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좋은 어린이 책 <세상에서 가장 큰 담요>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송주현(춘천 오동초등학교 교사)

 

내가 가르치는 1학년 아이 8명 중 5명은 할머니와 함께 산다. 그중 두 명은 부모님이 도시에 돈 벌러 가서 할머니랑 주로 산다. 그렇다 보니 가족 이야기를 할 때 할머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시골에는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가난과 노인의 쓸쓸함이 있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과 노동력을 상실해 가는 노인들은 서로 약자의 역할을 나눈 채 시간을 견딘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끈끈하게 연대하고 정을 나누며 서로 의지하고 산다. 바쁜 부모들의 일상 뒤에 남겨진 아이와 노인이 서로를 얼마나 성장시키는지는 이 책을 읽어 준 뒤 아이들에게 말을 시켜 보면 안다.

 

“우리 동네에 헌 옷 모으는 초록색 통(헌 옷 수거함)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거기서 옷을 막 꺼내 온단 말이에요. 그 옷들은 원래 어떤 아저씨들이 갖구 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막 꺼내 온다니깐요. 그 옷들이 어떤 건 크고 어떤 건 너무 작단 말이에요. 그래도 할머니가 입으라고 하면 나는 할 수 없이 입어야 된단 말이에요. 내가 할머니한테 내 옷은 새로 사 주고 할머니 옷이나 주워 오지, 그러면 할머니들 옷은 사람들이 잘 안 버려서 주워 올 게 없대요. 우리 할머니는 옷을 안 버리는데도 옷 잘 버리는 집보다 우리가 더 못 살아요.”

 

“저번에 우리 엄마가 이모랑 전화할 때 할머니를 ‘우리 노인네’라 그랬어요. 그런데 할머니 있을 때는 ‘어머니’라고 그런다니깐요.”

 

겨우 만 여섯 살짜리 1학년 아이들도 할머니들이 얼마나 근검절약 하는지 안다. 그래서 헌 옷 수거함에서 옷을 꺼내 오는 것도. 하지만 할머니의 그 억척스러움을 받아들일 만큼 철이 들지 않아서 투정을 한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의 행동이 ‘노인네’라는 표현으로 조롱되는 걸 불쌍해할 줄도 안다. 그러면서 한편, 그런 할머니의 존재에 위안을 얻고 할머니가 오래 살기를 마음속으로 빈다. 난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다.

아이들의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지금 저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 결국 할머니가 살아 온 시간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엄마와 할머니의 삶을 알아가는 일. 시간의 힘이다. 할머니와 같이 사는 저 아이에게는, 그 힘의 밀도가 더 단단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담요>는 할머니를 잘 모르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할머니를 느끼게 해 준다. 이 책에 나오는 토끼, 여우, 두더지, 노루는 세상 모든 아이들을 대신한다. 추운 집에서 엄마랑 사는 아이, 돌아가신 엄마의 기억이 담긴 낡고 외투를 벗지 못하는 아이,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고 상처받은 아이, 온갖 불행으로 세상이 미운 아이. 이 아이들의 상처를 꿰매고 기워 주는 건 할머니다. 할머니의 담요에는 아이들이 상처를 견디고 일어서게 하는 힘이 있다.

아이들 책이 그렇듯 이 책 또한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의 삶은 그렇지 않다. 할머니와 엄마는 여전히 서로가 불편하고 툭하면 다툰다. 이럴 때 아이들은 굳이 누구 편을 들지 않는다. 다만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음 아파하며 자란다. 그러면서 우리 할머니들은 왜 다 그러냐고 내게 묻는다. 나 역시 같은 말을 해 준다. 우리 할머니도 그러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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