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좋은 어린이 책 <쑥갓 꽃을 그렸어>의 전문가 추천사입니다.

 

글 : 장철문(시인)

 

이건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다
뜻하지 않게 동네 뒷길을 걷다가 담 밑에 도라지꽃이나 텃밭에 부추 꽃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 순간의 할 일이 그것 말고는 없다는 듯 그 곁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 꽃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잊고 있던 마음 한켠에 살며시 빈터가 생기고 거기 가만히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여기 그 마음에 피어나는 꽃을 그린 사람이 있다. 꽃을 그리는 그 사람이 또 꽃으로 보여서 그걸 그린 사람도 있다. 아흔 살이 넘은 아버지는 자두와 쑥갓 꽃과 공작 깃털을 그렸고 딸은 그걸 그리는 아버지와 그 마음을 그려넣으면서 또 꽃이 되었다. 이건 참 생전 처음 본다는 듯이 쪼그려 앉아 쑥갓 꽃을 보는 마음으로 그걸 들여다본다.

쑥갓 꽃은 혼자 피지 않고 어울려 핀다. 어떤 건 활짝 피고 어떤 건 아직 덜 피고, 어떤 건 이제 꽃망울을 맺고 어떤 건 그 옆에서 벌써 지고 있기 십상이다.

아흔 살에 난생 처음 그림이라는 걸 그리면서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그림을 보고 "하나 더 그려 봐!" "하나만 더!" 부추기는 성가신 딸과 손녀가 함께 어울린 이 책이 꼭 그 쑥갓 꽃 같고 쑥갓 밭만 같다.

이 책에 나오는 사물들은 참 아무렇지 않다. 그냥 딸의 주말농장에서 주워 온 자두고 그냥 베란다에 있는 군자란이고 갈 수 없는 고향 쪽으로 뻗어 간 송전탑이다. 화려하고 잘 포장된 꽃은 쉬이 우리 마음을 빼앗고 이름나고 잘 차려입은 사람은 쉬이 우리 마음을 짓누른다. 그러나 여기 어울린 사물들은 들여다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마음에 빈터를 마련하여 꽃을 피우게 하고 거기 어울린 사람들은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차차로 자신을 들여다보고는 일어나 걸어가게 한다.

아무렇지 않은 나의 오랜 이웃이 이 책을 내밀면서 아흔 살이 넘은 아버지가 그린 것인데 그냥 둘 수가 없었다고 그걸 그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또한 그림 같아서 그걸 함께 그려 넣었다고 손부끄러워했다. 그걸 엉거주춤 건네받아서 펼쳐 보니 거기 그의 마음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천연덕스레 피어 있었다.

정말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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