였을 것이고세상을 제대로 돌아가게 하고 싶었던 젊은이들에게는 필요한 단어였을 것이다. 2022년을 살고 우리 사회의 지금은 과연 이 두 단어가 필요한 때인지도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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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트레이 귀공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5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이미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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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같은 생각을 해내는 작가가 다루는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형제의 갈등과 충돌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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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4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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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누구에게, 왜 침까지 뱉을 만큼 분노한 것일까? 판금 조치를 받은 작품이라하니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을 것 같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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