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좋은 어린이 책 <아빠 얼굴 예쁘네요>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이주영(어린이문화연대 대표)

 

어린이 시, 김민기 노래, 정용기 손이 만나 태어난 이상하고 독특한 까망 하양 그림책
1980년 4월 21일, 강원도 사북에서 광부들의 항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사북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였던 임길택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그 광부들의 자녀를 가르치고 있었는데도 광부의 삶을 너무 몰랐기 때문입니다. 광산촌 아이들 삶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 충격으로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시작했고 그 시간에 아이들이 쓴 솔직한 생활 글을 모아 문집을 만들어서 나누었습니다.

 

사북초등학교 학급 문집에 실린 아이들의 글을 읽은 사람들도 놀랐습니다. 까만 물, 까만 집, 바람에 흩날리는 까만 석탄 가루를 마시며 사는 아이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도 착하고 꿋꿋하게 사는 질경이를 닮은 아이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김민기도 사북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사북 아이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진주보다 더 고운 맑은 아침이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까만 이슬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 새까만 아침이슬에 맺힌 아이들 소리를 들었지요.

 

하늘에 계시는 하늘 님
땅 밑에 계시는 땅 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이 그림책은 40년 전 아이들이 쓴 글을 마음에 담아 삭히고 궁글려 토해낸 노래를 담은 것입니다. 김민기가 연출하는 동명의 영상노래극의 책이기도 합니다. 까망과 하양이 잘 어우러지는 지면과 찰흙으로 빚은 등장인물과 사물들은 탄광촌 아이들과 부모들 삶에 배인 색깔과 느낌을 오롯이 전달해 줍니다.

 

이야기 흐름에 따라 찰흙 작품과 글이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하며 하나로 어우러지기도 하는 과감하고 자유분방한 배치 때문에 처음에는 좀 산만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의미와 느낌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걸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따스함, 혼란, 놀람, 두려움, 슬픔, 간절함, 웃음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슬픔과 절망 속에서도 간절한 소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민중들의 이야기, 까만 탄가루 바람 속에서도 서로 돕고 장난치며 살아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연극 대본과 노래와 찰흙 조소 작품에 담아낸 조금 이상하고 독특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 타버린 연탄 한 장으로 시작하는 첫 장면과 까만 연탄 한 장으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 사이에 담긴 광산촌 아이들과 부모들의 삶은 이제 사라진 이야기일까요? 40년이 지났지만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곳곳에서 사북 아이들이 빌었던 소원을 빌고 비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늘 님, 땅 밑에 계시는 땅 님”부터 “바다에 계시는 바다 님”한테까지 “우리를 도와주세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라고 빌고 비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을 권합니다.

 

이주영 : 어린이문화연대 대표. 1980년부터 어린이도서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어린이 책을 읽고, 어린이 책 이야기를 써왔고, 경민대학교 아동독서지도 과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기도 하고, 교사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삶을 가꾸는 독서와 글쓰기 교육 강의를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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