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좋은 어린이 책 <밤 한 톨이 땍때굴>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김이구(문학평론가)


『밤 한 톨이 땍때굴』은 ‘근대 유년동시 선집’이다. ‘유년동시’라는 말이 우선 반갑다. ‘유년동시’라는 용어가 엄밀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니지만 아마도 4,5세의 어린 아이부터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까지의 연령층이 읽기에 적당한 동시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머이 머이 둥그냐.

보름달이 둥글지.

 

머이 머이 둥그냐.

누나 얼굴이 둥글지.

-윤석중 「누나 얼굴」 전문

 

「누나 얼굴」은 간단한 문답으로 되어 있지만, 보름달에서 둥근 누나 얼굴을 보고 역으로 누나 얼굴에서 둥근 보름달을 보게 되는 가족애가 담겨 따듯하다. 아이에게 읽어 주면서 “머이 머이 둥그냐, 사과가 둥글지. 머이 머이 둥그냐, 네 콧구멍이 둥글지.” 하고 금방 패러프레이즈해서 놀 수도 있다. ‘머이’라는 일종의 아기말을 그대로 입에 올리는 것도 재미있고, ‘뭐가’ ‘무엇이’ 등으로 바꾸어서 읽고 놀아도 좋겠다.

수록 시인의 면면을 보면 윤복진 윤석중 이원수 정지용 권태응 윤동주 등 한국 아동문학사의 대표적인 빼어난 시인들의 작품이 여러 편씩 들어 있고, 소파 방정환의 작품도 세 편을 골랐다. 박목월의 작품들이 여러 편 실린 것도 눈에 띄는데, 정지용의 솜씨 못지않게 세련된 시청각 이미지를 구사하거나 경쾌한 리듬과 유머가 스며 있어 전혀 낡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남대우와 오장환의 작품들도 한 편 한 편 음미해 보면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생활의 요소들이 긍정적인 시선으로 포착돼 있고, 짧은 길이에도 자연과 사물을 보는 감수성이 넉넉한 깊이를 갖고 발휘되어 있다.

나는 지난해 『방긋방긋』 『부릉부릉』 등 의성어 의태어 말놀이 그림책을 기획해 출간했는데, 책마다 뒤에 동시 한 편씩을 골라 실어 주었다. 그때 어린 연령대 아이들이 읽을 만한 동시를 고르는 일이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밤 한 톨이 땍때굴』에 실린 작품들을 보면 모양과 소리를 흉내 내거나 묘사한 말뿐 아니라 생생한 입말, 운율을 타서 절로 흥겹게 노래 불려지는 말 들이 풍성하고, 게다가 작품마다 억지스럽지 않고 맛깔스럽게 제자리에 딱 놓여 있다.

한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우리 아이들은 대가족과 마을 공동체 속에서 우리 문화와 삶의 감각을 어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전수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 등 몇몇 기기가 제공하는 정보와 오락에 대한 의존이 심해지다 보니 맑은 우리말을 간결하게 습득하고 음미할 기회는 오히려 훨씬 줄어들었다. 이런 때에 어린 우리 아들딸에게 “깨끗하고 진실한 말”과 “아이들을 향한 맑고 따스한 기운”(「‘근대 유년동시 선집’을 펴내며」)을 세대를 건너 전하는 유년동시집은 귀한 보석처럼 다가온다.

 

마알가니 흐르는 시냇물에

발 벗고 찰방찰방 들어가 놀자.

 

조약돌 흰 모래 발을 간질이고

잔등엔 햇볕이 따스도 하다.

 

송사리 쫓는 마알간 물에

꽃 이파리 하나 둘 떠내려온다.

어디서 복사꽃 피었나 보다.

-이원수 「봄 시내」 전문

 

위 시가 담고 있는 여유롭고 아름다운 시공간과 그것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감각을 온전히 받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마음이 넉넉해지고 그리움을 아는 멋진 사람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청소년, 어른들도 이 시집의 작품들을 찬찬히 읽다 보면 어느덧 마음의 고향에 찾아가 청량한 약수를 마시는 편안함과 충만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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