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좋은 어린이 책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김은식(작가)

 

“군대가 있으면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키지?”
얼마 전 아침 잠결에 베개 밑 깊은 어딘가에서 ‘쿵’ 하는 폭발음 비슷한 것이 들리더니 곧 침대가 잠시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얼마 뒤, 문득 그 생각이 떠올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수원 지진’이라는 단어가 올라와 있었다. ‘아까 그 진동이 지진이었구나.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그걸 느끼고는 너도나도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던 것이로구나’ 싶었다. 지진의 강도는 겨우 2.3. 건물에 금이 가거나 높이 올려 둔 물건이 떨어지는 피해조차 거의 없던 경미한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전 5.8이라는 기록적인 규모로 온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경주 지진의 정신적인 여진은 꽤 대단했던 모양이다. ‘수원 지진’이라는 단어와 함께 검색 순위에 올라있던 것들이 ‘지진 준비물’ ‘지진 배낭’ ‘지진 가능성’ 들이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전쟁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수많은 전쟁 영화를 봤고, 전쟁에 관한 책을 읽었고, 군대에 가서 전쟁을 직접 연습한 적도 있지만 실제로 전쟁을 겪어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전쟁의 배경이나 결과, 혹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의미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지만 그 ‘느낌’에 대해서는 조금도 아는 것이 없다. 그런데 ‘언제 또다시 땅이 흔들리고 벽이 무너져 덮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 숨도 잠을 이룰 수 없었다’는 경주 시민의 말을 전해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전쟁이란 땅과 하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벽들이 동시에 엄청난 규모로 진동하고 무너져 내리는 지진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쓴 김재명 선생님은 어쩌면 한국전쟁이 끝난 뒤 태어난 한국인 중에서 전쟁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국제 분쟁 전문 기자’라는 이름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코소보, 이라크, 시리아, 팔레스타인, 시에라리온 등 나라 이름만 들어도 뒷골이 서늘해지는 전쟁의 현장을 찾아다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 관한 그의 리포트는 이미 여러 곳에서 보고 읽은 적이 있다. <한겨레 21> 이나 <프레시안> 같은 매체에 실렸던 연재 기사들도 있었고,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이나 <오늘의 세계 분쟁> 같은 책도 있었다.

그의 글을 통해 접한 전쟁은 역시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역시 영화에서 흔히 보던 광경이 아니라 처참하게 목이 잘리거나 불에 그슬린 이름 모를 남녀노소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그리고 그런 전쟁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전쟁광이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의 평온하고 풍요로운 삶의 원천이라고 강변되는 경제 논리와 국제 외교 논리들이라는 점을 조곤조곤 밝혀낸다는 것이 또한 그랬다.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이라는 책을 쓰는 과정은 그런 김재명 선생에게도 꽤나 고민스러운 시간이었을 것 같다. 어린 독자들 앞에서 풀어놓기에 그가 보고 듣고 느낀 전쟁은 지나치게 생생하고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전쟁에 대해 제대로 알고 느끼고 이해하는 것은 바로 그 아이들이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지게 할 수 있느냐와 연관된 문제이기도 했을 테니, 그런 희망으로 한 줄 한 줄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이 책은, 어쩌면 실제로 전쟁을 경험한 사람이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차분하고 점잖은 전쟁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학살의 현장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대목도 없고 그 책임을 추궁해 일부러 분노를 이끌어내려는 곳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열 살 안팎의 나이에 전쟁터로 끌려가 총을 잡게 되는 소년병의 이야기가 나오는가 하면 마약에 취한 그 소년병들에 의해 손목이 잘린 어린아이들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전쟁을 누가 뒤에서 부추기고 있으며,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그들이 얻게 되는 것이 무언지 어린 독자들도 알아야 한다는 지은이의 생각은 분명 환영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독자들에게 전쟁에 대해 알려준다는 일은 성(性)에 대해 알려주는 것 못지않게 곤혹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대충 하려다가는 엉뚱하고 비뚤어진 생각을 심어주기 십상이고, 제대로 하자니 끔찍함과 잔인함을 감당하기 어렵다. 김재명 선생의 이 책은 그런 곤혹스러움을 안고 있는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에게 적잖이 힘이 되는 안내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1949년에 군대를 없앤 중앙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는 어떻게 세계가 주목하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 왔을까? “군대가 없으면 나라를 어떻게 지키지?”라는 물음에 코스타리카 사람들은 이렇게 되묻는다고 한다.

 “군대가 있으면 민주주의를 어떻게 지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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